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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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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비법 위반에 10개월 통화기록이 증거?

등록 2013-03-16 13:30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2월21일, 서울지방법원 519호. 최성진 기자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1차 공판을 보러 갔다.

시트콤 같은 특종
최성진 '한겨레' 기자가 지난 2월21일 첫 공판을 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13일치 '한겨레'토요판에 최 기자가 특종 보도한 ‘최필립의 비밀회동’. 한겨레 류우종

최성진 '한겨레' 기자가 지난 2월21일 첫 공판을 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13일치 '한겨레'토요판에 최 기자가 특종 보도한 ‘최필립의 비밀회동’. 한겨레 류우종

법정은 꽤나 재미있는 곳이다. 사회의 촉수를 건드렸던 민감한 사건들이 몇 달 뒤 쓰레기통처럼 모여드는 곳이랄까. 언론에서 터뜨리고,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이슈 파이팅이 끝난 사건들이 한풀 색이 바랜 채 좀비처럼 법정으로 들어온다. 아직 시비를 가릴 것이 남았다고, 가장 보수적인 가치판단의 잣대인 법으로 최종적인 가치판단을 내려달라고. 어쩌면 법정은 극장 같기도 하다. 꽤나 신랄한 현실이 재현되고는 있지만, 판사가 가운데 앉아 있는 저 무대는 검찰이 수사와 기소 등 거의 모든 것을 연출한 무대 이면을 가린 채 표면상의 중립을 가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표면상의 진실이기는 하나 진실의 한 장면을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극장이 어디 있으랴.

복도는 최성진 기자를 응원하거나 취재하러 온 기자들로 제법 붐볐다. 복도에서 짧은 인터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최 기자는 당당하지만 약간 긴장된 표정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이라, 요즘 뜨는 법이다. 노회찬이 2005년에 ‘삼성 X파일’에 나온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행위가 최근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게 한 법도 이 법이다. ‘삼성 X파일’이라니 가물가물하다. 1997년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사장이 검찰에 수백만원씩 떡값을 돌리자고 대화하는 것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불법 도청해 만든 녹취록이다. ‘삼성 X파일’은 2005년 MBC가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를 취재한 이상호 기자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돈을 준 삼성과 받은 검사는 수사하지 않고, 불법 도청을 한 안기부 관계자와 이를 알린 사람들만기소해 처벌한 사건이다.

공판이 시작되자 이성용 판사가 최성진 기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한다. 이봉창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는다. “2012년 10월8일, 최성진이 최필립과 통화하던 중 이진숙 등이 방문하자 최필립은 통화를 종료했지만, 스마트폰이 꺼지지 않은 상태로, 1시간47초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최필립·이진숙·이상옥의 대화 내용이 최성진에 의해 청취·녹음되었고, 최성진이 이를 실명 보도하였다”는 것.

깔끔한 요약이다. 맥락을 좀 덧붙이면, 대선을 앞두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이상옥 MBC전략기획부장이 정수장학회 사무실에서 비밀리에 만나,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MBC 지분 30%와 지분 100%의 주식을 팔아, 수천억원에 이르는 돈으로 대선 최대 격전지인 부산·경남 지역의 대학생 반값 등록금과 소외계층 복지지원금으로 쓰기로 논의하고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알리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회동 직전에 최성진 기자와 통화하던 최필립의 스마트폰이 꺼지지 않은 바람에 휴대전화 너머로 최 기자가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고, 최 기자는 이를 녹음해 ‘최필립의 비밀회동’이란 기사로 특종을 터뜨려 아름다운 장학사업 등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연 되시겠다.

이건 거의 시트콤이 아닌가. 최성진 기자로선 ‘이게 웬 횡재냐?’ 했을 사안이요, 객관적으로 보면 공영방송의 지분 매각을 밀실에서 합의하고, 그 돈으로 대선에 영향을 끼칠 선심성 사업을 벌이려다 ‘딱 걸린’ 사안인데, 이걸 보도한 게 뭔 문제가 되느냐고? MBC가 고발하고 검찰이 기소한 혐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1항에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명예훼손죄처럼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도 없다. 예외조항으로는 국가안보나 범죄수사 등을 위해 국가기관이 도·감청할 수 있다는 사항이 자세히 나와 있다. 원래 통신비밀보호법은 군사정권 시절 국가기관이 무단으로 행하던 도청을 막기 위해 문민정부 첫해인 1993년에 만들어진 법으로, 주로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도·감청의 합법적 범위를 정한 법이기 때문이다. 형량도 세다. 위반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통화했던 사람·시간·위치까지

판사는 변호인에게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와 증거목록과 증인청구에 대해 물었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진영 변호사는 공소사실은 대체로 인정하나, 증거목록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의 10월8일 전후 2주간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이외에, 2012년 1월1일부터 10개월간의 통화기록이 별도의 증거로 제출돼 있는데, 여기에는 최 기자와 통화한 상대방 번호, 통화 시간, 발신 지역이 있어서, 누가 언제 어디에서 몇 분간 최 기자와 통화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0개월간 기자의 사생활을 훑는 것은 물론이고, 최 기자에게 제보한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언제 어느 장소에 있었는지도 알 수 있는 ‘정보의 바다’인 셈이다. 최성진 기자도 처음 듣는 내용인지 놀라는 눈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최 기자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기소할 만큼 개인의 통신 비밀에 민감한 검찰이 최 기자나 그와 통화한 사람들의 통신 비밀에는 이리도 무신경할 수가.

김진영 변호사는 10개월간의 통화기록이 증거로 채택되면 사건 자료로 열람이 가능하고 혹시라도 유출되거나 공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10개월간의 통화기록도 최성진 기자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는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가치가 있으며,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통신사로부터 제출받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하기야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는 “범죄 수사를 위해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에 통화기록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변호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처럼 불특정한 자료에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주었다는 것도 문제이며, 10개월간의 자료가 굳이 사건과 관련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받아쳤다. 사생활 침해와 과잉 수사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자료로 제출하려면, 사건과 무관한 부분은 지우고 최필립·이진숙·이상옥 등 사건 당사자들과의 통화 내역만 제출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법원에 제출된 증거는 열람 제한이 있고 숫자로만 돼 있는 전화번호는 본인 외엔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기 때문에 증거 제출이 곧 사생활 침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는 자료를 굳이 제출할 이유도 없다고 판단된다며, 검사에게 사건 당사자들과의 통화기록만 남기고 나머지 번호는 지워서 제출하라고 했다.

“그분 모시고 나올 수 있나요?”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전 이사장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전 이사장

김진영 변호사는 검찰이 압수한 최성진 기자의 취재수첩 사본도 증거로 제출했는데, 이것도 관련 없는 기간까지 포함돼 있다며 기간을 특정해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1라운드는 일단 변호사의 승리다.

검사 쪽에서 신청한 증인은 이문규 정수장학회 총무국장이었다. 30년간 총무국장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정수장학회의 성격과 역사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진영 변호사는 정수장학회의 성격과 역사는 사건에서 다룰 사항이 아니고, 최성진 기자의 보도 행위와 내용이 정당했는지를 다투기 위해 정수장학회가 대선 정국에서 논란이 된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증언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판사도 제3자나 학자의 증언이 낫겠다고 동의하자, 변호사는 한홍구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말했다. 라는 책까지 쓴 한홍구 교수를 법원이 중립적인 증인으로 받아줄까 의아했지만, 판사는 순순히 “그분을 모시고 나오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로써 한홍구 교수로부터 정수장학회에 대한 상세한 증언을 들을 기회가 마련됐다.

김진영 변호사는 더 나아가 최필립·이진숙·이상옥 등 대화 당사자들의 증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옥은 지분 매각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최필립·이진숙도 대화 내용이 다르게 보도됐다고 주장하니, 대화 당사자를 불러 대화 경위와 대화 내용을 들어보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법정에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점점 재밌어진다. 이봉창 검사는 “증인으로 부를 수도 있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판사는 공개한 녹취록이 거짓인지 아닌지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거짓으로 공개했다고 가중 처벌되는 것도 아닌데, 대화 당사자들을 불러 무엇을 입증하려는 것인지 물었다. 변호사는 “대화 내용이 공개할 만한 정당한 행위였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행위’라는 예외조항이 없다. 그러나 형법 제20조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아니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일반적인 예외규정이 있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논의를 녹음해 기사화한 행위는 기자의 업무상 정당한 행위이자, 상식적인 행위였음을 설득해 위법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성용 판사는 입증 취지를 알겠다며 증인으로 부르고 싶으면 불러도 되지만, 이는 증인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별도의 의견서로 주장할 내용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별도의 의견서로 재판부를 설득하기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 최근 노회찬 사건에서 대법원은 “비상한 공적 관심 사항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되어야 하며, 언론 보도로 인한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 보호로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던가. 2005년 당시 ‘삼성 X파일’은 사회를 들썩일 정도로 비상한 공적 관심 사항이었고,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떡값 검사의 명예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끊지 않아 들고 있었을 뿐이고”는 안 되나

이성용 판사는 최성진 기자가 알게 된 내용을 보도한 행위의 정당성 이외에, 청취 및 녹음 행위가 정당했는지도 보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며, 변호사에게 자료를 낼 수 있으면 내라고 했다. 청취 및 녹음 행위의 정당성이라. 어렵다. “난~ 저쪽에서 끊지 않아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을 뿐이고~ 귓구멍이 뚫려 있어 들렸을 뿐이고~ 기자의 습관상 녹음 버튼을 눌렀을 뿐이고~”라고 답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약 40분쯤 진행된 1차 공판은 이렇게 끝났다. 2차 공판은 3월19일 오후 4시에 열린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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