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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대북관에 ‘햇볕’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기초체력’ 망가뜨린 북핵·인권·세습에 대한 당권파 혹은 통합진보당의 태도… ‘말하지 않을 자유’ 주장해온 태도 바꿔 공당에 맞는 진보적 견해 재정립해야
등록 2012-06-08 15:45 수정 2020-05-03 04:26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위원장 박원석 의원)가 지난 5월31일 국회도서관에서 당내 패권주의와 폐쇄적인 조직문화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새로나기 특위를 중심으로 그동안 당권파가 침묵으로 회피해온 대북관과 대북정책에 대해 진보정당으로서 견해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위원장 박원석 의원)가 지난 5월31일 국회도서관에서 당내 패권주의와 폐쇄적인 조직문화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새로나기 특위를 중심으로 그동안 당권파가 침묵으로 회피해온 대북관과 대북정책에 대해 진보정당으로서 견해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통합진보당이, 아니 당권파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는 문제. 오랜 세월 진보정당의 기초 체력을 망가뜨려온 이 문제에 대해 당권파는, 아니 통합진보당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종북 프레임이나 규정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다만 국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당 일각에서 남북 관계, 한-미 관계에 대한 인식이 너무 과거에 머무르는 것 아니냐, 경직된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런 점에 대해 변화할 부분은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당내에 북핵,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우리 입장’이라는 경향성이 있는데, 그게 과연 옳은지 따져봐야 한다.”

경도된 대북관 재정립 나선 ‘새로나기 특위’

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산하 기구인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원석 의원의 말이다. 답변을 하지 않거나 견해를 밝히지 않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공격의 빌미가 되거나 국민들의 우려를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참여연대 출신으로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단순히 국민 눈높이에서 대북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남북 관계나 한-미 관계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진보적’ 견해를 정리해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통해 김정은 체제로 변화한 오늘이 아닌가.

박 위원장은 “(당권파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대북관이 당의 강령과 정강정책 수준을 넘어 경도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령 한-미 군사동맹이 종속적인 건 맞는데, 한-미 동맹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고 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새로나기 특위’가 6월5일 여는 ‘통합진보당의 새로운 가치와 노선’ 토론회는 이런 논의의 출발점이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부정경선 사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현재로서는 보수세력의 색깔론 공세에 (당권파와) 공동 대응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북관, 대북정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조만간 ‘2라운드’로 당권파 쪽과 사상 논쟁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대북관 논란을 깨끗이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당내 갈등은 뿌리가 깊다. 매년 논란이 불거졌다. 그때마다 자주파(NL·민족해방 계열)의 ‘경직된 대북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05년 2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는 논쟁 끝에 이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음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어떤 종류의 핵 사용에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며, 북의 핵실험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최고위원회의 특별결의문이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됐다. 2007년 대선 때는 권영길 후보가 북한과 1국가 2체제로 통일하자는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을 내놓았다. 권 후보를 앞장세운 자주파는 이를 대선 공약 1번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김선동 사무총장(현 통합진보당 의원)은 포스터에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을 슬로건으로 적어 인쇄했으나 당내 반발에 부닥쳐 폐기했다. 권영길 후보는 당선되면 북한 혁명열사릉을 참배하겠다고 했다.

2008년 일심회 사건으로 그동안 곪아 있던 대북관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당시 최기영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중앙위원은 당원 수백 명의 신상 정보와 동향을 북쪽에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혁신비대위(위원장 심상정)는 법적 처벌과는 별도로 이들의 해당 행위를 이유로 제명을 추진했지만, 자주파는 제명안을 부결했다.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라는 이유였다. 당이 쪼개졌다.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은 지난해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당 정책기획실장으로 임명됐다.



“(당권파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대북관이 당의 강령과 정강정책 수준을 넘어 경도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진보는 핵의 군사적 이용은 물론 평화적 이용에도 반대한다. 이런 기본 원칙에서뿐 아니라, 북핵이 한반도 평화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 -박원석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북한에 대한 비판이 한줄도 없는 성명

“북한 후계 구도와 관련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 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2010년 10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이렇게 논평했다.

2011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진보 통합 과정에서도 대북관, 특히 3대 세습에 대한 태도를 놓고 갈등이 첨예했으나, 어정쩡한 형태로 봉합됐다. 합의문은 “새로운 진보정당은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는 복잡한 문장으로 귀결됐다. 민주노동당은 애초 “북의 권력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알쏭달쏭한 문장을 쓰자고 주장했다. 진보신당은 통합안을 부결했고, 국민참여당은 이후 이 합의문을 승인함으로써 통합진보당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

갈등은 봉합됐을 뿐이다. 지난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당권파인 우위영 대변인은 “북-미 간 대립과 한반도 긴장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일변도 방식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진보신당 탈당파인 노회찬 대변인이 “현 상황에서 미국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북한이 타개책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것은 지지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심상정·노회찬·조승수 등 평등파(PD·민중민주 계열) 쪽의 책임도 적지 않다. 2008년 분당 당시 평등파는 ‘종북주의’라는 용어를 끌어들였다. 논쟁은 생산적이기보다 적대적이었다. 보수언론은 이를 적극 이용했다. 다수의 합리적 당원, 더 나아가 당 전체에 ‘종북당’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종북’ 논란은 되레 당 쇄신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 평등파 출신의 한 당직자는 “당시 평등파가 그 단어(종북)를 쓴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보수세력의 ‘종북’ 공세가 부정경선 사태 해결을 가로막는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북핵,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

당권파, 아니 통합진보당의 대북관에 ‘햇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중적 진보정당, 수권정당을 표방한 공당으로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문제가 됐다. 박원석 위원장은 큰 틀의 견해를 밝혔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진보는 핵의 군사적 이용은 물론 평화적 이용에도 반대한다. 이런 기본 원칙에서뿐 아니라, 북핵이 한반도 평화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인권 문제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만 북한인권법 제정 같은 식으로 정치적 비난이나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 인권 개선을 유도하는 협력과 지원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3대 세습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대변인 공식 성명으로 비판한 적이 있느냐”며 “북한은 민족적 특수관계이자 외교의 대상이므로, 외교의 관점에서 세습을 비판하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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