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에서 하는 거 우짤 끼고. ‘협조나 해서 돈이나 더 받자’, 지역사회 풍토라는 게 다 그런 생각이지.”
서울은 물난리가 났다는데 경남 사천시 삼천포는 해가 쨍했다. 비가 한 번 쓸고 지나간 바닷가의 햇살이 독했다. 7월28일 오후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의 반응은 그러했다. ‘관에서 하는 거’는 사천시에서 2006년부터 추진해온 향촌동 농공단지사업을 말한다. 사천시는 올해 말까지 향촌동 일대 26만여㎡에 삼호조선을 사업시행자로 하는 농공단지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호조선은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로 한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유명해진 삼호해운 계열사다. 농공단지 부지의 약 3분의 1인 9만3천여㎡는 바다를 매립해야 한다. 사천시는 농공단지가 마련되고 삼호조선의 선박 블록공장이 들어서면 2천여 명의 고용 창출과 연간 3천억원의 경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 사업은 지난해 말부터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10월 삼호조선의 경영 악화로 바다를 찔끔 매립했던 삽차와 트럭이 멈췄다. 급기야 지난 5월 부도가 나자 삼호조선을 시행사로 하는 농공단지사업 자체가 불확실해졌다. 사천시 쪽은 “곧바로 공사 재개를 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업시행자를 찾아 향촌농공단지를 완공하겠다”고 했다.
조선소 내쫓고 조선소 세우고사천시가 사업시행자로 다른 조선업체를 새로 지정하면 공사는 재개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아주 상식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에 있다. 사천시가 새 조선소를 들여놓겠다고 한 자리에선 이미 다른 조선소가 수십 년째 운영 중이다. 동일 업종, 게다가 두 조선소 모두 민간업체다. 그런데 새로 들어오는 민간 조선업체에는 기존 조선업체의 땅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진다. 쉬운 말로 ‘나의 이익을 위해 너의 땅을 뺏는’ 권한인 셈이다. 박힌 돌 빼내는 굴러온 돌은, 간단히 말하건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멀쩡한 조선소를 쫓아내고 다른 조선소를 세울 수 있다는 법적·행정적·사회적 배경에는 긴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한국조선. 땅을 뺏기면 폐업해야 할 처지에 있는 소형 조선소다. 몇 해 전 HK조선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매출액 90억원. 올 상반기에 방위사업청에서 수주한 4척의 배를 넘겼고, 현재는 여수지방항만청에서 수주한 70t짜리 철선을 건조 중이다. 2009년에는 1350t짜리 유람선도 건조했다. HK조선을 운영하는 박아무개(49)씨는 선박수리업체인 동진조선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가 1977년에 차린 회사다. 동진조선은 한 해 200~300척의 소형 어선을 수리한다. 지역 어업이 많이 위축됐다지만 수리소가 없으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동진조선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동성조선은 2009년 문을 닫았다. 삼호조선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땅을 넘겼다. 동성조선이 있던 자리는 이미 매립공사가 진행됐다. 조선소에는 당연히 배를 진수할 바다가 필수적이다. 서로 맞붙어 있는 HK조선과 동진조선은 배를 얹는 레인을 선박 건조용으로 2개, 수리용으로 6개를 해안에 깔아놓았다. 향촌농공단지는 HK조선과 동진조선이 있는 앞바다 9만3천여㎡를 메우기로 돼 있다. 박씨는 소송 과정에서 “공공수용이라는 공권력을 동원해 수십 년 향토기업인 작은 조선소를 규모만 조금 클 뿐인 외지 조선업체에 넘기려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지역 풍토’와 달리 ‘보상금이나 더 받고 말자’는 식이 아니었다.
사천시의 향촌농공단지 지정은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산업입지법)에 따라 진행됐다. 산업입지법 제22조 1항은 “사업시행자는 산업단지 개발사업에 필요한 토지·건물 또는 토지에 정착한 물건과 이에 관한 소유권 외의 권리, 광업권·어업권·물의 사용에 관한 권리를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저런 복잡한 말을 떨어내고 보면 한마디로 ‘토지 강제수용권’을 사업시행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땅 소유주와 ‘협의’가 되면 보상금을 주고 땅을 사들이고, 협의가 안 되면 토지수용위원회를 거쳐 강제수용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산업입지법은 사업시행자를 ‘공익성’을 담보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4대강 사업’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로 한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이윤 추구가 목적인 민간업체도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다. 삼호조선이 HK조선에 땅과 바다를 내놓으라고 압박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법에 근거했다.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업자에 토지수용권을 주는 법률은 산업입지법 외에도 많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관광진흥법, 기업도시개발특별법, 도시개발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택지개발촉진법,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동서남해안발전특별법,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신발전지역 육성을 위한 투자촉진특별법, 지방소도읍육성지원법, 제주도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 주한미군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및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법, 2012 여수세계박람회지원특별법,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전원개발촉진법, 수도법, 하수도법, 항공법, 광업법,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주택법까지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는 토지 강제수용 조건으로, 민간 개발업자 등에게 일정 비율 이상으로 토지를 미리 매입하거나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단서를 다는 경우도 있다. 산업입지법처럼 아무 ‘조건’도 달지 않은 채 인허가 관청으로부터 사업 인정만 받으면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법률도 많다. 어찌됐든 자본 여력이 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땅 몰아주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을 규정한다. 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에 이어, 2·3항은 그럼에도 재산권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행사돼야 하며(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익적 목적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다(3항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인(私人)에게 다른 이의 재산(토지)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률들에는 전제가 있다. 헌법 제23조 3항에 나오는 ‘공공필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이라도 공공필요에 따라 재산권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 도로나 항만 등 공공성이 큰 사업에 자신의 토지를 ‘양보’하는 경우가 그렇다. 비록 사기업이라 하더라도 공공필요를 충족하는 사업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대규모 개발사업의 공공필요, 그 사업의 공익성을 누가 판단하느냐다. 공공필요성이 인정될 경우에도 남이 버젓이 살고 있는 땅을 사인이 강제로 뺏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조선소를 조선소로 밀어내는 게 공공필요일까. 필요하다 해도 꼭 그런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걸까.
“정부 사업이면 강제수용이라 해도 말이 돼. 근데 개인 사업이잖아. (협상이) 안 되면 집달리가 와서 끌고 나가고. 빨갱이도 그런 법이 없는 거야.” 마을을 빙 둘러싼 뒷산 수십만㎡가 파헤쳐진 경기도 안성시 동평리 동양마을. 8월4일 낮 마을회관에서 만난 83살의 이재용씨에게 골프장 업체는 내 것, 네 것 구분하지 않는 ‘빨갱이’와 같았다. ‘이곳은 당사 소유의 사업지입니다. 당사의 허가 없이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오며, 만약 이를 위반하고 무단침입할 시에는 형법 제319조 등에 의거 강력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오니 이 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이거 뭐여? 형법 뭐? 개뿔 같은 소리 하네.” 한 마을 주민이 골프장 부지 입구를 가로막은 알림판을 보고 화를 냈다. 강제로 땅을 뺏더니 발을 디디면 처벌한다는 소리에 버럭 역정이 난 것이다.
‘공공필요’ 제한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골프장 업체 쪽에 집과 땅, 임야를 뺏긴 것도 억울하지만 지금이 더 걱정이다. “골프장에 파놓은 연못이 여기저기 많은데, 비만 오면 언제 터질지 몰라 걱정이야. 물폭탄을 안고 사는 심정이라고.” 마을 이장 안갑승(65)씨는 서울 우면산 산사태 얘기를 꺼냈다. 골프장 필드와 마을의 직선거리가 21m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다. 대부분 50m 안팎이다. 어떤 곳은 흙을 퍼올린 낮은 둑을 사이로 마을과 골프장 연못이 마주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은 온통 논이다. “산사태도 걱정이고 골프장에 뿌려댈 농약도 큰 걱정입니다.” 이택순(60)씨가 거들었다.
동양마을은 2007년 경기도와 안성시가 마을 뒷산에 골프장 허가를 내주자 난리가 났다. 인허가 관청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골프장을 ‘기반시설’의 하나인 ‘체육시설’로 봤다. 이 경우 사업시행자에게는 토지에 대한 공용수용권이 부여된다. 마을 주민이 이용할 리 없는 회원제 골프장에 공공필요를 인정한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인허가 관청은 “법에 나온 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는 태도였다. 토지 강제수용이 진행됐다. 80살이 넘은 최씨 노인 부부는 골프장 쪽과 합의를 하지 않고 버티다 집이 강제철거됐다. 바로 이웃한 이는 집을 지은 지 2년 만에 땅을 강제수용당하고 집이 헐리자 마을을 떴다. 마을 주민 일부가 2008년 12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공공필요성이 없는 사업을 위해 민간 개발업자에게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해당 조항은 헌법 제23조 3항에 위반한다”는 취지였다.
헌재는 2년6개월 만인 지난 6월, 토지 강제수용의 전제가 되는 ‘공공필요’를 헌법적으로 일부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체육시설의 종류와 범위를 하위 법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탓에 일부 골프장까지 수용권을 과잉 행사할 수 있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것이다. 녹색연합 녹색법률센터의 최재홍 변호사는 “이 결정은 개발과 공익이라는 미명 아래 진정 공익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남발돼온 수용권이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은 헌재의 결정을 바탕으로 법원에 토지수용을 취소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만 유효하다. 2년 전 헌재는 산업입지법에 따른 민간업체의 토지 강제수용은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민간업체는 나라 경제를 먹여살린다는 ‘공익성’을 안팎에서 인정받는 삼성전자였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이미 대규모 산업단지(248만㎡)를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2004년 산업입지법에 따라 211만㎡가 넘는 탕정 2단지 지정승인을 요청했다. 충남도와 아산시는 이를 5개월여 만에 속전속결로 승인했고, 산업단지 내 민간인 소유 토지는 수용 대상 토지가 됐다. 1990년대 선영과 연고지 등이 수용당한 적이 있는 우아무개(69)씨 등은 당시 보상금으로 땅을 사들여 과수원을 일궜다. 그 땅이 다시 탕정 2단지 부지에 포함됐다. 토지수용위원회는 이 땅에 대해 강제수용을 결정했다. 수용권이 발동된 우씨의 땅은 공장 설립에 직접 필요한 땅도 아니었다고 한다. 땅을 수용당하게 된 다른 이들의 ‘이주대책용’으로 우씨의 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개발업자 배불리는 수단 전락우씨는 “민간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설사 세수 증가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공공필요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 산업단지 개발로 민간기업이 얻는 이윤을 환수하는 규정조차 없는 산업입지법 조항은 헌법 제23조 3항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익이 나면 기업의 이익이지, 곧바로 지역사회나 국가의 이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에 삼성전자 쪽은 “산업입지법의 기본 정신은 민간기업의 영리 추구와 공공필요의 조화를 통해 민간기업에 의한 산업단지 개발과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공익을 모두 달성하는 데 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헌재의 합헌 논리는 이랬다. “19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 추진과 더불어 시작된 산업단지 개발은 지난 세월 동안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므로 공공필요성이 인정됐다. “민간기업이 토지수용 주체가 되더라도 수용권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나 지자체다. 이는 궁극적으로 수용에 요구되는 공공필요성에 대한 최종적 판단 권한이 국가와 같은 공적 기관에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간기업에 의한 토지 강제수용도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우씨 쪽은 토지의 사적 소유권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다른 재산권과 달리 공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토지공개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대신 “공익성이 떨어지는 민간 개발업자의 경우에는 집행 과정을 더 엄격하게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아직까지 탕정 2단지에는 삼성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와 상가만 지어졌을 뿐 공장 설립 공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땅을 수용당한 이들 사이에서는 “삼성이 땅을 사들인 뒤 공장은 안 짓고 아파트 장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헌법학계 인사는 “민간 개발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은 악용될 경우 국가제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길을 터주게 된다. 따라서 해당 사업의 공익성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며 “1차적으로 인허가청에서 공공필요를 판단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사법부에서 판단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인허가를 내주고, 사법부는 ‘행정청에서 공익성을 인정해 인허가를 내줬는데 사법부가 공익성을 어떻게 따지냐’는 식으로 나온다”고 지적했다. 사법부도 할 말이 있다. 고유한 행정작용에 사법부가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판단하는 조직이다. 어떤 기업이, 어떤 장소에, 어떤 사업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를 따지는 식으로 섣불리 공익성 판단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런 유의 사업이나 토지수용이 문제가 된 행정소송에서 주로 인허가 절차의 문제점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지방정치, 즉 지방의회에서 적절한 통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방정치에서 실패한 사안을 사법이 통제해달라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사업에 법원이 도장을 찍어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첫 단추’로 돌아간다. 최재홍 변호사는 개발행정의 인허가를 담당하는 지자체장들의 잘못된 판단이 공용수용 제도를 개발업자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본다. “1차적으로 어떤 개발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이 전혀 없다. 분석을 하더라도 개발을 정당화하거나 수요 부풀리기식 분석이 대부분이다.” 최 변호사는 “공익사업을 민간이 추진하는 것을 모두 터부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민간기업은 공적 수용제도를 통해 토지에 대한 사적 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견제장치 등을 통해 수용 자체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기업 정서가 아니다
헌재의 산업입지법 합헌 결정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표현을 빌려 가난한 이에게서 빼앗아 부자에게 주는 ‘역로빈후드 방식의 수용권 행사’라고 비판한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지난 수십 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개발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몰입돼 재산권 보장에 관한 헌법 원칙을 소홀히 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개발 법률들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쉽게 박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헌법 제119조 경제 민주화 조항에 발끈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툭하면 들고 나오는 ‘반기업 정서’가 아니다. 대자본과 큰 기업이 소자본과 작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에, 이를 돋보기 들고 엄밀히 따져보자는 얘기다. 헌법 제23조 3항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제119조도 좀 들여다보라는 말이기도 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보상금 산정하는 토지수용위원회
독립성·공익성 묻지마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두고 사업시행자와 소유주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준사법적 행정기관’인 토지수용위원회가 개입하게 된다. 지역에도 토지수용위원회가 있는데, 국토해양부 소속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가 강제수용 등의 최종 결정을 한다. 토지수용위의 목적은 ‘원활한 사업 추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토지의 강제취득(수용재결)이 가능하도록 보상금을 산정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이 중토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중토위가 처리한 수용재결 건수는 지난해 1525건, 올 상반기에는 876건에 달했다. 수용재결에 따른 보상금 조정 등을 다시 요구하는 이의재결 건수도 각각 1410건, 747건이었다. 하지만 민원 업무의 이해관계인들이 주로 중토위 상임·비상임위원을 맡는 탓에 객관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현재 중토위 상임위원에는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사업부본부장, 비상임위원에는 변호사·감정평가사 등이 포함돼 있다. 과거에도 지방국토관리청장·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부단장, 건설·교통·주택 관련 고위 공무원 등이 위원을 맡았다. 이 때문에 토지수용위의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대규모 개발사업 인허가를 내준 국토부나 지자체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중토위도 “업무 밀착도가 높은 변호사·감정평가사 위원은 연임시키지 않고 단임제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운영 방식도 문제다. 같은 위원들이 수용재결에 이어 이의재결까지 판단한다. 심급을 뒀지만 ‘원님’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토지수용위에 대한 불만이 많다. 한 판사는 “보상액 산정에 앞서 ‘공익성이 있느냐 없느냐’ 수준까지를 토지수용위가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사업의 범위에 대해 ‘우리에게 아예 묻지도 말라’는 식이다. 준사법적 기능을 하는 행정부 내 위원회인데 법률적 판단은 손을 놓아버렸다. 걸러줄 사업도 못 걸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중토위는 해당 사업이 정말로 필요한지를 묻는 민원에는 “행정쟁송에 의해 사업 인정이 취소되지 않는 한 사업 시행이 불가능하게 되는 재결을 행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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