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빚을 진 사람을 멀리하고 자신에게 빚진 사람을 중용해 충성하도록 만드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951호 특집 ‘그림자만 있고 2인자는 없다’ 참조)을 감안하면 최외출 영남대 교수는 ‘빚진 자’의 화신일지도 모른다. 박정희와 박근혜. 두 사람의 ‘박통’ 덕분에 학업을 마쳤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났고, 교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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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 최 교수는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실제 최 교수만큼 박 대통령의 곁을 오랫동안 지킨 측근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선 이후 나란히 청와대에 입성한 이른바 ‘비서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이 박 대통령을 돕기 시작한 시점은 그의 정치 입문기인 1998년 전후다. 최 교수는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1978년부터 친분을 맺었다. 무려 35년에 이르는 세월이다.
이번 대선 기간에 그가 맡은 일은 박 대통령의 캠프 비서실 기획조정특보. 하지만 캠프 내부에서도 그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한 캠프 출신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영입한 외부 인사 중 상당수가 최외출 교수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관통하는 시기에 합류한 안대희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인요한 부위원장의 영입 과정에도 그의 존재감은 드러난다. 최 교수는 이들에게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대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9월 소설가 이외수씨와 가진 회동을 주선한 것도 최 교수다. 이씨는 “최외출 특보는 나와 코드가 통했다. 가난이 바탕이 된 삶의 치열성이 닮았고, 달변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새 정부 출범 과정에도 최 교수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는 게 여권 내부의 시각이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최 교수의 추천으로 입각한 케이스다. 두 사람은 절친한 영남대 동문 사이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간사를 지낸 곽병선 전 경인여대 총장과 박 대통령을 연결해준 당사자도 최 교수다. 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이승종 전 인수위원은 최 교수가 2008년 설립한 한국새마을학회장의 창립 멤버였고, 학회 부회장도 지냈다.
가 지난해 10월 보도한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파문 직후에는 배재정 민주통합당 의원이 장학회 쪽 인사와 최 교수가 8차례 통화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관련 사실을 부인했지만, 사실상 박 대통령의 지시로 파문 진화의 대책을 장학회 쪽과 논의한게 아니냐는 것이 의혹의 골자였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에 이어 3월28일 후임 이사장에 내정된 김삼천씨도 최 교수와 연결된다. 김씨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까지 이사장을 지낸 한국문화재단의 감사로 일했다. 최외출 교수는 2007년부터 이 재단의 이사였고, 지난해에는 재단 청산 절차를 주도했다. 한국문화재단은 2012년 6월 청산하면서 재단의 자산 13억원을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는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로 넘겼다. 최 교수는 이 사업회에서도 이사직을 맡고 있다.
또 한 명의 예스맨 vs 사심 없는 사람2007년 대선 과정에선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한국문화재단 사무실이 곧 박 대통령의 비선조직인 ‘신사동팀’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신사동팀을 이끈 것은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씨였다. 얽히고설킨 ‘비선의 갈림길’마다 최 교수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셈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최 교수를 ‘박근혜 비선라인의 우두머리’라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은 이유다.
과연 최 교수는 과거의 유물에 사로잡힌 정치 모사꾼인가, 자기 신념에 충실한 계몽운동가인가. 여권 안팎의 관측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최외출 교수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다. 욕심도 많고, 그만큼 문제도 많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결성된 박근혜 대통령의 ‘5인 공부모임’과 관련된 한 인사는 “당시 5인 공부모임 때 최외출 교수는 대구에 있었기 때문에 자주 나타나지도 않았다”며 이렇게 전했다. “가끔 참석하더라도 자신의 의사 표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리에 끼지 못한다는 인상이었다. 토론 과정뿐 아니라 식사나 술자리에서도 그랬다. 지역학, 지역개발, 새마을운동 등을 주로 연구하지 않았나. 정책이든 행정이든 전국적인 차원의 전문성은 없어 보였다. 결국 박 대통령과 비서 3인방의 입장에서 최 교수는 한 명의 ‘예스맨’이 아니겠느냐.”
반면 최 교수의 주변에선 “결코 사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 교수를 잘 안다는 한 학계 인사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서 뭔가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에 대한 자기 신념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새마을운동과 이를 통한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라는 필생의 과업에 누가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출장비 하나도 허투루 신청하지 않는다더라”고 전했다. 진보적 성향의 또 다른 교수는 “군사정부 이후 20여년에 걸친 민주화 시기에도 최외출 교수는 특별히 모난 행동을 하지 않았고, 학계에서도 숨죽여 지내면서도 그 체제에 순응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인내심도 대단하다고 봤다. 특히 자기 관리는 무서울 정도로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비중 있는 기용 거론됐으나 자택으로 돌아가대선 직후에는 최 교수의 인수위 참여설, 청와대 비서실장 기용설 등이 비중 있게 거론됐으나, 그는 아무런 직함을 맡지 않고 대구 자택으로 돌아간 뒤 쇄도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 등도 모두 고사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최 교수는 과 한 통화에서 “안식년이 끝나는 오는 가을 학기부터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강의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와 가까운 한 지인은 “본인이 워낙 앞에 나서거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정치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일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피력했다”고 전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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