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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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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부족, 진술 번복, 무죄, 무죄…

‘왕재산’이라는 단체는 실체가 없다, 국정원 진술은 강요됐다…
한반도에서만 21세기에도 지속된 공안 사건, 판결은 ‘무죄’ 잇따라
등록 2013-09-04 15:27 수정 2020-05-03 04:27

20세기 냉전은 비단 국가 간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적대국이 공작을 통해 국가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깔려 있었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세계적으로 냉전은 역사로 묻혀갔지만, 오직 한반도에서만 21세기에 들어선 지 10년 넘도록 대중적 ‘냉전적 공포’를 자극한 사건들이 여전히 잇따랐다.

20여 년간 장기 암약 반국가단체?

근자엔 지난 7월26일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왕재산’ 사건이 있었다. 2년 전인 2011년 7월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이른바 ‘왕재산’이란 단체의 조직원 등으로 지목한 10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실시한 뒤, 다음달인 8월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구성 및 찬양고무죄 등의 혐의로 5명을 구속 기소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경기·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왕재산’이라는 간첩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이들이 20여 년간 장기 암약한 반국가단체로,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아 국내에 ‘혁명전사’를 육성하고 △인천 지역의 공단과 군부대 등 주요 시설을 폭파할 음모를 꾸미고 △북한에 국내 정치 상황과 군사 정보 등을 보고하고 △조직원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중앙정치 무대 침투를 시도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고 했다.
2012년 2월 1심 재판부는 이들이 민주당의 내부 동향을 수집하고 현 정세를 분석하는 등 간첩 활동을 벌인 점과, 외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목적 수행을 협의한 점 등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왕재산’이라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2심 재판부도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는 무죄로 보는 한편, ‘실제 국가 존립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았다’며 형량을 일부 줄였다.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더 최근인 8월22일에는 국가보안법상의 간첩 혐의를 받은 북한 화교 출신 탈북자 유아무개씨에게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다. 유씨는 2011년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북한을 드나들면서 탈북자 200여 명의 신상정보를 북한 쪽에 전달한 혐의 등으로 지난 2월26일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국정원 조사 때 여동생이 유씨의 혐의를 인정한 발언이 유력한 증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유씨 쪽 변호인은 밀입북했다고 지목된 시기에 유씨가 중국에서 가족·지인들과 찍은 사진 등을 반박 증거로 제출했다. 심지어 핵심 증인인 여동생도 법정에서 국정원에서의 진술이 강요됐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재판부는 “여동생의 진술을 제외하고 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증거로는 유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판결의 배경을 밝혔다.

부녀간첩으로 확대하려던 여간첩 사건

‘광우병 촛불시위’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2008년 8월, 검찰이 발표한 ‘탈북자 위장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애초 의붓아버지 김동순씨까지 포함한 ‘위장 탈북 부녀간첩’ 사건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였다. 원씨는 북한 국가보위부 지령에 따라 2001년 조선족으로 위장 잠입한 뒤, 군부대 안보강연을 통해 북한을 찬양했고, 대북무역을 한다며 ‘윗선’을 접촉했으며,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해 군인을 상대자로 만나 포섭을 시도했다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그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 포기로 형이 확정됐다. 의붓아버지 김씨는 원정화씨에게 10억원 상당의 공작금을 제공하고, 탈북자로 위장 입국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소재를 알아내려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됐으나,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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