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이단 시비가 점입가경이다. 교단들 사이에 오가는 날선 공방에는 ‘사탄’ ‘마귀’ 같은 살벌한 언어가 난무한다. 시비의 발원지는 보수 교단의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다. 배타적 구원관 등을 이유로 거대 주류 교단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도총회(속칭 ‘다락방’)에 대해 한기총 지도부가 지난 1월 이단 규정을 철회한 것이 발단이었다. 금품 로비설이 불거졌고, 한기총의 핵심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의 목회자들마저 지도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같은 교단 소속임에도 다락방의 이단 해제를 승인한 한기총의 전·현직 대표회장(홍재철·길자연)의 목사직을 박탈하라고 교단 쪽에 요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기총의 핵심 간부 입에서 “과거 다락방에 내려진 이단 판결은 정치적 이유에서 나온 ‘괘씸죄 이단’”이란 말까지 나왔다. 교계의 이단 판결이 그들 말대로 엄밀한 교리적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고백한 셈이다.
몸살을 앓기는 진보 교단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적 진보성을 견지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올해 부산에서 개최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대한 협조를 구하려고 반(反)WCC 성향의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기총과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게 사달이 났다. 선언문에는 △종교 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애 반대 △타 종교 신자들에 대한 개종 전도 허용 △성서 무오설(無誤說) 지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보수 교계가 진보·자유주의 성향의 신학적 흐름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며 들이댔던 ‘감별 기준’들이다. 진보 개신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거세게 반발했다. 한신대·감리교신학대·성공회대 교수들의 비판 성명이 이어졌다. NCCK 가맹 교단이면서 과거 보수 개신교단에 의해 ‘비정통’으로 매도당한 아픔이 있는 한국정교회에선 ‘쓰레기 합의문’이란 격한 반응이 나왔다. 합의문에 서명한 김영주 NCCK 총무가 사죄하고 합의문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파문은 진정됐지만, 보수 교회로부터 공공연한 이단 시비에 시달려온 비주류 교회의 신앙적 자존감은 다시 한번 상처를 입었다.
이단 판정을 받은 신흥 종파에 대한 배척도 눈에 띄게 강화되고 있다. 1960년대 개신교 신종파 운동에 뿌리를 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총회장 이만희)을 상대로 벌이는 범교파적 배격운동이 그 예다. 실제 지난 1~2년 전부터 많은 교회가 입구에 ‘신천지교인 출입금지’라는 현수막과 포스터, 스티커를 부착하고 대대적인이단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기엔 은밀하되 공격적인 신천지 특유의 선교 방식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신천지 교인 신분을 숨긴 채 기성 교회에 출석하며 신도들을 빼가거나, 규모가 작은교회에선 핵심 교직을 장악한 뒤 교회 자체를 신천지 소속으로 바꿔버리는 식이다. 교계 안팎의 이단 공방과는 거리를 둬온 기독교방송(CBS)마저 ‘신천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지속적인 추방 캠페인을 펼칠 정도면, 이 신흥 종파에 대한 주류 개신교의 위기의식이 남다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단 시비는 교계 울타리를 넘어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신천지 연루설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이 벌인 진실 공방은 이단 논란의 정치·사회적 휘발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당시 온라인상에는 박후보가 신천지 교회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신천지 핵심 인사들이 박근혜 캠프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됐다. ‘새누리’라는 당명을 한자로 옮기면 ‘신천지’가 된다는 그럴듯한 풀이까지 덧붙여졌다. 새누리당은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소문의 배후로 민주통합당을 지목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칫 이단 시비에 민감한 보수 개신교인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한국 개신교계의 잦은 이단 시비는 목회자와 신도들이 ‘이단’이라는 종교적 표지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실과도 연관돼 있다. 유달상 편집인은 “특정 교회나 종파가 교계 주류로부터 이단으로 한번 지목되면 교세 확장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소속 신자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마저 단절돼버린다. 심지어 자녀들의 혼사마저 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이단 시비에 휘말린 쪽은 어떻게든 그 굴레를 벗어나려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다. 주류 교단의 ‘이단 감별사’들에게 로비를 하거나, 교단 실력자들과 접촉해 이단 해제를 청원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선거자금이 투입되는 교단이나 연합기구의 큰 선거를 전후해선 교계 안팎에서 ‘이단종파 자금 유입설’이 끊이지 않는다. 1970~80년대 ‘통일교 자금 유입설’로 주요 교단들이 분란을 겪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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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볼 지점은 왜 개신교계에서 유독 이단 시비가 끊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선 교단(종단) 난립 문제를 꼽는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종교단체 현황(2011년)자료를 보면, 소속 종단이 가장 많은 곳은 불교다. 265개나 된다. 개신교는 이보다 적은 232개다. 그럼에도 이단 논란의 빈도와 강도는 불교를 압도한다. 일반적 설명은 개신교 자체가 배타성이 강한 종교라는 것이다. ‘아브라함 종교’에 뿌리를 둔 유일신교의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이슬람에 비해 기독교, 특히 그 안에서도 개신교에 유달리 이단 논란이 잦은 이유는 쉬 해명되지 않는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서울대 강사)은 말한다. “이단 논쟁은 교리 해석을 둘러싼 갈등에서 파생한다. 그런데 같은 유일신 전통에 있더라도 유대교와 이슬람은 교리보다 행위(율법)를 강조하는 까닭에 이단 논쟁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 반면 기독교는 행위보다 교리를 중시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도 개신교, 개신교 중에서도 보수 교단에서 이단 논쟁이 격렬한 이유는 뭘까. 이어지는 설명은 이렇다. “가톨릭은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이 강조되고, 교황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위계구조 아래 통일성이 확보돼 있다. 하지만 개신교는 주인 없는 종교다. 성경과 교리 해석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에서 그 배경을 찾기도 한다. 김학철 연세대 교수(신약학)는 “이단 논란은 초기 기독교부터 있었고, 기독교의 역사 자체가 이단 논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부단히 출현하는 소수 교설(敎說)과의 대결·투쟁 속에서 자신의 신학과 교리 체계를 세우고, 신자 집단에 허용되는 신앙의 테두리를 정교화해온 게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는 “이단이 없었다면 기독 교리의 집약이자 신앙고백의 기초인 사도신경도, 니케아신조도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스스로를 정립하게 만든 ‘거울’이자 ‘매개물’이 다름 아닌 이단 종파라는 얘기다.
종교학자들은 이단 시비를 개신교 신학자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이단은 종교현상이자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장석만 종교문화비평학회장에 따르면, 정통과 이단의 구분법은 종교적 신앙집단뿐 아니라 세속적 정치결사나 이데올로기 집단에도 존재한다. ‘사문난적’ 시비로 들끓었던 조선 후기 성리학이나 ‘정통-수정주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현대 정당 안에서 벌어지는 허다한 ‘법통 다툼’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 집단 내부에서 누가 정통으로 공인받고 이단으로 단죄받는지는 집단의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에 따라 갈린다. 대체로 이단으로 몰리는 것은 소수파이면서 현행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이다. 이런 이유로 종교학자들은 ‘이단’보다 ‘섹트’(Sect), ‘소종파’라는 중립적 표현을 선호한다.
양쪽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단이란 결국 ‘권력의 효과’이자, 권력을 지닌 세력이 ‘종교적 진리’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 있게하는 ‘내적 타자(他者)’라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단은 추방되거나 박멸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권력이 있는 곳엔 항상 이단이 존재할 뿐 아니라, 지배 관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선 없는 이단도 만들어내야 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자 김진호 목사는 “이단 자체보다, 이단을 만들어내는 주류교회의 욕망을 분석하는 게 우선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주류 질서에 반항한 숱한 소종파가 ‘사탄’과 ‘이단’의 이름으로 정죄받아온 한국 개신교사를 봐도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시기가 1950~60년대다. 한국 교회에서 사탄론과 이단론이 가장 극성을 부린 때이자, 박태선의 전도관, 나운몽의 용문산 기도원, 문선명의 통일교 등 오늘날 이단시되는 개신교계 소종파의 원류들이 대거 출현한 시기다. 당시 한국 사회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살육의 후유증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아와 질병, 자연재해가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여전히 옥죄던 시절, 교계 안팎에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인물이 나운몽과 박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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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몽은 1954년 자신이 세운 한국 최초의 기도원인 용문산 기도원을 거점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열었다. 열광적 분위기에서 진행된 그의 집회는 신들림과 방언, 질병 치유 같은 신비체험이 속출했다. 전국에 제2·제3의 나운몽이 등장했고, 용문산과 비슷한 열광적 분위기에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기도원도 곳곳에 들어섰다. 이즈음 박태선이 주도한 서울 남산과 한강 백사장 집회도 수십만 군중을 끌어모았다. 나운몽처럼 전국 각지를 돌며 연 그의 집회에도 신비체험이 넘쳐났는데, 평신도뿐 아니라 기성 교단의 목사들까지 몰려와 그의 안수기도를 받을 정도였다.
이들에 대한 주류 교회의 대응은 배척과 파문이었다. 종교다원주의적 교설을 펼치거나(나운몽), ‘재림 예수’를 자처(박태선)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지만, 이런 대응의 저변에는 평신도 출신 신비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교권 세력의 경계심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나운몽과 박태선에 대한 이단 판정에도 불구하고,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신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꾸준히 등장했다. 잇단 이단 파문을 거치며 한국 개신교는 이단에 대한 규정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나갈 수 있었다. 재림 예수나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기독론적 이단’ 외에, 공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교회론적 이단), 직통계시를 받았다는 주장(성령론·계시론적 이단) 모두 이단의 범주에 포함하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연구자들은 이런 개신교의 이단 규정이 신비주의에 대한 교권세력의 뿌리 깊은 경계와 공포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체험을 통한 신의 인식’이다. 문제는 신비주의가 확산되면 교권이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성경이나 교회라는 기관, 성직자의 권위를 통하지 않고 ‘신과의 합일’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직접 듣는 것이 신비주의의 요체인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신비주의는 자유주의와 함께 교권·교리주의에 대항하는 두 개의 강력한 흐름을 형성해왔다. 한국 개신교에서 유영모·함석헌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그룹이나 신비주의적 소종파 모두 보수적 교권세력에 의해 줄곧 불온·이단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비주의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점은 그것이 항상 하층민이나 소수자를 사회적 지지 기반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신비주의는 속성상 교육 수준이 낮고 현세를 초월하려는 열망이 강한 사람들에게 흡인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비주의는 종말사상과 결합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에 등장한 대부분의 개신교 소종파 운동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소종파 운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당대를 고통과 위기의 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이단 시비와 관련한 교계와 사회의 대응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교회사)는 “성찰과 회개를 통해 기성 교회와 목회자가 영적 권위와 도덕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영성과 도덕적 건강함을 되찾으면 기성 교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서 동력을 얻는 문제적 소종파들도 그 호소력이 자연스레 감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진호 목사는 “주류 교단의 경멸과 배척이 소종파들의 고립과 반발감을 심화시켜 건강한 발전 경로를 봉쇄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가 든 사례는 1960년대 박태선의 주도 아래 시작된 ‘신앙촌’ 운동이다. 고통받는 민중의 경제적 자립과 영적 구원의 열망을 받아안고 출발했지만, 교권 위축을 우려한 기성 교단의 배척과 공격에 맞서 폐쇄성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소통과 갱신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자 교주의 카리스마가 지배하는 종교적 게토로 전락해버린 신앙촌의 전철을 되밟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증상은 좌절된 열망의 대체물”‘신경증’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석은 이지점에서 ‘이단’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적절한 참조틀을 제공한다. 프로이트가 볼 때 자아가 형성되려면 인간이 지닌 리비도적 충동이 적절한 수준에서 억압·통제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식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불쾌한 표상과 기억들은 무의식을 형성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무의식의 성분들은 틈만 나면 의식의 통제를 피해 교묘하게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신경증의 ‘증상’이 그것이다. 따라서 프로이트에게 증상이란 ‘좌절된 소망 또는 억압된 열망의 대체물(대리표상)’이란 결론이 가능하다.
비슷한 방식으로, 제도화(문명화)된 종교와 이단의 관계를 파악해보는 것도 여러모로 흥미롭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학자들이 인정하듯,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나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희구하는 종말론적 충동은 인간의 원초적인 종교적 열망의 중요 부분을 구성한다. 하지만 이 열망은 길들여지지 않은 리비도적 충동과 같은 것이어서, 종교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억누르고 걸러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방치할 경우 현실의 교권이나 세속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압되고 추방당한 열정은 일정 조건(사회·정치적 혼란, 교권세력의 위축)이 형성되면 프로이트가 말한 ‘증상’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부단한 정죄와 박해 속에서도 출몰을 반복하는 소종파 운동이 그 증거다. 결국 ‘이단’이란 것도 제도화 과정에서 억압된 신앙적 열정이 느슨해진 검열과 감시의 틈을 비집고 반복적으로 귀환하는 ‘사회적 증상’의 한 형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단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경증 환자”(프로이트)이듯, ‘호모 렐리기우스’(종교적 인간)의 운명에 순응하는 한, 우리는 모두 잠재적 이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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