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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법률에 따라 돌아가도록 만들라는 요구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민주당 비례대표 신청한 유재만 변호사가 말하는 법조인의 정치 참여…“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면 더 크게 도려낼 수 있다”
등록 2012-03-21 16:51 수정 2020-05-03 04:26
» 유재만 변호사. <한겨레21> 정용일

» 유재만 변호사. <한겨레21> 정용일

유재만(49·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을 앞두고 영입한 법조인들 가운데 가장 중량급 인사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대표적 특수통 검사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한나라당 담당), 현대 비자금 수사를 하며 한나라당·민주당 인사를 줄줄이 잡아들였다. 2005년에는 청계천 재개발 비리를 수사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양윤재 당시 서울시 부시장을 구속 기소했다.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 수사에서 고교·대학·검찰 선배인 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 기소한 뒤 2006년 초 스스로 옷을 벗었다.

비례대표 후보 신청을 한 유 변호사는 당이 꾸린 ‘MB정권 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비례대표로 당선되면 민주통합당이 추진할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가 검찰 개혁에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3월12일 서울 강남역 근처 사무실에서 유 변호사를 만났다. 특수1부장 시절 같은 부 검사들과 찍은 사진이 책장에 놓여 있다. 18대 초선 의원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의 얼굴도 보인다.

예전에도 출마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안다. 출마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번에도 고심을 많이 했다. 처음 제의가 왔을 때 외곽에서 적극적 지지자로 남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당에서는 검찰 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고, 검찰 수사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 비리 등 명쾌하지 않은 검찰 수사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검찰을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검찰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나 학계 쪽에서는 비검찰 출신이 오히려 개혁에 적합할 것이라고 하는데, 문제점을 정확히 알아야 개혁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문제를 모르는 것도 문제고,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고, 문제가 없는데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뜯어고치려는 것도 문제다. 검찰 개혁의 방향성도 중요하지만 이걸 정책으로 연결해야 제대로 된 개혁이 될 수 있다. 검찰 조직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며 당의 의지를 관철하려면 그쪽 사정을 잘 아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개혁 대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시절을 돌아보면 검찰 실정을 잘 파악해서 정책 수행으로 연결할 만한 검찰 출신 인사가 없었다. 소통 없이 한쪽에서 칼만 들이대면 사생결단으로 방어만 하려 한다. 서로 출혈만 커지고 정작 개혁은 이루지 못한다. 국민에게 도움도 안 된다. 검찰 개혁의 방향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에 많다. 그런 방향성을 변화와 개혁으로 이으려면 전문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야당은 그런 부분이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오지 않았나.

18대 국회의 사법 개혁 논의도 여야 법조인, 특히 검찰 출신 인사들이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이 많다. 검찰 안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영입한 인물이 유재만이라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검찰 출신이라고 조직 논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검찰이나 당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볼 때 답이 나올 것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검찰에 애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면 더 크게 문제점을 도려낼 수 있다.

최근 민주통합당이 ‘검찰 개혁 4대 목표, 10대 실천 과제’를 내놓았다.
그동안 제기된 문제들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지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국가수사국 설치는 아직 좀더 정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진보적인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검찰 출신이라고 조직 논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검찰이나 당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볼 때 답이 나올 것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은 대부분 정치적 훈련 과정 없이 발탁된 경우가 많다. 정치가 처음일 텐데.
검사로서 16년, 변호사로서 6년이라는 큰 경험이 있다. 검찰·법원·경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혁하는 데 몸으로 부딪치며 실체적이고 효율적인 공부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훈련을 쌓아야겠지만 몸으로 느끼는 공부는 충분히 돼 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역할을 스스로 좁게 설정하는 것 같다.
현재 내가 제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부분이 그 분야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국민의 정부 청와대에 2년간 파견 나가 있으며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법안 제정을 지원했다. 외환위기 직후라 나라 경제가 거덜 났을 때다. 경제를 어떻게 살릴까, 서민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최대 목표였다. 법무부에 있을 때는 인권 담당 부서에도 있었다.

기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별 역할을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평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름만 걸치고 갈 생각은 없다. 그동안 쌓아왔던 노하우를 통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검찰 제도와 수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국회로 가는 것이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늘어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전문성도 있지만 우선 과거와 달리 법조인이 많이 양산됐다.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변호사가 많이 들어간다. 행정부처도 마찬가지다. 특별하게 정치권 진출만 증가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법률에 따라 합리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라는 요구다. 사회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도 그런 취지 아닌가. 법조인들을 법조 테두리 안에만 묶어놓을 수는 없다.

법조인들은 일반적으로 권력의지가 강하다고 보는가.
권력의지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입법부는 법과 연결돼 있다. 법조인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나름의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법조인들이 다른 분야보다 입법부를 더 가깝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대신 권력의지만 가지고 정치권으로 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전문지식을 국민을 위해 제대로 펼쳐 보이겠다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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