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5월12일)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이후 ‘당권파’는 고립무원의 신세로 전락했다. 이를 지켜본 이들은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에 충격과 배신감을 쏟아냈지만, 한편에서는 오히려 통합진보당 당원이 되자는 ‘진보정치 시즌2’ 이야기도 나왔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릴 수 없다”는 진보 진영의 절박감도 큰 것 같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5월17일 중앙집행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언급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10시간이 넘는 격론 끝에 ‘조건부 지지 철회’라는 공식 방침을 내놓았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되, 통합진보당 중앙위에서 결의된 혁신안의 시행 여부를 지켜보고 다시 지지할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쇄신의 출발점은 이석기·김재연 등 당권파 비례대표 당선인·후보자들의 사퇴 여부다. 이들의 사퇴 없이 당의 외연 확대는커녕,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판이다. 당권파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당원비상대책위원회’를 도모하고 나섰다. ‘가짜 엄마’가 아기를 둘로 나누자고 우기는 꼴이다. ‘진짜 엄마들’은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
<font color="#A341B1">이석기·김재연 등 당권파 비례대표 당선인·후보자들의 사퇴 없이는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판이다. 당권파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당원비상대책위원회’를 도모하고 나섰다. ‘가짜 엄마’가 아기를 둘로 나누자고 우기는 꼴이다. ‘진짜 엄마들’은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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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도당까지 옮겨가며 결사항전
강기갑 혁신비대위 위원장의 움직임은 숨 가빴다. 당권파의 폭력사태로 중단됐다가 속개된 중앙위를 통해 5월14일 혁신비대위가 구성됐다. 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큰절을 했다. 5월15일부터는 매일 4~5개의 언론 인터뷰를 소화하며 “수습비대위나 봉합비대위가 아니라 혁신비대위”라는 의지를 밝혔다. 5월16일 비당권파 인사 5명으로 구성된 혁신비대위, 중앙위 폭력사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발표했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찾아가 “곪은 데가 있다면 심장까지 도려내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5월17일에는 정부 승인 없이 방북했다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한상렬 목사를 면회했고,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만나 “발목을 잡아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당의 대주주, 자주(NL)파의 원로, 야권 연대 파트너를 두루 만난 것이다. 권영길·천영세·문성현 전 대표가 5월17일 기자회견을 열어 “강기갑 혁신비대위의 성패에 진보정치의 생사가 달렸다”며 힘을 실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5월17일 저녁 만난 김재연 당선인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거부당했고, 이석기 당선인에게는 약속 시간 10분을 남기고 면담 취소를 통보받았다. 예정된 거부였다. 김 당선인은 전날 ‘유시민 전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 당선인은 5월17일 3개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사퇴 불가 태도를 거듭 밝힌 터였다. 강 위원장은 5월18일 “무작정 시간을 줄 수 없으니 5월21일 오전 10시까지 사퇴 신고서를 제출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출당할 수 있다는 뜻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혁신비대위의 전방위적 공세, 민주노총의 조건부 지지 철회, 싸늘하기만 한 여론에도 당권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은 강 위원장의 최후통첩 이전에 이미 당적을 서울시당에서 경기도당으로 옮기는 등 ‘만반의 대비’를 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비당권파가 주류인 서울시당과 달리 경기도당은 당권파의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연 당선인은 보도자료를 내어 “비대위가 사실상 제명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제명 절차와 이를 통한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해 당적 이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당권파는 ‘당원비대위’를 출범시켜 ‘한 지붕 두 비대위 체제’를 만들겠다는 태세다. 당권파는 애초 혁신비대위 참여를 검토했으나, 집행위원장 자리를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화합형 비대위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불참했다. 비대위 집행위원장은 당 사무총장에 해당하는데, 재정과 회계는 물론 당원 명부 등을 총괄하는 자리다. 당권파가 2006년 이후 사무총장직을 놓은 적이 없고, ‘당 대표 위에 사무총장’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막강한 자리로 여겨졌다. 김선동 전 사무총장은 이번 총선 때 전남 순천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오병윤 전 사무총장도 광주 서을에서 배지를 달았다. 장원섭 전 사무총장은 중앙위 회의를 방해하다 해임됐다. 국민참여당계에서는 사무총국을 중심으로 당권파 당직자들이 대표단의 결정을 집행하지 않고 전횡을 휘둘러왔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당원비대위 출범과 더불어, 일부 당권파 당원들은 중앙위 효력정지 가처분소송, 업무정지 가처분소송 등 법적 대응도 준비 중이다.
심지어 폭력사태 책임도 부정하는 발언
‘강 대 강’ 국면이 이어져 통합진보당 사태의 출구는 더욱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혁신비대위가 당권파에 사퇴 명분을 주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당권파가 요구해온 ‘진상 규명 후 당원총투표’는 논리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비당권파 당직자는 “당원투표에 부정이 있었다는 게 문제의 출발점인데, 이를 다시 당원투표로 묻자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5월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원총투표는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을 당원들이 좌지우지하겠다는 소유욕”이라며 “명분은 대의에 복무하고 자기를 희생할 때 따라온다”고 지적했다. “그 두 분(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의 거취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권파가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해도 먼저 사태를 수습한 뒤 명예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러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일반 상식과 너무 동떨어진 당권파의 현실 인식이다. 이정희 전 대표가 “침묵의 형벌”을 자임하며 떠난 자리에서 당권파 인사들은 비상식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몇%가 부정이냐? 보통 사물을 판단할 때 부정이 70% 아니면 50%다, 이렇게 될 때 총체적 부정·부실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번 비례대표 선거는 전체 선거의 10%를 차지하는 오프라인(현장투표)의 일부 문제다. 전체 선거를 부정할 만큼의 내용은 아니다”(이석기 당선인, 5월17일 CBS 라디오) , “다들 양심이 있을 거다. 하지만 속해 있는 언론사 입장 때문에 양심을 발휘 못하는 것은 인정한다. 누가 우리의 국회 진출을 가장 싫어하겠나.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다. 그런 분들이 원하는 대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사퇴할 만큼 문제가 있지 않다”(김미희 당선인, 5월16일 기자회견에 앞서) 등이 대표적이다.
당권파는 생중계된 중앙위 폭력 책임도 부인하고 있다. 이석기 당선인은 “아주 일부에서는 오히려 (비당권파의 안건) 강행처리가 폭력을 유발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총체적 부정선거가 아니고, 일부 부정이 있지만 선거를 무효화할 수준은 아니며, 그 책임을 당권파에게 묻고 있으니 마녀사냥이라는 식의 애초 인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당 공식 기구의 절차와 결정을 모두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권파는 또 자신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야권 연대를 파괴하려는 불순한 음모”를 지닌 일부 언론의 집중포화라고 주장한다. 보수언론이 ‘종북주의 마녀사냥’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당권파의 비민주적 행태를 비판하는 대다수 진보언론과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color="#C21A8D"> 지역구 당선인 7명 가운데 4명을 차지한 당권파는 자파 원내대표를 뽑아 원내 주도권을 확보하는 한편, 6월30일로 예정된 당대회에서 당권을 되찾으려는 시도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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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비대위는 당권파가 5월21일 사퇴서 제출 시한을 넘길 경우 19대 국회가 개원하는 5월30일 이전에 출당 조처를 강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권파는 “당이 분당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이상규 당선인·서울 관악을)라고 반발하고 있으나, 혁신비대위는 당권파의 사퇴 없는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당권파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비례대표 7번 조윤숙 후보(장애인 명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자주파(NL) 계열인 15번 황선 후보는 당권파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데, 혁신비대위는 이들도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출당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비례대표 당선인이 출당 조처를 받을 경우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당권파는 두 당선인이 출당되더라도, 나머지 당선인들이 당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역구 당선인 7명 가운데 4명을 차지한 당권파는 자파 원내대표를 뽑아 원내 주도권을 확보하는 한편, 6월30일로 예정된 당대회에서 당권을 되찾으려는 시도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운명을 결정할 결정적 일주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건부 지지 철회 결정에 대해 “고사 상태에 빠진 진보정당에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시점에 우리가 만들었던 진보정당의 산소호흡기를 우리 손으로 뗄 수는 없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기회를 혁신비대위에 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진성당원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당권파의 사퇴 거부로 민주노총의 지지 철회가 현실화할 경우 통합진보당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통합진보당에 자발적으로 입당하자는 ‘진보정치 시즌2’ 움직임은 상징적 시도라는 의미를 넘어 당권파의 ‘전횡’을 막을 현실적 힘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가 진보정치를 벼랑 끝에서 밀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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