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만인 5월15일 구속 기소된 선원 15명은 세월호에서의 책임과 행적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선장 이준석(69)씨와 1등 항해사 강원식(43)씨, 2등 항해사 김영호(47)씨, 기관장 박기호(54)씨 등 4명에게 검찰은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죄를 물었다. 사고 당시 운항 지휘를 맡은 박아무개(26)·조아무개(56)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선박) 위반, 업무상과실선박매몰 등으로 기소됐다. 나머지 9명에게는 유기치사·치상 및 수난구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보호해야 할 사람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외면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선원들은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에서 재판을 받는다. 선장 등 4명에게 적용된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이다. 운항을 지휘한 박씨와 조씨에게 적용된 도주선박죄도 무기징역 선고가 가능하다.
VTS와의 교신에서 거짓말
선원들이 승객 구호 조치를 외면하고 도망친 이유가 무엇일까. 검찰은 440명의 승객을 퇴선시킬 경우 자신들 구조는 후순위로 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을 수사한 안상돈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은 “인명을 구할 의무가 있고 쉽게 구호 조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승객을 그대로 두면 익사할 줄 알면서 ‘나 몰라라’ 하고 배를 떠나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욕심을 넘어서 자신들의 구조 가능성을 높이려고 승객들을 희생시켰다는 의미다. 선원들의 행적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다.
“피고인들(선원들)은 해경 123정 1척만이 세월호 인근에 도착하는 것을 발견했다. 승객들에 대한 퇴선 명령이 없는 상태에서 선원들이 먼저 탈출하면 우선적으로 구조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사본부
선장과 선원 8명은 지난 4월16일 아침 8시52분 조타실에 모여 탈출을 모의했다. 선박의 2층 높이인 침수 한계선까지 물이 차오르면 배를 버리기로 말이다. 여닫이 방식인 선박의 문은 물에 잠길 경우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원력을 완전히 잃어 전복된다. 이 선장은 “선원들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 선장은 사고 직후 조타실로 돌아와 엔진 정지와 선내 대기 방송을 지시했다. 비상 버튼을 누르지 않아 조타실에서 방송이 되지 않자 무전기를 통해 여객부 승무원한테 방송을 거듭 지시했다. 강원식 1등 항해사도 사고 뒤 자신의 선실에 들러 휴대전화를 가져왔다. 청해진해운 직원에게 전화해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렇게 탈출 준비를 하면서도 승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경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에서 “방송·선내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거짓말했다. 수사본부는 공소장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피고인들(선원들)은 해경 123정 1척만이 세월호 인근에 도착하는 것을 발견했다. 승객들에 대한 퇴선 명령이 없는 상태에서 선원들이 먼저 탈출하면 우선적으로 구조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사본부 관계자가 덧붙였다. “구조정이 순차적으로 도착하고 있는데 승객들이 단체로 퇴선할 경우 승무원이 후순위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이라면 희생자에 대한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언론이 제기한 의혹들 사실로만약 선원들이 초기에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검찰은 승객을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구명벌(구명뗏목) 정원 수가 세월호 승객보다 많았고, 인근 어선과 해경 경비정 등이 구조하러 잇따라 도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인 특정 객실에서 생존자가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수사본부는 증거로 들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예상 그대로였다. 조타 실수, 불법 증축, 평형수 부족과 과적, 부실 화물 고박 등 언론에서 제기한 모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1994년 일본에서 건조돼 18년간 운항한 세월호를 2012년 8월 청해진해운이 115억원에 구입했다. 넉 달 동안 무리한 증축으로 좌·우현에 불균형이 생겼다. 운항을 시작한 뒤 침몰 위기 상황도 겪었다. 지난해 11월28일 인천에서 승객 117명을 싣고 출항했다가 다음날 아침 8시20분 제주 부근 해상에서 파도에 휩쓸려 좌현으로 기우뚱했다. 선원들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청해진해운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복원력 결함 탓에 한국선급은 화물은 최대 1077t, 평형수는 1565t을 싣도록 선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사고 전날인 4월15일 세월호는 화물을 기준보다 두 배 많은 2142t을 실었고 평형수는 기준의 절반인 761t만 채웠다. 그리고 출항 전 안전보고서를 선원이 허위로 작성했고 운항관리사는 이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불안한 상태로 출발한 세월호는 유속이 빠른 진도 맹골수도의 방향 전환 장소에서 소각도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원래 선장인 신아무개씨가 늘 강조하던 일이다. 하지만 사고 당일 아침 8시48분, 조타수 조씨는 조타기를 135도에서 150도가 넘게 급격히 꺾었다. “조타 각도를 140도로 맞춰라”라는 3등 항해사 박씨의 지시보다 10도 이상 더 돌렸다. 급격한 변침에 따라 오른쪽으로 급히 방향을 튼 세월호는 좌현 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무리한 증축으로 복원성에 구조적 문제가 생긴데다 적정량을 크게 초과한 화물량 탓에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발생 1시간43분 만인 오전 10시31분 세월호는 침몰했다.
수사 칼날은 해경 부실 구조로 옮겨가검찰 수사의 칼날은 해양경찰의 부실 구조와 대처로 옮겨가고 있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까지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돼 있어 검찰로서는 수사가 불가피하다. 해경이 참여한 수사본부가 아니라 광주지검 특수부에서 이번 수사를 전담할 전망이다. 검찰이 밝혀야 할 내용은 이렇다. △신고 접수 직후부터 허술한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낭비한 과정 △구조 과정에서 선내에 진입하지 않은 이유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와의 유착 의혹 등이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특별검사제가 도입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16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 17명과의 면담에서 “(진상규명) 특별법은 필요하다고 보고 특검도 해야 된다”고 밝혔다. 참사와 관련한 정부 책임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유족들의 특검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고 청와대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승환, ‘구미 사태’ 후 공연 요청 줄이어…“7월까지 ‘헤븐’ 투어”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단독] ‘총선 전 계엄’ 윤석열 발언 당일 신원식, 김용현 불러 대책 논의
‘내란 비선’ 노상원 수첩에 정치인·언론인 ‘사살’ 표현 있었다
대만 전자산업노조 “삼성 반도체 경쟁력 부족은 근로시간 아닌 기업무능 탓”
북 충돌 빌미로 계엄 노린 듯…노상원 수첩엔 ‘NLL서 공격 유도’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
세계서 가장 높이나는 새, ‘줄기러기’가 한국에 오다니
12월 24일 한겨레 그림판
윤석열 쪽 “엄연한 대통령인데, 밀폐 공간에서 수사 받으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