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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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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민주주의 운운하다 자유주의 세력 나타나자 당황하는 보수우익…역사를 왜곡하고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 용어 넣는다고 자유가 그들의 전유물이 되나
등록 2011-09-30 17:03 수정 2020-05-0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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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무늬가 진해진다는 가을이다. 짐승이야 그렇다 치고, 한국에서 이른바 보수로 통하는 이들은 ‘표변’(豹變)을 잘한다. 진보로 분류되는 쪽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우리 편’이 아닌 걸로 판명 나면 그걸로 끝이다. 안철수를 보자. 는 지난 9월2일 1면으로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설을 기사화했다. 안철수가 자신을 드러내기까지 나흘 정도는 ‘간’을 봤다. 안철수가 한나라당을 두고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이라고 규정짓자 표변이 시작된다. “정치 아마추어한테 망신당했다”며 여야 정당들을 근엄하게 훈계하더니, 박원순 변호사와 단일화를 하자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다”며 완전히 몸을 뒤틀었다. 안철수의 등장과 퇴장을 “잘 짜인 드라마 같았다”고 했고, ‘안철수 따라하기’를 하는 여당에 대해 “당나귀가 강아지 흉내 내는 꼴”이라고도 했다.

‘자유 지키기’ 봉기한 보수우익

“주인 사랑을 독차지하는 강아지”는 안철수를 이른다. “그를 만날 때마다 위선 여부를 탐색했다”는 기자도 나타났다. 흡사 그 유명한 나폴레옹 일화를 뒤집어보는 꼴이다. 1815년 나폴레옹은 유배지인 엘바섬에서 탈출한다. 이를 다룬 당시 프랑스 최대 일간지 는 나폴레옹을 ‘살인마’로 지칭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파리로 진격하자 표변이 시작된다. 살인마에서 아귀→괴수→괴물→폭군→약탈자→보나파르트→황제로. 살인마에서 황제가 되는 데 불과 2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회주의 언론의 전형이다. 정치판에 등장한 지 채 20일이 지나지 않아 안철수도 아마추어, 강아지, 실체가 궁금한 이로 평가가 바뀌었다.



자유의 본래 의미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내면화한 이들이 나타나면서, 보수우익의 자유는 ‘후지다’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도장을 찍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자유’는 보수우익이 선점한 의제가 됐다. 물론 냉전세력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한 보수우익의 자유는 북한을 대당으로 한 반공적 자유,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시장의 자유라는 의미가 강하다. 특히 기본권으로서의 시민적 자유가 아닌 색깔론이 덧칠된 이념적 자유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집회·시위·사상·양심·표현의 자유는 뒤로 밀리고 안보가 우선한다. 보수우익에게 자유의 외연 확대는 그래서 위험하다. 보수우익이 발 딛고 선 반공적 자유, 신자유주의적 자유와 충돌하게 된다. 박원순·안철수를 한국에서 뒤늦게 발현한 자유주의 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이들에 대한 보수우익의 알레르기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열리는 데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 자유의 본래 의미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내면화한 이들이 나타나면서, 보수우익의 자유는 ‘후지다’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도장을 찍었다. 보수우익의 촌스러운 자유를 따르던 이들까지 새로운 자유주의 세력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두렵기까지 하다. 빠지는 지지율이 두려움을 실증한다.

이 와중에도 보수우익의 ‘자유 지키기’가 불붙고 있다. 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지우고 ‘자유민주주의’를 박아넣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세운다. 자유도 민주주의도 다 좋은 말들이다. 본래 의미로만 제대로 쓰인다면 자유민주주의라고 못 쓸 일도 아니고 당장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라”(한나라당 박영아 의원)는 말까지 나왔다. 1980년대나 나올 법한 ‘국시 논쟁’이 벌어진 셈이다. 이과 출신인 박 의원이 정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역시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귀순용사들이 찾던 ‘자유대한’이나 똘이장군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무당들이 나서자 자유도 민주주의도 난리가 났다.

헌법 119조를 왜곡한 홍준표 대표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는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연구 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애초 교육과정심의회에서 통과시킨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모조리 바꿔버렸다. 절차도 무시했고 의견 수렴도 무시했다. 이에 반발해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 위원들이 집단으로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는 근거는 헌법에서 나온다. 헌법 전문과 헌법 제4조 통일 조항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사용됐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1973년 이후 사회·역사 교과서에서 사용돼오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을 거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안타까움이 보태진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선무당이 됐다. 홍 대표는 9월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사라지기 시작한 자유민주주의 표기를 다시 복원한다고 해 (위원들이) 사퇴·반발하는 것은 우리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많은 애국선열의 피땀으로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헌법 전면 부정”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고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고도 했다. 헌법학 박사인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굿판에 뛰어들었다. 황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대칭하는 제도가 인민민주주의”라고 했다.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북한을 의식한 무리한 발언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으로 일컬어지는 것도 우리 당의 최대 가치를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헌법이 이합집산으로 만들어진 보수정당의 이익에 복무하는 종이쪼가리가 된 셈이다. 뭐가 급했는지 거짓말도 했다. 홍 대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당은 해산한다고 돼 있다. 또 (헌법의) 경제 조항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헌법 제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 해산할 수 있으며, 헌법 제119조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라고 규정돼 있다. ‘1987년 체제’의 유산인 헌법 제119조의 경제 민주화 조항은 우리 헌법의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조항이다. 헌법을 자유민주주의로만 좁혀서 보려는 ‘해석 개헌’ 시도에 사민주의적 요소까지 갖다붙인 것이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에 만든 ‘초헌법적인’ 유신헌법에서다. 헌법은 유신헌법 이전까지 6차례 개정되는 동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닌 ‘민주주의 제(諸)제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박정희가 개발한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있으니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는 논리인데, 애초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전혀’ 없었다. 1948년 헌법을 만든 제헌의회도 자유민주주의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한국 정치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부터다. 박정희는 “혁명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했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에 만든 ‘초헌법적인’ 유신헌법에서다. 헌법은 유신헌법 이전까지 6차례 개정되는 동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닌 ‘민주주의 제(諸)제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민주주의 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부분이 유신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로 돌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명림 교수는 최근호에서 “이념 대결이 극심했던 1948년 건국헌법 제정 당시에조차 유신헌법 및 현행 헌법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민주주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며 “1948년 이후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그 본래 의미와는 달리, 독재세력이나 보수세력에 의해 협애한 냉전자유주의 또는 반공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담론이자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그리고 1972년 유신독재의 등장 시점에 이 개념은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에까지 삽입됐다”고 지적했다. 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지만 ‘보안법 민주주의’ ‘긴급조치 민주주의’였다는 것이다.

보수우익의 논리에 끊임없이 지면을 대주고 있는 는 “자유민주주의란 대한민국 건국 이래 60여 년 동안 추구해온 이념”이라고 주장한다. 1948년 헌법 전문만 읽어봐도 이는 허구라는 사실이 금세 탄로난다. “1973년 이후 교과서들은 줄곧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을 사용”했다고 한다. 1973년 이후만을 강조하고 그 이전을 덮어놓는 데는 헌법의 모든 조항을 철저히 무시하고 유린했던 유신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자가당착적 진실을 감추고 싶어서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63년 9월29일치 신문에서 ‘민족적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사상 논쟁 이렇게 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어째 그때만도 못한 게 요즘 다.

“보수에게서 자유를 되찾자“

반공 논리에 기댄 보수우익의 협소한 해석 개헌 시도는 이승만·박정희 미화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이승만·박정희 독재에 저항,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가 전면에 나서게 될 경우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고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포장하기가 쉬워진다. 이승만 동상이 세워지고, 박정희 기념관이 문을 여는 시대의 사상적 징후가 과거 회귀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승만의 자유당에서 자유는 독재와 부패의 자유였고, 박정희의 자유민주주의가 철저히 자유를 거세한 유신의 자유였으며, 6공의 민주자유당은 3당 합당의 자유를 누렸다. 나름대로 개명한 보수우익이라는 뉴라이트 세력은 자유주의연대니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따위의 이름을 쓴다. 자유를 자유롭게 가져다 쓰되 철저히 특정 세력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유가 판친다. “보수에게서 자유를 되찾자.”( 정병욱 주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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