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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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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학교여도 이렇게 늑장 대응 했을까요”

안산에 6년 산 작가의 르포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재난당해, 긴 시간을 둔 공동체 복원이 숙제
등록 2014-05-01 16:39 수정 2020-05-03 04:27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관에 설치된 ‘세월호’ 임시분향소에는 시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적은 쪽지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정용일 yongil@hani.co.kr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관에 설치된 ‘세월호’ 임시분향소에는 시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적은 쪽지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정용일 yongil@hani.co.kr

열여덟 살 ㅇ군은 연극반 회원이었다. 후배를 무섭게 대하는 다른 2학년들과 달리 ㅇ군은 1학년 후배 연극반원들과 친했다. 키 작고 귀엽게 생긴 ㅇ군을 후배들도 잘 따랐다. ㅂ양은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자주 드나들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ㅂ양은 학원을 가지 않고 주말과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열람실에서 친구와 속닥속닥 떠들다가 열람실 밖으로 쫓겨난 적도 가끔 있었지만 그래도 집중할 땐 집중하는 학생이었다. ㄱ군은 학교 앞 삼거리 문방구의 단골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자주 드나든 까닭에 문방구 주인아주머니와도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였다. 이 아이들은 모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4월16일부터 열흘 가까이 우리는 한 편의 집단 참극을 슬로비디오로 지켜봤다. 첫 속보를 듣고 그 뒤 일어날 비극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환한 대낮, 육지도 가깝고 풍랑도 거세지 않아 보였다. 나도 ‘어이쿠 저런’ 하고 걱정은 했지만 곧 다른 일을 했다. ‘전원 구조’란 자막이 포털 사이트 화면에 떴을 때 클릭하지도 않았다. 그 뒤로는 모두가 겪은 일을 나도 겪었다. 우왕좌왕하는 구조 대응,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부의 재난관리 시스템, 그 와중에 기념사진을 찍는 고위 공직자들, 울다 실신하는 부모들을 지켜봐야 했다. 커다란 나사못을 누가 내 이마에 드라이버로 몇 날 며칠 천천히 박아넣는 기분이었다.

경기도 안산에 이사 온 지 6년째지만 딱히 안산이 내 삶터라고 느끼지 않았다. 안산은 1970~80년대에 수도권의 공업 계획도시로 건설됐고, 원주민보다 이주해온 사람들의 비중이 압도적인 도시다. 일자리 때문에, 주거 환경 때문에 이사 온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이곳을 떠날 가능성을 늘 품고 있었고 그래서 도시에 대한 소속감, 다른 시민에 대한 동료의식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지척에 있는 고교 한 학년의 80%를(2학년 10개 반 중 2개 반 규모만이 남았다) 세월호가 데리고 가라앉았다. 내가 사는 빌라의 집주인을 비롯해 ‘한 다리만 건너면’ 직간접적으로 희생자와 닿는 현실 앞에서, 이것은 도저히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조차 정신이 몸 속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를 상태였지만,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알던 아이들…”

단원고 근처 문구점의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혹시 단원고 아이들” 하고 말을 꺼내자 한참을 침묵하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알던 아이들인데… 할 말 없어요.” 학교 앞 정자에서 한창 다른 얘기에 열을 올리던 노인들은 누가 “어이구 불쌍한 것들…” 하고 말을 꺼내자 갑자기 다들 입을 닫고 침울해졌다. 그나마 얘기를 해준 이는 학교에서 200m쯤 떨어진 도서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였다. 내가 말을 걸자 그녀는 도서관에 자주 오던 학생들 얘기를 꺼냈다. “단원고 애들은 착하고 공부도 잘했어요. 지난해 새 교장 선생님도 오시고 해서 새롭게 뭔가 해보려는 분위기였어요.” 그는 도서관 앞의 고잔동 연립주택 단지를 가리키며 “저기 한 집 건너 한 집이 단원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단원고 2학년생의 80%가 고잔동, 와동, 선부동에서 등교했고 이번 수학여행에 참여한 학생 325명 가운데 109명이 고잔동 학생이다.

생존자와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어떨까. 구조된 학생 75명은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단원고 1학년생 ㅈ군은 자기 동아리 선배 20여 명 가운데 4명이 구조됐고 1명이 주검으로 발견됐으며 나머지는 생사를 모른다고 했다(4월21일 현재). ㅈ군을 남달리 잘 챙겨주고 먹을 것도 사주던 동아리 선배도 실종됐다. 그는 장례식장에서도 많이 울었다. “슬픈 것보다 화가 나요. 왜 이렇게 됐는지. 학교에 정을 좀 붙이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촛불기도회에서 만난 안산의 한 고교 여학생은 “단원고에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가 학교에서 실신했다”고 한다.

단원고 떨어져서 교육청에 항의했는데

와동 주민인 김명옥(가명)씨는 이번에 한편으로 충격을 받고 한편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난해 딸이 1지망인 단원고에 떨어지고 2지망인 먼 학교에 배정됐던 것이다. “그때 교육청에 전화해서 막 항의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후유….” 딸의 친구 여럿이 죽거나 실종된 상태라서, 천만다행이란 말도 함부로 못한다. 딸은 카카오톡 프로필을 죽은 친구의 사진으로 바꾸었고 매일 다른 친구의 사진으로 바꾼다. “딸애가 밥도 안 먹고 울어요. 지금도 무서워서 말을 못 붙이겠어요.” 술집이나 식당을 찾는 사람도 줄었다. 상록구에서 식당을 하는 김혜진(가명)씨는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어요. 저도 뉴스만 봐도 울기 일쑤고요”라고 한다. 단원구의 한의사 권재수(가명)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다. TV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으면 자꾸 체하며 설사를 한다.


딸은 카카오톡 프로필을 죽은 친구의 사진으로 바꾸었고 매일 다른 친구의 사진으로 바꾼다. “딸애가 밥도 안 먹고 울어요. 지금도 무서워서 말을 못 붙이겠어요.”


길 곳곳에 희생자 추모와 무사 귀환을 바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상점, 단체, 기관에서 자발적으로 내걸었다. 단원고 정문 등 몇 군데에는 소망의 포스트잇이 나비 떼처럼 가득 붙어 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야, 억울해하지 말고 이제 편히 쉬렴’ ‘어른들을 용서하지 마라’ ‘유○○ 선생님 스승의 날에 찾아뵐게요. 그때 꼭 뵐 수 있는 거죠?’ 시작은 월피동의 한 슈퍼였다. 슈퍼 주인이 실종된 아들을 찾으러 진도에 간 사이 닫힌 셔터에 그 아들의 생환을 바라는 포스트잇을 사람들이 붙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산다는 40대 여성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말했다. “선장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에 너무 화가 나요. 강남의 학교였어도 이렇게 늑장 대응을 했을까요?” 단원고에 인접한 와동과 선부동에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일부러 정부가 구조를 늦게 했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보인 무능이 이런 불신을 뿌리내리게 한 원인인 것은 사실이다.

지난 4월23일 올림픽기념관에 임시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첫날에만 1만 명이 분향소를 방문했다. 청소년, 주부, 직장인, 자영업자, 종교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닦는다. 이들에게 “혹시 저 중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 이는 역으로 안산이 입은 재난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최초의 계획도시, 이주자의 도시

세월호 참극은 ‘사건’ 정도를 이미 넘어섰다. 이것은 ‘재난’, 혹은 ‘재난 사태’다. 실종자, 사망자의 규모가 엄청난 것은 물론 안산 시민 대부분이 상당한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안산의 시민사회가 이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안산은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헬리콥터 순시 중에 지목해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설계됐다. 서해안의 한적한 반농반어 지역에 반월·시화공단이 들어서고 30년간 인구가 1천% 이상 증가했다. 안산은 현재 “인구 75만 명에 국적은 70개”라고 할 정도로 ‘이주자의 도시’다. 인구의 유입과 이탈이 많고 정주 의식이 확고하지 않아, 주민의 공동체 참여 의식은 취약한 편이다(오경석 외, ). 와동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김은호 목사(희망교회)는 “시민사회가 활발해 보이지만 마을에 들어가 있지 않아 토대가 부실한 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압축적 근대화를 한 번 더 압축한 도시인 만큼 안산에는 온갖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고, 그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빠르게 성장하는 배경이었다. 2000년대 초 시화호 문제나 2012년 SJM 직장폐쇄 및 용역투입 사건에 안산 운동 진영이 공동 대응해서 승리한 게 대표적이다.


근처에 산다는 40대 여성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말했다. “선장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에 너무 화가 나요. 강남의 학교였어도 이렇게 늑장 대응을 했을까요?”


김은호 목사는 사건 당일 답답한 마음에 다른 활동가들과 ‘실종자 무사귀환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시작했다. 알음알음 찾아온 50여 명이 단원고 교내에서 촛불을 밝혔다. 곧 ‘무사귀환을 위한 안산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구성됐고, 촛불기도회에는 날마다 인원이 불어났다. TV를 보며 가슴만 치던 사람들이 뭐라도 하기 위해 나오면서 기도회는 넓은 공간으로 옮겼고, 나흘 뒤 일요일에는 800여 명이 모였다. 시민모임이 물꼬를 트자 안산의 35개 시민사회단체를 포괄한 ‘세월호 침몰사고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연대’가 결성됐다. 사건 일주일째, 안산시민연대가 주최한 ‘무사귀환을 위한 50배 기도’에는 1천 명 넘게 참가했다. 생환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면서 시민들의 발언에 분노가 커져갔다. 서울이나 외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안산시와 ‘단원고 지원을 위한 안산시민단체협의회(자원봉사단체 등)’의 대응도 각각 진행되고 있다. 안산시민연대가 촛불로 시민들의 구심점을 만들고, 시와 행정기관은 장례식 준비나 생존자 치료를 진행하며, 자원봉사단체는 진도에 봉사자를 파견하면서 안산에 남겨진 실종자 형제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업무 간 체계가 없어 비효율이 발생하기에, 안산시민연대는 안산의 민관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범시민대책위’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도 회원이나 임원 자녀가 실종되는 등 멍한 상태에 있다가 겨우 벗어나는 중이다. 이제 제안된 범시민대책위는 장례·분향 등 급한 업무부터 생존자와 시민 모두의 장기적 회복 대책, 학교 정상화, 피해자 보상, 사건의 진상·책임 규명, 국가재난관리시스템 개혁 등을 포괄하는 범지역적 기구의 성격을 띤다.

절규하는 시민을 두려워하라

다행히 안산은 민관 협력의 경험이 축적돼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생길 수 있다. 가령 피해자 가족 내에서도 일상으로 조속한 복귀를 원하는 생존자 가족과 명예 회복 및 보상을 놓고 계속 싸우는 사망자 가족의 의견이 갈라질 수 있다. 지금도 부검이나 분향소의 영정 설치 등의 문제에서 서로의 입장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안산시민연대 김종천 집행위원은 “그것은 갈등이 아니라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공동체를 재건하려면 그런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일본 고베 대지진이나 미국 9·11 등 집단 참극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안산이 이 재난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침몰하는 배를 향해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가슴을 친 국민 모두의 일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극에서 세 가지를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첫째 국가의 재난대비 시스템이 총체적 부실 상태였다는 사실과, 둘째 돈을 생명보다 우선시해온 관행이 삶의 지반을 갉아먹어왔다는 사실과, 끝으로 민주주의가 허약해지면 우리 스스로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대통령의 호령은 무서워해도 절규하는 시민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독일 동화 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동화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고 살았다. 그 교훈은 이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선 아이들이 제물이 되고 만다.

오준호 작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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