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문재인, 박원순, 이정희, 강금실, 이회창, 홍준표, 안상수, 박희태, 나경원, 오세훈.
공통점이 있다. 한국 정치의 최전선에 있거나 최근까지 전면에 머물렀던 이들이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시험 가운데 ‘최대치’라는 사법시험(혹은 사법고시)을 통과한 이들이기도 하다. 민주진보 진영의 전 대통령과 차기 유력 대선 후보, 민주진보 진영 대선 후보에 맞섰던 보수 진영 대선 후보. 민주진보 진영 현직 서울시장과 그에게 맞섰던 보수 진영 후보, 그리고 직전의 보수 진영 시장과 그에 맞섰던 민주진보 진영 후보. 진보 진영 당 대표와 보수 진영 당 대표들.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의장까지. ‘행정-입법-사법’이라는 고전적 분류는 그저 계통상 분류일 뿐, 알고 보면 다 변호사 자격증을 딴 형제자매남매였다는 얘기다.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진작부터 ‘법조인들 전성시대’였다. 견고한 이념적·정치적·계급적 차이가 눈을 가렸지만, 그 차이를 휘발시킨 뒤에 남는 성분은 ‘법조인’이라는 무기질의 규정이다. 법 법(法), 무리 조(曹), 법조인으로 뭉뚱그리는 것은 그리 온당치 않다. 금융관료를 이르는 ‘모피아’처럼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법조인’이라는 레테르는 권력엘리트, 입법엘리트가 되는 손쉬운 길을 보장한다.
2012년 현재 전국의 판사는 2700여 명, 검사는 1700여 명이다. 변호사는 1만2600명 정도 된다.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 명으로 끊어보면, 법조인이 전체 국민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0.034%다. 심하게 말하면 한 줌도 안 된다. 4·11 총선의 여야 지역구 공천자 현황(3월16일 오후 6시 현재)을 보자. ‘법조당’ ‘검사당’ ‘로펌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새누리당은 이번에도 법조계 인사 29명을 공천했다. 지역구 공천자 195명 가운데 14.87%를 차지한다. 원래 그랬으니 놀랄 일은 아니다.
0.034%의 법조인, 588배 과잉대표 가능성
더 놀라운 것은 정당 지지율에서는 새누리당에 밀리는 민주통합당이 법조인 공천 경쟁에서는 이겼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모두 36명의 법조인을 공천했다. 공천자 215명 가운데 16.74%다. 기존 법조 출신 정치인을 제외하고 새로 영입·공천한 이들만 따져도 새누리당이 5명(모두 검사 출신)인 반면, 민주당은 13명(검사 출신 2명, 판사 출신 1명, 변호사 10명)을 영입·공천했다. 공천 물갈이를 법조인들로 하겠다는 기세다. 민주당은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6명을 전략공천하는 등 공을 들였다. ‘법조당’이라는 말로는 더 이상 여야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법조인끼리 맞붙는 일부 지역구를 제외하더라도 산술적으로 여야 공천 법조인이 모두 당선된다고 가정하면 60명을 훌쩍 넘는다. 최근 1석이 늘어 300석을 채운 국회의석의 5분의 1이다. 여야 비례대표 신청자 가운데 안정권 순번을 받을 법조인을 뺀 수치가 이렇다. 국회가 다양한 직업·직능·계층을 아우르는 대의기관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하자면, 법조인은 0.034%의 588배나 ‘과잉대표’되는 셈이다. ‘민의 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착시다. 과잉대표가 착시라는 얘기가 아니다. ‘본격 법조인 금배지 시대’는 이미 그전부터 열렸다는 얘기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당선된 법조인 25명도 많다는 지적이 나오던 때였다. 1996년 치른 15대 총선에는 법조인 104명이 출마해 모두 41명이 당선(당선 시점 기준)됐다. 당선율이 40%에 달했다. 1996년 프로야구에서 양준혁은 3할4푼6리로 타격왕을 거머쥐었는데, 법조인들은 4할에 가까운 불방망이를 휘두른 것이다. 299개 의석 가운데 13.7%를 법조인이 차지했다. 노태우 정권 끝물에 3당 합당으로 치른 14대 총선과 달리 15대 총선에서는 ‘군홧발 정치’ 청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당선된 법조인 41명 가운데 22명이 초선이어서 “정치권 세대교체” “전문가 집단의 국회 진출”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나름 예측 가능한 정치에 대한 기대가, 법치주의 세례를 받은 ‘평균 수준 이상’의 집단에 대한 기대로 표출됐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검찰 출신 법조인 10명이 당시 신한국당으로 몰리며 보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에 비춰 설득력은 떨어진다. 홍준표, 안상수, 정형근, 이회창, 황우여, 신기남, 천정배, 유선호, 추미애 등이 이때 처음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어찌됐든 법조인의 국회 진출은 15대 총선 이후로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 추세를 이어간다. 당선 시점 기준으로 16대(국회의원 정원 273명)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한국은 근 20년 새 법조인이 국회의석의 15~20%를 안정적으로 차지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출마자 대비 당선율 역시 17대는 41.2%, 18대에서는 48.7%로 올랐다.
사법시험(혹은 사법고시) 합격이 아니라 법학 전공자로 외연을 넓히면 국회에서 ‘법을 아는 사람’은 평균 30%까지 치고 올라간다. 제헌의회부터 17대 국회까지 의원 4398명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공 확인이 가능한 3672명 가운데 법학 전공자가 1124명(30.6%)으로 가장 많았다. 정치외교학이 783명(21.3%), 경제학이 389명(10.6%)으로 그 뒤를 잇는다(‘17대 국회의원의 인구사회학적인 배경 분석’, 유승익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못다 이룬 공직의 꿈, 국회에서 다시 한번
‘한 줌’에 불과한 법조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여의도 진입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의도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불나방’들이 낙천·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우수수 떨어져나갈 때조차 법조인들은 어떻게 여의도 진공 작전에 성공하는 것일까.
법조인들 스스로는 ‘법률 전문성’을 우선 꼽는다. 국회의원에게는 일차적으로 입법 능력이 필요한데, 법조인들은 이미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것이다. 원래 하던 일이라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 엄상익 공보이사(변호사)는 “입법부는 점차 전문화·기술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나는 법을 보면 황당한 경우가 많다. 명색은 법인데 의원들이 구체적으로 잘 모르다 보니 시행령에 다 위임해버린다. 사실상 정부가 대신 법을 만드는 셈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운전을 직업으로 하지 않아도 면허증이 있어야 하듯이 (법조인을) 입법을 위한 자격 개념으로 보면 된다.” 중재·화해·조정자 역할에 익숙한 것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국회에는 입법과 정책을 보좌하는 전문인력이 많다. 운전대를 딴 사람에게 맡기고 다른 일을 해도 사고는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낙선한 한 법조인은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사실 명예나 보상심리에서 정치권으로 가려는 이가 많다. 검찰이나 법원 등 공직에서 못다 한 아쉬움을 보상받겠다는 것이다. 고위직에서 물러난 뒤 연속적으로 국회로 자리를 옮겨 명예를 유지해나가려는 사람들이 그렇다.”
돌려보면, 자신의 ‘화려한 스펙’만 믿고 명예와 권력을 찾아 정치권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선거철이 되면 한 유명 정치컨설턴트에게는 부장검사·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 들어간 뒤 ‘전관예우’로 탄탄한 경제력까지 쌓은 이들이 ‘국회의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찾아온다는 것이다. 해당 정치컨설턴트는 ‘스펙만 가지고 정치를 하려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돌려보낸다지만, 실제 여의도 공천에서는 이게 상당 부분 먹힌다는 게 문제다. 검증 가능한 정치적 이력을 찾아볼 수 없는 전·현직 판검사, 돈만 열심히 벌어온 변호사들이 ‘초선’ 딱지를 달고 여의도에 당당히 입성한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치에서 사법적 기준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여야와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정치를 사법적 잣대로 재단하다 보니 정치인들 스스로 법률적 논리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고, 법을 물신화하는 경향까지 생겼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 충원에 법률가를 선호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유권자도 ‘법조인=품질보증’이라 여겨
김도종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중앙집권적 공천’의 폐해를 지적한다. “법조인이 과잉대표되고 있는 데는 공천을 사실상 중앙당에서 쥐고 있는 탓이 크다. 완전 경선으로 돌린다면 (정치) 필드 경험이 없는 법조인이 갑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나설 수 없다. 결국 법조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국회의원 충원 구조, 시스템의 문제다.” 그는 이런 충원 방식을 “법조인의 경력과 학벌을 정당이 사들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5공 시절 민주정의당은 ‘육법당’으로 불렸다. 육사 출신과 서울대 법대 출신 판검사들이 야합했다는 비꼼이었다. 김 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에는 통치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런 방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당들이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당내에 법조계 출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영입한 공천위원까지 법조인인 경우도 있다. 새누리당 4·11 총선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는 검찰 출신인 정홍원 변호사가 위원장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검찰 출신인 안강민 변호사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당이 이번에 전략공천한 백혜련 전 검사,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로 영입한 서기호 전 판사의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이 검사·판사 시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검증 없이 낙점이 이뤄진 셈이다.
정당이 사들인 법조인을 선거판에 내다팔려 해도 유권자가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에게 이것이 또 상당 부분 먹힌다는 게 문제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법조인 선호 현상에 대해 “정치 신인이 정상적으로는 정치권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는 정치 신인에 대한 욕구는 크지만, 신인을 받아들이거나 이들이 경쟁할 수 있는 틀이 없다. 반면 법조인이라는 신분은 유권자에게는 이미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사람이라는 “사회적 시그널·품질보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법조인을 잘 모르는 유권자도 변호사라고 하면 ‘공부는 잘했겠고 전문성도 있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선호하게 된다. 개혁 요구가 높을 때, 학생운동을 한 386들이 ‘학생회장 출신’이라는 품질보증을 달고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여기에 변호사들은 ‘선거에 떨어져도 다시 변호사를 하면 된다’는 경제적 안전판이 있다. 그런 이해관계가 맞물려 법조인 선호 현상으로 나타난다. 물론 검찰 출신의 영입은 정치적 필요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다.”
“장원급제에 대한 환상, 장원급제 프리미엄”
정치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치엘리트 충원 방식이 민주화와 관계없이 학력 중심적이고 이념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국회의 대표성이 낮다는 것이다. ‘출세 지름길=사법시험 합격=정치권력 획득 지름길’이라는 등식이 깨지지 않는다.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의 내면 풍경을 파헤친 을 쓴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장원급제에 대한 환상, 장원급제 프리미엄”으로 풀이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장원과 21세기 사법시험 합격을 동일시하는 대중의 착각과 선망을 정치권이 빨아들이는 구조에는, ‘서울대-법조인’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귀속 네트워크가 동시에 작동한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내년 총선에서) 절대 판검사, 법조인 출신을 영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나라당 의원 169명 가운데 22.7%인 39명이 법조인 출신이었다. 심지어 홍준표 대표 자신과 황우여 원내대표, 나경원·원희룡 최고위원,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당 핵심 인사들이 모두 그랬다. 법조인 과잉대표에 이어 ‘법조인 한계론’도 거론됐다. 홍 전 대표는 “판검사 출신은 현장의 치열함을 모르고 자신이 잘났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지난 1월에는 이상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법조인이 너무 많은 것은 문제다. 구성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법조인들은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서민들의 삶과도 괴리돼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직역의 이익을 대표하는 대한변협은 발끈한다. “정치권이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된 것이 과연 법조인이 너무 많아서인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변협은 미국 사례를 든다. “역대 대통령 43명 가운데 30명이 법학 전공자다. 상·하원도 변호사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이를 탓하는 사람이 없다.” 엄상익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과거 돈과 권력을 다 가지려는 일부 출세주의자, 고위직 법조인들의 문제를 가지고 현재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법조인은 지배엘리트임은 맞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권력엘리트는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역에서 시민·정치운동을 벌이던 변호사였다. 선거로 뽑히는 미국 검사장들은 다음 선거를 위해 주민들의 눈높이를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갑’ 위치에서 큰소리만 치던 사람들과 같을 수 없다. 같은 법조인이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민초들 사이에서 쌓은 박원순과 그렇지 않은 오세훈의 차이다.”(김도종 교수) “미국에서 정치하는 법률가는 바닥에서 표를 모으며 올라간다. 우리처럼 장원급제했다는 이유로 위에서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다.”(김두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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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정치인 충원 구조가 없기 때문”
미국 정치권에 밝은 한 정치컨설턴트는 “미국에서 법조 출신 정치인이 많은 이유가 있다. 미국은 헌법을 중심으로 정치이념과 철학이 돌아간다. 로스쿨을 나와서도 법조인이 아니라 정책보좌관 등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는 “우리 국회에서 법조인 비율이 높다고 하지만 법치주의가 발달한 미국·독일 등도 법조인 출신이 우리보다 높다. 비율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우리 법조 출신 의원들이 법대를 나와 고시 공부만 하다 보니 입법 전문 분야가 없고, 많은 부분에서 법조직역 이기주의에 매몰됐다는 데 있다”고 했다. 실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평가를 받는 이들은 박영선·노회찬 같은 비법조인들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2월 내놓은 상·하원 의원 구성 분석 보고서를 보면, 여전히 법률가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뚜렷한 감소 추세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원은 1961~62년(87차 회기) 42.56%로 정점을 찍은 뒤 2011~2012년(112차 회기)에는 23.91%로 절반 가까이 내려앉았다. 상원은 1971~72년(92차 회기) 법률가 비율이 절반이 넘는 51%에 이르렀지만 112차 회기에는 37%로 줄었다.
법조 출신 정치인 전성시대는 어떤 공허함을 예비할까. 박상훈 대표의 말이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누군가에 의해 내 이익이 대표되고 해석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대표를 뽑는 하층 동원적 민주주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법률가 정치인이 적다. 반면 미국은 노동에 기초한 정당이 없다. 그러다 보니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시장체제와 법이다. 하층 기반이 약한 나라에서는 정치인 가운데 법률가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법으로 움직이고, 법률가 수요도 많고, 법률가 수도 많고, 그래서 법 없이 살 수 없는 나라도 아닌 한국 정치에는 왜 법률가가 넘쳐날까. “우리는 특별히 법률가가 정치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 미국처럼 법률가가 일궈온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하층 참여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미국처럼 법률가 정치인이 많아지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참여 기반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민주주의가 중산층 이상의 열정만 대표하고 그 밑은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시스템으로 고착화해가는 것은 아닌지 정말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의 율사들, 정치를 ‘위해’ 살았나
3월15일 오후 지역구 경선에서 떨어진 한 법조인에게서 ‘낙천 인사’ 문자메시지가 왔다. “…대승적 차원에서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더욱 큰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막스 베버는 에서 변호사처럼 돈과 여유가 있는 이들에 의해서만 정치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명 의식’이 없다면 베버의 말처럼 “어느 집단이 승리하든 상관없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여름의 만개가 아니라 얼음이 뒤덮인 어둠과 극지의 밤”일 뿐이다. 한국의 율사들은, 과연 어떤 소명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다. 고백하건대, 4·11 총선에서 법조인 다음으로 많이 영입된 이들은 언론인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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