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투표자, 기회주의자, 희망을 잃고 부유하는 무당파…. 중도는 이들 중 하나이거나 어쩌면 모두의 이름일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출발과 경유지, 그리고 도착점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안철수·박근혜, 혹은 다른 여러 이름을 호명했다. 은 스스로를 ‘중도’라 여기는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로 했다. 계량화된 여론조사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탈각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맥락’과 ‘문맥’을 읽고자 했다. 이건 과학적 여론조사가 아니다. 따라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이들의 토로는 우연한 결과물일 수 있다. 보편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그 ‘우연한 절망’ 어딘가에 내재된 필연성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_편집자
<u>경제 이슈, 대통령 말에 좌지우지되진 않아</u>
박○○ 31살·남성·연구원·경기도 화성시
역대 대선에서는 이회창·이명박을 찍었다. 마땅히 찍을 사람이 없어서였다. 2008년 총선에선 심상정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뜬구름만 잡지 않는 것 같았고 공약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총선에선 새누리당·민주통합당 모두 싫어서 통합진보당을 찍었다. 정당이라는 건 여러 사람의 의견이나 제안을 받아 반영하는 단체라고 알고 있는데, 내 개인적 고민을 반영하는 정당은 없다. 새누리당 정책도 잘 모르겠고, 야당들은 더더욱 모르겠다. 최근 돈을 주고받아 문제가 된 사람들이 새누리당이라는 건 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깨끗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생각하다 보니 부동산과 세금 제도에 관심이 많다. 아직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도 아니고, 세금은 좀 덜 거뒀으면 좋겠다. 의료보험도 내가 내는 돈으로 남들이 더 혜택을 누리는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선 경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본다. 지난 대선에서도 ‘경제 대통령’ ‘747 공약’ 등이 회자됐다. 그런데 공약대로 되는 건 없더라. 세계경제가 안 좋아지면 우리 경제도 안 좋아진다는 걸 알았다. 대통령 말에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건 아니더라. 현실적으로 경제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안철수를 지지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사람이 됐으면 한다. 공대 출신이라 이과 출신 후보를 선호하는 면도 있다. 만일 안철수가 민주당에 들어간다고 해도 지지할 거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적인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황된 희망이나 번드르르한 말만 내세우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주변에도 안 된다는 분들 많더라. 어른들은 정치 경험이 없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만 좋아하는 건 아닌가 싶다.
<u>안철수, 이미지와 실제가 같다면</u>
김○○ 46살·남성·회사원·서울 송파구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각각 이회창·이명박을 찍었다. 노무현·정동영보다 두 사람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기업인 출신이어서 기대를 걸었다. 정동영은 언론인 출신인데 너무 여우 이미지가 있었고 얄미운 타입이었다. 2008년 총선에선 야당을, 이번 총선에선 새누리당을 찍었다. 이번 총선에선 야당이 이길 것 같아서 여당을 찍었다.
나름대로 중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굳이 말하자면 중도우파라고 할 수 있겠다. 나를 대변하는 정당은 새누리당인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양쪽 모두 정책이 비슷해서 구별이 잘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경쟁적으로 이야기하는 건지, 실제 자신들이 집권한 뒤 경제와 기업을 저렇게 하겠다는 건지 의심스럽다. 정치를 별로 못 믿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신뢰가 가지 않는다.
대선주자들 중에선 사회운동도 하고 어려움도 겪었던 김문수가 나은 것 같다. 박근혜도 좋아 보이지만 그냥 정치만 해온 사람이니까. 안철수는 알려진 게 너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사람이 좋아 보인다는 이미지 정도만 있다. 안철수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까 열광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의구심은 있지만 이미지는 정말 좋다. 2008년의 정동영과는 다르다. 안철수의 이미지와 실제가 같다면 지지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 안철수가 대선에 나온다면 당선 가능성이 50%는 넘지 않을까? 이명박이 당선될 때도 BBK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나왔지만 왠지 잘할 것 같은 이미지로 이기지 않았나.
<u>누가 보수냐 더 보수냐의 차이</u>
김○○ 32살·남성·회사원·서울 강동구
정치가 사람들의 근무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5천만 국민이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했다. 내용은 공감하지만,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손학규의 말은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2002년에는 노무현을 찍었다. 상대적으로 청렴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2007년에는 이명박·정동영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잘한다, 잘못한다 평가를 못하겠다. 한 게 뭐가 있나 싶다. 다른 정부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박근혜를 지지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정치인이냐 아니냐다. 박근혜는 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특별히 문제 되는 부분은 없지 않나. 그 자체로 박근혜에게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는 이미지가 좋고 생각도 깊은 것 같지만 내 기준으론 별로다. 정치인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고, 어쩌다가 뜬 아이돌 같은 느낌이다. 보수·중도·진보의 구분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를 중도라고 부른다면 이의는 없다. 스스로를 무색무취의 회색이라고 생각하니까. 사회 전체가 보수적인 공간인데, 아주 보수적인가 아니면 덜 보수적인가의 상대적 차이 아닐까. 박근혜가 무소속이든 통합진보당 소속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새누리당 소속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내가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게 좀 부끄럽다. 새누리당의 이미지 때문에 박근혜를 지지한다면 보수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책 면에서는 여야 정당이 구분이 안 되는데도 말이다.
<u>약자에겐 진보, 세금에선 보수</u>
이○○ 27살·남성·공무원시험 준비·서울 광진구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을 찍었다. 이명박은 사업가고 기업인이었지 정치가가 아니었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빈부 격차가 커져 서울도 살기 힘들다. 지방과의 격차도 벌어졌고 북한 문제도 심각하다. 모든 일이 사업의 연장인 것 같다. 잘한 것을 찾기 힘들다. 국정 운영도 미숙했다. 총선 때도 당이나 출신 지역보다는 지역사회를 가장 잘 알고있는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하지만, ‘표류’에 더 가깝다고 본다.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 차이가 뚜렷한가? 떠다니는 게 중도다. 나이를 더 먹으면 보수로 가겠지. 하지만 아직 젊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진보적인 면이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측면에선 진보인데, 세금이나 집안의 경제적 문제가 걸리면 보수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왔다갔다 하는 중도다.
새누리당은 우리 사회 기득권과 보수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새누리당보다도 약하다. 기존 정치인 중에선 심상정을 좋아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평생을 투신했고, 뚜렷한 주관으로 조리 있게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안철수에게 호감도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모습에 실망했다. 이 시점까지 왔으면 확실하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적인 검증도 덜 됐고, 경험도 없다. 외모도 별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성공할지 의문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 즉 조언자나 멘토라면 더 잘할 것 같다. 회사 하나 이끌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기 주변도 넓게 봐야 하고 글로벌한 시각도 있어야 한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해서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박근혜를 지지한다. 개인적인 능력에 호감도 갖고 있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것 같다. 이명박에 비해 주변에 소음도 별로 없다. 자기관리 역량이 큰 것 같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도 크다. 이번 총선 때 공천도 잘못했고, 이슈에 대한 대응도 별로였다. 비전도 없다. 너무 원색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래서 박근혜 쪽으로 더 쏠렸다.
<u>문재인을 ‘바보’로 만들 필욘 없다</u>
최○○ 33살·남성·재무설계사·서울 노원구
대선에서만 투표하고 총선이나 지자체 선거는 안 한다. 국회의원이 누가 되든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다르지 않나. 뭔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2년 선거에선 노무현을 찍었다. 올곧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봤는데 결국 못 바꾸더라. 의지야 있었겠지만 당의 세력이나 그런 점들 말이다. 그래서 실망했다. 정치하는 사람들 전반에 대한 실망이 컸다. 2007년 대선에선 기업을 했던 이명박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주변에 이권을 챙겨주려고 대통령이 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소속인 이인제를 찍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나마 괜찮다는 막연한 생각이랄까.
지금 지지하는 후보는 없다. 제대로 살았던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안철수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잘 몰라서 확신이 없다. 서울시장 선거 때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또 다른 이명박의 케이스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기존 정치인과 달랐다. 서울시장을 거쳐 대선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입당해서 대통령 후보가 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방송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 됨됨이가 된 것 같다. 본인의 구상을 통해 스스로 절제도 하고 추동하기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재인을 좋아하지만 찍고 싶지 않다. 제2의 노무현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그는 바보였다. 대통령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될 것 같다. 노무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도 조금은 있다. 똑같은 바보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u>야당에 투표했지만 신뢰하지 않는다</u>
한○○ 28살·여성·회사원·서울 양천구
2002년에는 투표권이 없었고 2007년 대선에선 정동영을 찍었다. 투표 자체만 보면 야당 지지자 같을 수도 있겠지만 야당을 신뢰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존립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인데 이상하게 투표는 그쪽으로 하게 되더라. 스스로는 정치적 중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당의 색깔 자체가 다른 나라처럼 뚜렷한 게 아니잖나. 그래서 각자의 정치 성향도 파악하기 어려운 건 아닐까. 부자들을 우선 생각하는 새누리당에 동조하지도 않고, 민주당이 외치는 적극적인 복지에 끌리는 편도 아니다.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칙이 적용되는 공정한 나라가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좌파든 우파든 그런 나라를 만들어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지지할 것이다.
현재 지지하는 대선 후보는 없지만 안철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관심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생각이 뭔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 나온 책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아주 신선하다거나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제시하지 못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디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 같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열하는 한계랄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것과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대선에서 안철수가 이기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대통령이 된다면, 그리고 자신의 소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바로 선다면 기성 정치가 하지 못한 부분을 해줄 것 같다는 기대는 갖고 있다.
<u>‘현실적’에 마음이 가기에</u>
정○○ 30살·여성·유학 준비 중·서울 은평구
우리나라의 보수는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개혁의 요구만 들으려는 집단이고, 진보는 보수를 견제하기 위한 힘의 균형에만 집중하는 집단인 것 같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역기능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측면이 아닐까. 나는 정치에 대해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 혹은 정치인에게 마음이 가기 때문에 중도인 것 같다.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수가 승리한다면 서민들은 계속 계란으로 바위 치기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정치가 이렇게 됐으면, 나에게 뭘 해줬으면 바란 적이 없다. 다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랄 뿐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과연 ‘정치씩이나’ 필요한 일인가. 유감이다.
새누리당의 장점은 당의 결속력이다. 따라갈 정당이 없는 것 같다. 슬로건이 ‘변화·미래·함께’인데 내가 볼 때는 ‘이대로·옛날처럼·우리만’인 것 같다. 민주당은 변화와 개혁이 가능한 사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측면은 있겠지만 그 희망을 현실화하는 능력이 부족한 듯하다. 통합진보당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주자들 중에선 안철수를 지지하는 편이다. ‘올바름’에 대한 이해와 신념이 부족한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상식과 정의에 대해 객관적·보편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의 안위나 주변 상황에 영향받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본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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