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늘 트위터에 있다.
박 시장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공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운데 하나인 트위터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트위터 프로필의 ‘위치’란을 특이하게 채웠다. 보통 이용자들처럼 거주지나 직장 정보를 적었다면 ‘서울’ 혹은 ‘서울시청’ 정도 될 텐데 박 시장은 “서울시민 여러분 곁에”라고 썼다. 박원순이 아니라면 몹시 느끼할 뻔했다.
#코드1_소통
박 시장의 트위터 팔로어는 21만 명 정도 된다. 쉽게 말해 그가 가진 소통의 끈이 트위터로만 그 정도 수라는 얘기다. 박 시장이 한마디를 남기면 21만 명이 볼 수 있다. 거꾸로 21만 명도 그 채널을 이용해 박 시장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할 수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보름가량 지난 11월10일 박 시장의 트위터를 들여다봤다. 그사이 100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서울 사람 부러워보기는 처음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만 웃을 수 있게 해주세요.”
“지지자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참 사람 냄새 나는 사람 뽑았다’면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어요. 지지자로서 너무 뿌듯합니다.”
“수도의 시장님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좋은데 대권까지 바뀌면 웃다가 가슴이 터져버릴지도. 웃다가 불구가 되어도 전혀 후회 없겠다.”
서울의 어느 지역에 뭔가 이상하다, 알아봐달라는 글도 있다. 박 시장은 “이 글 보신 공무원은 바로 알아봐달라”고 답글을 단다. 초심을 잃지 말라거나 건강을 챙기라는 주문도 많다. 이른바 ‘트위터 시장’ ‘소통 시장’이라고 불릴 만하다. 11월16일 시장 취임식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집무실에서 조촐하게 진행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따로 내빈과 외빈이 없고 접속한 시민 모두가 손님이다.
시청 공무원들과도 소통한다. 박 시장은 11월2일 첫 월례회의에서 “어제 시청 계정 이메일을 만들었는데 벌써 몇 명이 이메일을 보내왔고 답장을 보냈다. 앞으로 잠을 못 자더라도 이메일 답장을 하겠다. 직원들에게 시장실도 개방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박원순을 읽는 첫 번째 코드는 바로 소통이다.
#코드2 _사람
박원순을 읽는 두 번째 코드는 사람이다. 박 시장은 출마선언문에서 “지난 시정의 가장 큰 문제는 서울시에 시민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지난 10년이 ‘도시를 위해 사람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면 앞으로 10년은 ‘사람을 위해 도시를 변화시키는 10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선 직후엔 ‘서울, 사람이 행복하다’를 시정의 좌표로 삼고 “사람과 복지 중심의 시정을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에게선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 중심의 서울을 만드는 새로운 엔진으로 보편적 복지를 꼽은 박 시장의 의지는 11월10일 확정한 2012년 서울시 예산안에 녹아 있다. 한강예술섬과 서해뱃길 등 한강르네상스 사업 같은 대형 토건사업을 미루는 대신, 일자리·보육·의료 등 복지 예산을 올해보다 13.3% 많은 6045억원으로 늘렸다. 내년 서울시 복지 예산의 전체 규모는 5조1646억원으로, 총액 21조7973억원의 26%에 달한다. 박 시장은 임기를 마치는 2014년까지 이를 3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핵심 공약 가운데는 ‘시민생활 최저기준선 확립’도 있다. 2018년까지 교육과 복지, 의료 분야에서 서울시민이 누려야 할 삶의 ‘최저선’과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적정선’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하늘 아래 밥 굶고 냉방에서 자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가 상정한 최저선일 것이다.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현장’을 강조해온 박 시장은 임기 첫날 일과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방문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오전엔 겨울철 종합대책을 보고받으면서 “사회 안전망에서 빠져 있는 분들을 재발굴하는 부분을 눈여겨봐달라”고 당부했다.
박 시장의 사람 중심 시정의 철학이 두드러져 보인 대목은 노숙인 문상 때였다. 그는 일요일인 11월6일 오후 언론에 공개하는 일정에는 들어 있지 않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향했다. 노숙인 홍아무개(38)씨 빈소에 들른 것이다. 그는 고인에게 조의를 표한 뒤 “아무 연고도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한 사람에게 누군가 친구가 돼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왔다”며 “그분이 외롭게 숨질 때까지 우리가 모든 책임을 다했는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임 이명박·오세훈 시장과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라면, 경쟁에서 탈락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같은 시민임에도 격리와 배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노숙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박 시장은 기꺼이 그들의 친구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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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3_현장
박 시장은 스스로를 현장주의자라고 말한다. 출마를 선언하면서 “현장에는 문제도 있지만 그 답도 준비돼 있다”며 “늘 현장에서 민생을 챙기겠다”던 그는 약속대로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현장을 누볐다. 노숙인 문상을 가서 노숙인을 돕는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나 ‘구세군 브릿지센터’ 쪽과 간담회를 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 기간 동안 예닐곱 차례(표 참조)나 된다. 10월31일엔 서울종합방재센터를 방문했고, 11월2일엔 관악구 서원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그들의 애환을 들었다. 11월4일엔 전날부터 서울시청에서 농성 중이던 뉴타운·재개발 주민들과 면담했고, 노원구 월계동의 ‘방사능 아스팔트’ 문제가 불거지자 11월6일엔 현장을 방문했다. 11월9일엔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재난위험시설물 가운데 위험도가 높은 건물 7채가 몰려 있는 종로구 행촌동을 찾아 시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11월10일 오전엔 내년 예산안을 직접 브리핑하고 오후엔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120다산콜센터를 찾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사실 취임 직후 보름 남짓한 기간은 일상적인 시기가 아니었다. 이 기간에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서울시정의 현황을 파악했고, ‘박원순 표’ 내년 예산안을 준비하는 동시에 부시장을 포함한 주요 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은 ‘공부하는 날’로 정해 시정 현안 파악에 집중하면서도 현장을 놓지는 않았다. 서울시장 박원순을 읽는 세 번째 코드는 현장이다.
#코드4_탈권위
박원순의 마지막 코드는 탈권위다. 요새 서울시 고위 공무원들은 그들의 ‘문법’에는 낯선, 어찌 보면 별나기도 한 박원순 공부에 여념이 없다. 박원순을 알아야 그가 어떤 시정에 대해 어떤 철학과 구상을 가졌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여러 저서에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등은 드러나 있지만 그의 품성이 어떤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나고 닥쳐서 깨치는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이 줄곧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이유도 탈권위, 파격과 관련이 있다. 11월10일 새해 예산안에 대한 언론 브리핑이 대표적이다. 서울시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기 전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인데, 그가 전임 시장들의 전례를 따랐다면 ‘방송용 원고’를 읽은 뒤 자리를 떴을 것이다. 예산안에 대한 구체적 설명,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그동안 고위 공무원들이 시장을 대신해왔다. 그런데 박 시장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5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보고와 지시에 익숙했던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박 시장의 탈권위적인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는 중이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박 시장에 대해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면서도 ‘대화형·참여형 리더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시장과 명함을 교환하고 상하 구별이 없는 회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업무에 대해 대화를 하는 방식은 생소한 경험이었다”며 “이명박 시장은 ‘나를 따르라’ 식이었고 오세훈 시장은 뒤에서 채찍질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새 시장은 많이 묻고 듣고 ‘그렇습니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다. 내 의견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꺼내놓고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박 시장의 ‘야근 일화’는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다. 야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피자와 통닭을 들고 사무실에 갔다가 직원의 어린 자녀와 통화한 일이다.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직원이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 하자 박 시장은 바꿔달라고 해서 “나 원순이 아저씬데, 나 때문에 엄마가 야근해 늦게 집에 가게 돼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전파력이 강해 발도 없이 천리를 간다.
소통과 사람 중심, 현장과 탈권위로 요약할 수 있는 박 시장의 코드가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몸에 밴 것이 아니라 임기 초반 인기를 의식한 반짝 행정이라면 실제 모습이 드러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그리고 희망제작소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박 시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시장이 된 이후와 이전이 다르지 않고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아직 ‘꼼꼼원순’은 다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늦은 밤까지 아이디어 회의를 했는데 다음날 아침 두꺼운 ‘페이퍼’를 내놓아 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소엔 다정다감하고 부드럽지만 업무에서는 칼 같은 면이 있다. 머지않아 시청에서 ‘악’ 소리가 날 것이다.” 한 시민운동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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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민’ 생겨날까
박원순 서울시장은 10·26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다음날인 10월27일부터 준비 기간 없이 곧바로 업무에 착수했다. 보름 남짓 일했다. 보름을 가지고 3년 가까이 남은 박원순의 시정을 가늠하기에는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그는 취임 직후부터 뉴스를 몰고 다녔다.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이들조차 ‘많은 공약을 내놨지만 3년 동안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며 기대치를 스스로 낮춰 잡으려 할 때, 그는 거꾸로 갔다. 거침이 없었다. 취임 첫날 서울 지역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지원안에 결재한 뒤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지원, 서울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 등 거의 매일 자신의 공약을 하나씩 이행했다. 최근 비준 동의 여부를 두고 정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서울시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내놓자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떼로 몰려나와 반박 기자회견을 여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이후 서울시장은 조순-고건-이명박-오세훈으로 이어지면서 학자, 관료와 정치인의 자리였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의 힘으로 시민운동가를 시장으로 밀어올린 첫 번째 사례다. 박 시장이 출마선언과 당선소감에서 밝힌 초심에 소통·사람중심·현장·탈권위와 일벌레·꼼꼼원순이 더해진다면, 지금까지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던 ‘서울특별시민’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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