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야한 농담이나 영상을 즐기기 않는 이유는 야한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음담패설이나 포르노가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왜 여성이 즐길 만한 에로물은 별로 없을까? 여성주의 에로물의 필요성은 국내에서도 꽤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작품은 별로 없다. 10년 전 변영주 감독이 인터뷰에서 여성주의 에로물을 만들겠노라 주창했지만, 는 여성주의 에로물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봉만대 감독의 이 여성주의 에로물을 찍으려는 여성 감독의 좌충우돌을 통해 여성주의 에로물이 아직 탐색 중임을 진지하게 보여주었다. 중년 여성과 젊은 남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 는 이들 관계의 정당성을 당위적으로 제시하고 갈등을 판타지적으로 봉합할 뿐, 욕망을 정면에서 돌파하진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년 여성의 성적 욕망을 그린 와 의 잇단 개봉은 반가운 일이다.
“아무도 날 여자로 봐주지 않아”
“당신은 무엇으로 사나요?” 의 무기력한 30대 후반 여교수는 속으로 “포르노”라 답한다. 그녀는 포르노를 보다가 옛 친구를 떠올리고, 10년 만에 찾아간다. 포르노 배우가 되겠노라고. 물론 후줄근한 여교수가 결심만으로 포르노 배우가 될 순 없다. 다이어트로 몸을 만들어야 하고, 은밀한 곳까지 관리가 필요하다. 몸이 얼추 되었다고 당장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나 덮치는 여관 아줌마’를 찍어야 할 상황에 ‘숫처녀 겁탈 장면’을 연기한다. 이토록 어려운 길을 그녀는 왜 가려고 할까? 친구는 “젊은 제자를 꼬시든지 차라리 호스트바를 가라”고 한다. 그녀의 대답. “아무도 자고 싶다는 사람이 없어. 돈도 없고”. 30대 후반까지 ‘아다’에다, 학생들에게조차 가끔 놀림당하는 그녀는 자신의 성적 자아를 포르노 찍기를 통해서라도 찾고 싶다. “하고 싶어, 남자도 자주 바꿔가며”라 말하는 그녀. 그녀의 욕망의 본질은 “시뻘건 피를 펌프질하는 심장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벌벌 떠는 그녀에게 친구는 남자배우의 가슴에 손을 대어 심장박동을 느끼게 해준다. 포르노를 찍겠다는 욕망의 본질을 환기시키는 대목이다.
의 여교수는 명목상 유부녀이고, 돈도 있고, 동안에 매력적이다. 하지만 남의 눈 때문에 이혼도 못하는 별거부부이고, 인터넷 섹스 사이트에서 ‘해방보지’(liberal cunt)란 아이디로 섹스 판타지를 풀어놓는 ‘오래 굶은’ 여자다. 그녀는 ‘혼외정사를 경험한 기혼여성의 성의식 변화’라는 연구를 위해 뽑은 보조연구원 ‘우상’(idol)의 싹싹한 태도와 일솜씨에 연정을 품었다가 여자친구가 있음을 안 날 친구를 불러내 하소연한다. “나이가 마흔… 아무도 날 여자로 봐주지 않아. 날 사랑해주는 남자는 없다구.” 친구는 그녀를 호스트바에 데려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반듯하고 예의 바르고 완벽한” 제자 ‘우상’이 ‘아이돌 짐승남’ 차림으로 여성 고객에게 접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은 초반에 ‘혼외정사를 경험한 기혼여성’ 인터뷰 장면을 통해 텍스트 안팎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회 뜨는 솜씨가 기막힌’ 15살 연하 청년과의 정사를 털어놓는 횟집 여주인. 힐끔힐끔 훔쳐보던 청년이 갑자기 덮쳤을 때, 그녀는 “내가 촌년에 아줌마라서 만만하게 보느냐?”며 뺨을 때린다. 그러나 청년의 “미안해요. 그런데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요” 한마디에 “키스해”라며 목을 끌어안는다. 그 뒤 바다 냄새 나는 격정적인 정사가 펼쳐진다. 약 6분간의 이 정사 장면은 여성이 느끼는 성적 흥분과 쾌감을 숨 막히게 담고 있다. 주인공도 아닌 엉뚱한 이들의 정사 장면을 넣은 것을 꼼수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이후경은 “6분 동안 이어지는 원테이크 정사신은 애꿎은 배우들만 발가벗겨놓아 불편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메타적으로 읽어야 한다. 횟집 여주인이 자기 사연을 구술하는 동안 정사 장면을 구성한 것은 여교수의 뇌다. 이는 영화나 소설을 보며 자신의 욕망을 투사해 머릿속에서 장면을 재구성하는 관객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하악하악’한 장면은 횟집 여주인의 회상이자 여교수의 성적 판타지이며, 영화를 보며 흥분하는 40대 여성 관객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배우가 누구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우리 욕망의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성장촉진제
은 초반 시퀀스를 통해 욕망의 본질을 다 말해놓고 나서, 복사기의 내레이션과 후반 40분 동안의 디지털카메라 시점에서 재구성한 우상의 입장까지 덧붙여가며 욕정이 아닌 사랑으로 맺어지는 멜로물을 만들려 안간힘을 쓴다. 물론 그 교훈은 중요하다. 자신의 내밀한 욕정을 감추고 상대에 대한 환상에서 출발한 관계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임”을 되뇌며 겉돌게 되지만, 서로 가면을 벗고 대면했을 때 진정한 합일에 이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교훈을 말하는 방식은 진부하다. 영화 초반의 에너지와 팽팽한 밀착감은 급격히 사라지고 쭈그러든다. 의 포르노 찍던 여교수는 어찌 되었을까? 남자배우의 가슴에 난 흉터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그의 심장을 느낀다. 남자배우가 바뀌자 ‘남자도 자주 바꿔가며’ 하고 싶다던 그녀는 쓸쓸해한다. 섹스가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문제임을 깨달은 것이다.
의 여교수는 마침내 사표를 쓰고 “인생이란 게 참 지랄이다”라고 말한다. 의 여교수는 마침내 이혼을 하고 우상과 입 맞추며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둘은 욕망을 관통하여 성장했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면 욕망을 직면할 것. 여성주의 에로를 표방한 두 영화의 교훈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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