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 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 김정은 동지의 령도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시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주체의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 완성해나갈 수 있는 결정적 담보로 된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은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굳건히 수호하며 더욱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한다.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방위원장이 숨을 거둔 지 50여 시간 만인 지난 12월19일 정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명의로 나온 발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A4용지 석 장 분량으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서거에 즈음하여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란 긴 제목을 달고 나온 이 발표문은, 지난 1994년 7월9일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의 발표문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 동지께서 서 계신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1994년 ‘김정일’이란 이름이 들어갔던 그 자리에, 2011년엔 ‘김정은’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구도는 명확하다. 김 위원장 사망이 불러온 격변과 혼란 속에서도 ‘절대 권력’에 공백은 없다는 선언이다.
김정일 “중국식 모델에는 관심 없다”
“사회주의의 완성을 위해선 당대 수령의 대를 잇는 후대 수령이 필요하다.” 북쪽 당국자들을 만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른바 ‘북한식 사회주의’의 고갱이는 ‘수령론’에서 찾을 수 있다. 옛 소련과 중국이 레닌·스탈린·마오쩌둥 같은 절대 권력자의 사망 이후 권력 이양을 둘러싸고 치른 첨예한 내부 갈등이 북쪽에선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등 북쪽 매체는 이미 1974년부터 김정일 위원장을 ‘당 중앙’이라 표현했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핵심인 노동당 중앙위를 이르는 ‘집합명사’를 ‘단수’로 취급해 작성된 기사를 보며, 남쪽 당국자들은 한동안 그 실체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 위원장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공식 후계자로 공표된 뒤에도, 김일성 주석 사망 때까지 14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계승자’로 불리는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처지는 다르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삼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최종 결심한 것은 2008년 8월 뇌졸중 발병 직후”라고 지적한다. 3년5개월 전이다. 후계 구도가 공식화한 기간은 더 짧다. 지난해 9월28일 평양에선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렸다.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가 열린 이후 44년 만의 일이다. 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직전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았던 김정은은 이날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 위원으로 선임됐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때 (후계 구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매듭지어졌다”고 평가했다. 1년3개월 전이다. 나빠진 건강에도 김 위원장이 최근 3년 새 잇따라 중국을 방문하고, 숱한 현지지도에 나선 이유다. 생의 막바지까지 동분서주하며, 그가 아들에게 남겨주려 했던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유시장과 사회주의를 혼합하는 중국식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신 스웨덴식 모델에 마음이 끌리는데, 그는 스웨덴 모델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스웨덴과 같은 북한이라는 얘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다른 모델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태국(타이)은 강한 전통적 왕실을 유지하면서도, 긴 격동의 역사에서 독립을 보존해왔고, 그러면서도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태국식 모델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태국의 경제체제일까, 아니면 왕실의 보존일까 하고 생각했다.
2000년 10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준비하려고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을 훗날 자서전 (황금가지 펴냄)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김 위원장의 사후에, 10년도 더 지난 옛 에피소드를 되짚어보는 건 엄중한 정세를 무시한 호사가 취미 때문이 아니다. 이 짧은 대화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오랜 꿈’의 알짬을 파악할 단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절대 통치자였던 아버지의 급서로 북한의 명운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청년 김정은’의 미래를 가늠할 실마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스웨덴 경제+타이 왕정이건 무슨 말인가? 사회주의 체제와 북한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나라 안팎의 전문 연구자들은 북한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참고할 모델로 ‘중국식’ 또는 ‘쿠바식’을 꼽아왔다. 현재까지는 ‘중국식 모델’이 다수설이다. 북한 밖에 사는 세상의 어떤 연구자도 지금껏 타이 또는 스웨덴을 북한의 미래 모델로 거론한 적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절대 권력자인 생전의 김정일 위원장은 엉뚱하게도 스웨덴과 타이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생뚱맞은 농지거리였을까? 아니다.
2000년 10월, 한국전쟁 이래 최초로 평양을 찾아온 미 국무장관 올브라이트와의 대좌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평생의 숙원을 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워싱턴에 특사로 파견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2010년 11월6일 사망)이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북-미가 서로 적대관계를 청산하자는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합의·발표한 직후다. 올브라이트와 얘기만 잘 풀린다면,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건, 곧 김일성 주석 때부터 북한의 대외전략의 핵심이던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김 위원장이 ‘스웨덴 모델’과 ‘타이 모델’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건 뭘 뜻하는가? 사실 스웨덴과 타이는 유사점이 별로 없다. 스웨덴은 북유럽의 강소국이자 민주주의 선진국이지만, 타이는 동남아의 중진 국가일 뿐이다. 국제정치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오죽하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스웨덴식 모델에 마음이 끌린다’는 김 위원장의 얘기를 듣고 궁리 끝에 “다른 모델은 없냐”고 되물었겠나.
곰곰 생각해보면, 답이 없진 않다. 바로 타이와 스웨덴이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사실이다. 입헌군주제란 ‘헌법 체계 아래서 세습되거나 선임된 군주를 인정하는 정부 형태’다. 군주의 실권과 위상은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니 좀더 파고 들어가보자. 김정일 위원장은 ‘스웨덴 모델’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이라는 점을, ‘타이 모델’에서는 ‘강한 전통적 왕실의 유지+긴 격동의 역사에서 독립 보존+시장경제’를 꼭 짚어 강조했다. 올브라이트는 김 위원장이 스웨덴 모델과 타이 모델에 관심을 보이는 까닭이 ‘왕실의 보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골수 반공주의자인 올브라이트의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이 대화에 앞서 올브라이트는 김 위원장에게 ‘경제 개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는 그에게 경제 개방을 고려할 것인지 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개방’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우린 먼저 개방이란 용어부터 정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개방이란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니까요. 우린 서구와 같은 개방은 수락하지 않습니다. 개방이 우리의 전통을 훼손해선 안 됩니다.”‘서구식 개방’이 아니라면, 뭐가 남나?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 정도 아닌가. 사회주의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은 공산당 일당 지배를 전제로 개혁·개방 정책을 펼쳐,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성공 모델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올브라이트에게 “중국식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고 단언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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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왕실은 재벌이자 신성불가침 영역
중국은 최고 리더십의 승계 문제가 제도화돼 있는 나라다. ‘세습’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내년이면 후진타오 주석이 이끄는 5세대 지도부가 물러나고,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비롯한 6세대 지도부가 최고 리더십을 구성하게 돼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최고 리더십을 ‘세습’해온 북한과는 길이 다르다. 이 대목에서 김 위원장이 관심이 있다고 한 ‘스웨덴 모델’과 ‘타이 모델’의 공통점인 입헌군주제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스웨덴 모델은 올브라이트가 의문을 제기했듯, 북한의 모델로는 거리가 너무 멀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실제론 사회민주주의적)이라는 점을 빼고는, 김 위원장이 매력을 느낄 대목이 별로 없다. 스웨덴 왕실은 통치하지 않는 상징 권력이다. 결국 남는 건 타이 모델뿐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통치하는’ 입헌군주의 나라로? 올브라이트에게 밝힌 김정일 위원장의 속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깊이 관여했던 전임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고위 관계자는 “올브라이트의 자서전에서 그 대목을 읽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십수 년 전부터 북한이 타이의 정치 시스템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주목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북한은 십수 년 전 타이의 입헌군주제 시스템을 조사하는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이 생존해 있던 때인 1993년 6월에는 타이의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 일행이 평양을 공식 친선 방문하기도 했다.
타이 국왕은 불교·민족과 함께 타이 국가를 떠받치는 세 이념적 기둥 중 하나다. 타이 국기의 적·백·청색도 각각 민족·불교·국왕을 뜻한다. 타이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방대한 왕실 재산을 바탕으로 ‘국왕개발계획’을 추진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왕’으로 꼽히는 까닭이다. 국왕개발계획은 △농업개발계획(인공강우 연구개발계획과 물소은행계획 등) △보건위생개발계획(왕실의료단계획 등 8가지) △푸른 ‘이산’ 계획(타이 동북부 지역의 녹색혁명사업) 등으로 이뤄져 있다. 왕실 재산국은 타이 2위의 자산가이자 4위의 투자가다. 더군다나 타이 헌법 6조는 왕을 비난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법 112조는 국왕을 비방·모욕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최고 15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왕실모독처벌법인 셈인데,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비유해 ‘군주보안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떤가? ‘신성불가침의 지존’이 통치하는 나라 타이, 김 위원장이 매력을 느낄 법하지 않은가.
김 위원장은 생전에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헌법 전문에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이자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고 못박았다. ‘북한=김일성의 나라’라는 선언이다. 경험이 일천한 20대 청년 김정은이 ‘존경하는 영도자’로 불리며 김정일 위원장 사후 북한을 이끌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즉각적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백두의 혁명 혈통’이 이어진다는 이데올로기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김정은과 지배 엘리트 연합
21세기 대명천지에 ‘왕조국가’라고? 어처구니없어할 일만은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거의 신적인 존재로 여겨져온 아버지 김일성 주석에 비해 카리스마가 약했다. 하물며 20대의 약관 김정은의 카리스마는 어떻겠나. 북한 전문가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김정은이 새로운 지도자로서 입지가 확고하다면서도 “선언적 차원에서”(실질적 차원이 아니다!)라고 단서를 단 까닭이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없듯, 3대에 걸친 절대적 통치도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라는 엄청난 자리를 맡고 있지만, 아직은 최고지도자로서 소양과 능력이 검증된 바 없다. 문제는 북한에 이를 대체할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1960년대 중반 수령제를 완성한 이래 2인자를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단지도체제의 경험도 없다. 국가 중대사와 관련한 ‘결심’은 언제나 김일성 주석 아니면 김정일 위원장의 몫이었다. 명문화된 최고 리더십의 승계 제도는 헌법은 물론 조선노동당 규약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 사후 북한의 지배 엘리트들에게는 경향적으로 약화하는 최고지도자의 권력과 지금껏 최종 결정을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는 지배 엘리트 연합 사이에 존재하는 리더십의 갭을 메울 과도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불가피하다. 그것은 중·단기적으로 ‘(상징적) 최고지도자 김정은+지배 엘리트 연합’이 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현재로선 북한의 ‘내파’를 피할 거의 유일한 현실적 경로다.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에 북한의 운명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미래가 달려 있다는 뜻이다. ‘세습의 역설’이다.
생전의 김 위원장은, ‘통치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 기반을 다지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오랜 꿈’이 이뤄진 세상으로 아들 김정은이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다리를 놓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그곳으로 건너갈 다리를 떠받칠 든든한 두 기둥은 △북-미 관계 정상화를 핵심으로 한 대외 환경의 안정 △파탄지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의 안정화, 곧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인민생활 개선’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뒤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대다. 이 시기에 권력을 다져나가야 했던 김정일 위원장 역시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선군정치’가 나왔고, ‘강성대국’이 나왔다. 북한 당국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강성대국’의 ‘강’은 핵무장으로 이뤄냈다. 하지만 융성한 인민경제 향상은 김정은 체제의 과제로 넘어왔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포스트 김정일’ 시대 북한의 3대 핵심 변수로 ‘권력, 제도화, 민심’을 꼽았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문대로라면 권력엔 문제가 없다. ‘제도화’는 상당 부분 김 위원장이 이미 해놓았다. 그가 맡았던 당 총서기, 국방위원장, 군 최고사령관 직위를 김정은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물려받느냐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가장 어려운 건 민심이다. 민심을 얻으려면 ‘행동’과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문 교수는 “애도 기간이 끝나고 김정은 체제가 구체적인 행보를 시작했을 때, 민심을 만족시킬 정책 행보가 나올 수 있느냐 여부에 가장 큰 불확실성이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적 이행’을 바라며 ‘위로’를 전한 미국
우선은 식량원조, 근본적으로는 경제복구를 위해선 핵을 포기해야 한다. 핵은 외부의 위협에 맞서 북한이 가진 거의 유일한 카드다. 하나를 얻으려고 다른 하나를 버릴 수는 없는 사세다. 어찌해야 하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의 표현을 빌리면, 핵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는 “출제자도, 채점자도 미국”이다. 돌파구도 거기에 있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문제를 풀 수 있다. 다시 김 위원장이 완성하지 못하고 간 다리의 ‘두 기둥’이다.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이행’을 바라며,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북한 주민의 안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을 담은 위로’를 전한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지키고, 이웃나라와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나라를 평화의 길로 이끌어나가는 선택을 하기를 희망한다.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2월19일(미국시각) 오후 겜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과 회담을 마친 뒤 따로 성명을 내어 이렇게 밝혔다. 고도로 계산되고, 대단히 절제된 메시지다.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이행’(transition)을 바란다”는 표현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인정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을 담은 위로’(thoughts and prayers)를 전한 것으로 김 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사실상 ‘조의’를 표했다. 그럼 새 지도부에 대한 ‘희망’을 말한 것은 뭔가?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이 발표되기 전날인 12월18일치 <ap>의 보도에 그 실마리가 있다.
“지난여름부터 뉴욕·제네바·베이징 등에서 이뤄진 북-미 접촉에 성과가 있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잠정)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이 매달 2만t씩 1년간 24만t에 이르는 고단백 비스킷과 비타민제 등 ‘영양 지원’을 하기로 했다. 며칠 안에 이런 합의사항을 발표하게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발표’는 미뤄지게 됐다. 클린턴 장관이 발빠르게 ‘성명’을 내놓은 것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북쪽에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대화는 이어지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12월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른바 ‘뉴욕채널’(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미 국무부간 연락·협의 창구)을 통해 영양 지원 문제를 포함한 북-미 대화 재개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몸짓에서도 미세하지만 변화가 감지된다. ‘북한 주민’을 주어로 에둘러 ‘조의’를 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유족들에겐 방북 조문도 허용했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12월22일 오전 기자단 브리핑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 북한 상황이, 체제가 확립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우리나라나 미국·중국·러시아 모두 북한이 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는 면에서는 뜻을 같이하고 있다”며 “우리가 여러 가지 취한 조치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북한의 체제가 빨리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 주변국들 모두의 이해에 일치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클린턴 장관의 메시지와 맞아떨어진다. 김 위원장 사망이 만들어낸 불확실성 속에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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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을 현실로 만들까
미래는 과거보다 예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과거 또한 그 출발점에선 예측이 불가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또한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실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점조차 모르는 사실도 있다.
거짓 정보에 기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언젠가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섣부른 전쟁 결정에 대한 ‘변명’이었지만, 김 위원장 사후 북한 상황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어려울 게다. 김 위원장의 죽음으로 한반도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빨려들어갔다. 우리가 아는 사실이다. 후계자는 세웠지만, 북한 체제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젊은 새 지도자를 뒷받침할 후견그룹에 대해서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의 사후 들어선 새 북한 지도부가 앞으로 어떤 대내외 정책을 펼쳐나갈지에 대해선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20대의 젊은 ‘영도자’ 김정은은 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오랜 꿈’으로 가는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그의 앞에 놓인 길은 천길 절벽과 가시밭길투성이다.
이제훈 편집장 nomad@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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