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이야기가 아직 이르다고 느껴지는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은 골목골목을 훑으며 밑바닥 민심을 다지고 있다. ‘용’이 될 꿈을 꾸는 정치인들은 내뱉는 말 한마디, 내딛는 한 걸음이 모두 대선과 관련돼 있다. 이 정부와 여당이 지긋지긋한 이들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며 진작부터 칼을 벼렸고,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어떻게 되찾은 정권이냐’며 방패를 닦고 있다.
어쨌거나 내년 총선과 대선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갈림길이다. 선거가 대체로 그렇듯, 정부·여당 심판론은 ‘기본 장착’일 것이다. 그렇다면 ‘추가 옵션’, 곧 2012년 양대 선거만이 갖는 특징적 구도와 성격은 무엇일까? 두 선거를 전망할 수 있는 틀은 무엇일까? 은 이를 네 가지의 키워드로 요약했다.
1. 수도권 민심의 가늠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사퇴함으로써 치르게 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수도권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가늠할 기회다. 구름에 둘러싸인 서울 남산 N서울타워. 한겨레 강창광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실패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갑작스레 치르게 된 보궐선거(보선)는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수도권 민심의 시험대다. 무상급식으로 상징되는 복지정책을 놓고 한나라당과 야당이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로 맞서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이 어느 쪽을 더 지지하느냐에 따라 총선·대선을 향한 양쪽의 ‘작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야권 연대의 방향과 내용도 보선 과정과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야 모두 서울시장 보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과 상의 없이 사퇴한 오 전 시장 때문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한나라당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 매수 의혹 사건’으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는 분위기다. 오 전 시장의 ‘과오’를, 진보개혁 진영의 ‘부도덕함’으로 덮어버리겠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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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선거 전략이다. 이명박계 의원들은 대체로 ‘복지 포퓰리즘 반대 2라운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나 정두언 의원 등 당내 개혁 세력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주민투표 무산을 “사실상 승리”라고 평가한 홍 대표는 8월30일 “(보선에서) 복지 외에 다른 이슈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참보수,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 나오면 기존 한나라당 지지층에 중도 성향까지 아우를 수 있다. 이벤트·탤런트 정치인, 제2의 오세훈이나 오세훈 아류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보편적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있지만, 이를 선거 전면에 내세울 경우 중도층까지 한나라당 지지층으로 끌어들이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도 “모든 얘기에 앞서 (당이 복지와 관련해) 뭘 주장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며 당이 복지 노선을 전환할 경우 선거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역설적이게도, 후보군 가운데 지지도 면에서 가장 앞서는 이는 나경원 최고위원이다. 나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 가운데 무상급식에 가장 비판적이며, 주민투표 과정에서 오 전 시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그래서 소장파와 박근혜계 등에선 그가 후보로 나서면 ‘오세훈 심판론’이 더욱 거세게 불타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안으로 박진·권영세·정두언 의원과 김황식 국무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한나라당은 외부 인사 영입 카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곽 교육감 사건으로 곤혹스럽긴 하지만, 민주당은 애초 이번 보선이 한나라당의 잘못으로 치러지게 됐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편적 복지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복지 수요’는 지난해 지방선거부터 꾸준히 확인되고 있는 터다. 또한 ‘한강 르네상스’로 상징되는 오 시장의 ‘삽질 정책’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복지정책으로 중도층까지 끌어모을 수 있다.
민주당의 고민은 전략보다 후보 선출에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오 전 시장과 맞붙어 접전을 벌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순위로 후보에 거론된다. 여론조사에선 한 전 총리가 독보적으로 앞서지만, 현재 진행 중인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이 걸림돌이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오 전 시장 사퇴 직후 의원직까지 사퇴하며 출마 선언을 했고, 김한길·신계륜 전 의원도 출사표를 던졌다. 원혜영·추미애·박영선·전병헌 의원 등도 후보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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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당 안에서 후보를 정하는 것도 어렵지만,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다른 야당과의 후보 단일화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야당에는 이미 통합 제안마저 해놓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가 좀 유리해 보인다고 다른 야당을 내치면, 민주당은 이번 보선은 물론 내년 총선·대선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박원순 변호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등 시민사회 인사들과의 조율 또는 경선도 변수다.
2. 1대1 구도: 야권의 승부수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9월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신의 대북·외교관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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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야당이 1대1 구도를 만들어야 야당에 승산이 있다는 데 토를 다는 이는 없다. 하지만 방법을 놓고는 ‘범야권 단일정당론’과 ‘통합진보정당론’이 맞선다.
민주당과 ‘백만송이 민란’ ‘혁신과 통합’ ‘내가 꿈꾸는 나라’ 등 시민사회단체는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진보개혁 성향의 야당이 모두 참여하는 단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난 4월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처럼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기싸움을 벌이다 ‘자멸’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정파등록제를 통해 같은 당 안에서 각자의 지분을 보장받고, 자유롭게 경쟁·협력해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루자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민주당 등과 자신들은 근본부터 다르다고 본다. 또한 단일정당론은 “진보정치 세력을 고사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론 이들도 혼자 힘으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두 당이 통합해 통합진보정당을 만들고, 이 당과 민주당 등이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정책연대 등 선거 연대를 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금으로선 어느 쪽의 주장이 관철될지 점치기 어렵다. 또한 서울시장 보선에 따라 정치권의 지형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당으로 합쳐 경선을 하든, 각자의 당을 유지한 채 통합 경선 또는 후보 단일화를 거치든 야당 ‘대표 선수’ 1명과 한나라당 후보 1명이 맞붙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3.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
복지 이슈는 지난해 지방선거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을 가르는 핵심 쟁점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취약한 우리나라의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적용 범위와 증세 여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나라당은 현재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선별적 복지를 내세우고, 민주당은 세금 신설 없는 보편적 복지로 맞선다. 진보신당은 증세를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선거만 놓고 보면, 이 쟁점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야당에 유권자가 지지를 보내고, 이에 따라 한나라당도 ‘좌클릭’하는 모양새다. ‘보편적 복지 기획단’을 꾸린 민주당은 최근 ‘3+3 정책’을 내놨다. 세금 신설 없이 매년 33조원을 마련해 무상급식·보육·의료와 반값 등록금, 일자리·주거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증세 없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보편적 복지라는 방향 설정에는 별 이의가 없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나라당에선 “‘보수는 선별적 복지, 진보는 보편적 복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책임 있게 복지를 확대해나가야 한다”(정태근 의원)는 주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9월1~2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 유승민·남경필 최고위원 등 지도부 일부도 복지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이렇게 양쪽이 ‘복지 전쟁’을 벌이는 양상이지만, 선명한 구도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여야 모두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유권자들이 볼 때 차별성이 없다”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시장 개혁처럼 논쟁점이 확실한 프레임이 더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4. 박근혜는 계속 대세?
이 정부 들어 대선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이들 가운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보다 지지율이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대체로 25~35%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지지율은 ‘박근혜 대세론’의 기반이 됐다. 극심한 계파 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한나라당도, 이 대세론 덕분에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계와 개혁소장파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정몽준 의원은 9월2일 문화방송 라디오 에서“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높다는 건 나도 잘 보고 있지만, 대선은 1년여 남아 있다”며 “앞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은 경쟁자인 정 의원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계 의원들 말고는 대체로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핵심은 이 대세론이 ‘언제’ 뒤집힐 것이냐다. 정치권 안팎에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선 박 전 대표가 가장 유리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중적 지지도뿐만 아니라 당원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 지지도가 가장 높고, 박근혜계 의원·당협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한 조직력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정몽준 의원을 비롯해 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대항마로 거론되지만 아직은 확실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역전 가능성은 본선 격인 야당 후보와의 경쟁에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이는 야권 연대 또는 통합을 전제로 할 때, 야당이 경선 또는 후보 단일화를 얼마나 역동적이고 감동적으로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야당의 대선후보군이다. 지지율에선 손 대표와 문 이사장이 선두를 다투고 있지만, 실제 문 이사장의 출마 여부, 내년 총선 결과 등에 따라 상황은 유동적이다. 다만, 반이명박 정서가 곧 야당 후보 지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처럼 야당이 아니라 박 전 대표가 ‘반이명박’의 아이콘 역할을 계속한다면, 대세론은 뒤집기 어렵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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