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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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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사지 말고 어렵게 만들어보아요!

아이폰 자가수리·빔프로젝터 세미나 등 쓸데없거나 사는 게 훨씬 편리한 물건 만드는 사람들, 혹은 테크놀로지 DIY
등록 2013-05-26 18:01 수정 2020-05-03 04:27

“쉽게 사지 말고 어렵게 만들어보아요!” 3명의 청년이 있다. 김뽕(29·김찬기), 히히(29·박희진), 모래(27·김연정)씨는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자연에 부담을 줄이는 생산 과정을 통해, 작은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수산업’의 생산조합원들이다. “누구나 기술을 자기 안방으로 가져와 만들 수 있는 시대 아닌가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스튜디오에 모여 공작을 도모하는 ‘땡땡이공작’은 ‘테크놀로지 DIY’를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임이다. 손노동을 개발하고 워크숍을 주최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 일찍 이 흐름에 뛰어든 몇몇 모임은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분절되고, 과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손노동은 건강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중심에 손노동과 관련한 문화·예술적 지식을 대중과 연결하는 청년 조직들이 있었다.

대규모 생산 시스템에 의지하는 대신 직접 만들고 고치는 손노동은 분업화한 사회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건강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땡땡이공작의 ‘아이폰 수리수리 자가수리’ 워크숍(오른쪽). 수산업이 버려진 나뭇조각으로 만든 ‘건강체조후크’. 수산업 제공, 땡땡이공작 제공

대규모 생산 시스템에 의지하는 대신 직접 만들고 고치는 손노동은 분업화한 사회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건강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땡땡이공작의 ‘아이폰 수리수리 자가수리’ 워크숍(오른쪽). 수산업이 버려진 나뭇조각으로 만든 ‘건강체조후크’. 수산업 제공, 땡땡이공작 제공

“누구나 기술을 자기 안방으로 가져와 만드는 시대”

수산업은 버려진 나뭇조각 등 재활용품을 이용해 실생활에 쓰이는 작은 소품을 만드는 손노동 모임이다. 서울 서대문구 불광동 청년일자리허브에 자리한 수산업 사무실 벽을 둘러싼 물건들은 모두 수산업 구성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페트병을 잘라 만든 인형, 손뜨개 수세미를 이어붙인 벽 장식품, 벽에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고정돼 있는 사람 모양 옷걸이, 실크스크린 감광기 등. 5월15일 수산업 사무실에서 만난 김뽕씨는 “대량생산 제품의 좋은 점과 다른 차원으로 소량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부터 사람들이 얻는 재미가 있다.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즐거움, 물건에 대한 애착, 함부로 소비하지 못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손을 매개로 만난 수산업 멤버들은 지금 각각 몸담고 있던 생활전선에서 탈출해 ‘청년 백수’ 길을 택했다. 모임의 지속을 위해 소규모 워크숍을 열고 제품 판매에도 나서지만 아직은 모자라는 상태란다. 김씨는 대량생산 제품과 경쟁할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가격이라고 말했다. 가령 요즘 수산업이 ‘미는’ 상품인 ‘건강체조후크’는 1만원이다. 목공방에서 쓰고 남은 목재 조각을 재사용했지만 물건을 만드는 데 소요한 시간, 부자잿값 등을 따지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닌데, 여러 장터를 거쳤지만 이제까지 단 2개 팔렸다. 하지만 수산업은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이 손으로 만드는 과정에 깃드는 무념무상의 시간을 통해 휴식을 얻는다는 반응을 들으면서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이들이 추구하는 방식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늘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됐다.

땡땡이공작은 요즘 빔프로젝터 직접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워크숍은 3회로 계획돼 있지만 실상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강좌다. 이들은 미리 빔프로젝터를 분해하고 완벽히 이해해 매뉴얼을 만들어놓기보다는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과 같이 연구하고 방법을 찾는다. 매 워크숍이 시행착오이다보니 처음 책정했던 비용보다 재료비가 점점 불어난다. 그러나 손을 움직이며 골똘하게 집중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구성원들은 이를 굳이 돈의 가치로 환산하지 않는다.

땡땡이공작은 “기술이 많이 공유되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누구나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기술을 ‘가지고 놀며’ 쓸데없는 것을 만드는 데 집중하거나, 돈 주고 사는 편이 훨씬 빠르고 편리한 물건을 만드는 데 몰두한다. 예컨대 땡땡이 공작은 레고를 조립하고 전기를 연결해 불 밝히기, 아이폰 자가 수리, 폐CD로 미러볼 만들기, 실크스크린 제작,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일상적 재료에 구현하기, 빔프로젝터 만들기 등의 작업을 이어왔다.

“파는 것보다 나은걸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두 과거 어느 시점에는 일상적으로 직접 만들었을 물건이다.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시대지만, 만들어진 원리를 알아가다보면 내가 의도한 대로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게된다.” -장재원
생산하는 잉여들

땡땡이공작 멤버들은 자신들이 그랬듯이 손으로 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을 가진 사람이 곳곳에 숨어 있으리라는 걸 안다. 그래픽디자이너인 멤버 선윤아씨는 “컴퓨터로 항상 무언가를 하니까 손으로 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를 직접 다루고 싶다. 컴퓨터 안에 머무는 시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량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한보람씨는 “여유롭고 재미있게 살 방법을 찾다보니 잉여롭지만 뭔가 생산할 수 있는 공작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장재원씨는 진정한 손노동자다. 땡땡이공작을 시작하기 전부터 집에서 비누·맥주 등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왔다. “파는 것보다 나은 걸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두 과거 어느 시점에는 일상적으로 직접 만들었을 물건이다.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시대지만, 만들어진 원리를 알아가다보면 내가 의도한 대로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게 된다”고 말했다. 장씨는 손노동 워크숍 모임이 생기면서 “혼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재미있게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이 생겨서 좋다”고 덧붙였다. 땡땡이공작도 수산업처럼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해나갈지 고민이다.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을 고려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워크숍을 기획해보기도 하고, 땡땡이공작만의 손노동 키트 제작·판매도 고려 중이다.

전효관 청년일자리허브 센터장은 “경쟁 시스템에 지친 청년층이 조직 사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전파하려는 움직임이 움트고 있고, 손노동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센터장은 “너무 취향화하거나 개인적인 작업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링크를 연결하고, 이들 그룹을 네트워킹해주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 센터장은 2004년 작은 모임에서 출발해 사회적 기업이 된 재활용 창작그룹 ‘노리단’, 폐목재로 새 가구를 만들고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 공방을 운영하는 ‘문화로놀이짱’ 등이 대중과 생활예술이 결합한 좋은 예라고 말했다.

공허하지 않은 ‘무목적성’

독일의 젊은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러는 에서 현대의 도시 노동자들은 “‘쓸모없는’ 무목적성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공허하다고 느낀다. …경쟁사회는 일이든 놀이든 여유 부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성과와 효율성과 기동성이다”라고 썼다. 땡땡이공작의 장재원씨는 “‘우리 이거 사자’ 대신 ‘우리 이거 만들자’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우울한 경쟁사회에서 성과, 효율, 기동성을 내던지고 잉여와 무목적성을 추구하는 젊은 조직들이 점점 확산될 조짐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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