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 실패와 허술한 감독, 방만한 경영.
최근 말썽을 빚고 있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원인은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정부의 잘못된 처방은 저축은행 부실로 이어졌다. 시발은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외환위기가 닥치자 정부는 급히 예금자 보호 한도를 2천만원에서 무제한으로 확대했다. 은행이 무너지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예금자 보호 한도는 5천만원으로 조정됐다. 새로운 기준은 저축은행에도 적용됐다. 소액 예금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저축은행에 와서는 결과가 엉뚱하게 나타났다.
거품은 꺼지고 부실은 커지고
저축은행의 높은 예금금리를 노리고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이자를 높게 쳐줬다. 그런데 5천만원 이하의 예금은 보호되기 때문에 높은 이자 수익을 노린 돈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특히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저축은행이 재테크 수단이 됐다. 예금액을 5천만원 단위로 쪼개서 가족 이름으로 여러 저축은행에 넣어두면 돌아오는 몫이 크게 마련이었다. 저축은행 처지에서는 몰려오는 돈을 높은 이자를 얹어 돌려줘야 했지만, 입금액을 모두 마땅히 투자할 곳은 한정됐다. 저축은행보다 더 높은 이자를 물어주는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축은행 부실의 원인이 하나 쌓였다.
문제는 또 있었다. 1998년 일반은행에 대한 여신금지업종 규제가 폐지됐다. 그 전까지 일반은행은 골프장, 콘도미니엄 등 일부 업종에 대출할 수 없었다. 규제가 완화되자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저축은행의 ‘돈줄’이 줄어들게 됐다. 그만큼 저축은행의 부실이 늘었다.
2006년 8월 규제 완화는 그나마 일부 저축은행의 숨통을 틔워주는 듯했다. 당시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불량채권 비율이 8% 이하인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대출한도 80억원 규제를 풀어줬다. 마침 2005년부터 불기 시작한 부동산 바람은 저축은행에는 ‘순풍’이었다. 저축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급증했다. 2005년 말 PF 대출액은 6조3천억원이었으나, 2006년 말에는 2배(11조6천억원) 가까이 늘었다. 그렇지만 그럴듯해 보이던 PF 규제 완화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2009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걷히며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고스란히 부실로 누적됐다. 결국 PF 대출 과열을 정부에서 부채질한 셈이 됐다. 당시 규제를 풀어준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은 현 정부에 와서 기획재정부 장관직을 맡고 있다. 윤 장관은 지난 4월20일 국회 청문회에 나와 옛날 결정에 대해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최악의 선택’이 돼버렸다.
금감원 출신 저축은행 ‘낙하산’ 19명
둘째, 금융 당국의 허술한 감독 탓도 컸다. 감사원은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했다. 그 결과가 지난 3월17일 발표됐다. 결론은 관리·감독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감사원 자료를 보면, 곳곳에서 부실 감독의 정황이 드러난다. 많은 저축은행이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융 당국은 부실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또 부실 규모를 정확하게 산정하지 않은 인수·합병을 승인해 저축은행의 부실이 해소되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 그 밖에 저축은행이 영업 관련 법령을 어겼지만 이에 대한 감사도 소홀했다. 감사원은 금융위와 금감원에 기관주의 조치를 내리고, 담당 국장 등을 포함한 관료들에 대한 주의 및 징계를 요구했다.
감독 소홀의 정황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지난 3월 미래희망연대 김정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금융 당국은 2008년 이후 BIS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나빠진 7곳의 저축은행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대전저축은행은 2008년 6월 BIS 비율이 -13.42%까지 떨어졌지만, 금융위원회는 경영개선 명령 대신 1천억원 유상증자를 하도록 했다. 지난해 12월에도 BIS 비율이 다시 -3.18%로 나타났지만, 경영개선 명령보다 강도가 낮은 경영개선 요구 조치를 내렸을 뿐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BIS 비율이 3% 미만이면 경영개선 요구를, 1% 미만이면 경영개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들의 부실에 눈감은 동안, 금감원에서 퇴직한 관료들은 저축은행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말 금감원 출신 관료 가운데 저축은행 상근 감사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사는 19명이었다. 퇴직 관료뿐 아니었다. 현직 금감원 관료와 저축은행의 관계도 간혹 끈적했다. 지난 3월2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수석조사역(3급) 최아무개씨를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저축은행의 불법 대출 및 사업 확장과 관련된 인허가 비리 등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최씨의 비위 사실이 들통나고 말았다.
셋째,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일부 저축은행 경영진의 전횡과 부실은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일부 대주주에게 저축은행은 개인 사금고였다. 낯설지 않은 얘기였다. 2000년대 초반 3대 벤처 비리 사건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의 이면에는 모조리 저축은행이 등장했다. 당시 저축은행은 상호신용금고라 불렸다. ‘어두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은 대표적인 ‘빙산의 일각’이다. 이 회사의 전직 임원 이아무개씨는 지난 4월21일 구속됐다. 혐의는 2005~2008년 PF 대출 사업에 대한 컨설팅비 명목으로 친동생에게 22억여원을 무단 지급하고, 동생이 부동산을 사들여 건물을 짓는 데 32억원을 불법 대출해준 것이었다. 저축은행에서 회삿돈은 종종 쌈짓돈이었다. 앞서 4월13일에는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박연호 회장 등 10명이 구속됐다. 이들도 특정 업체에 한도를 넘어 대출하거나, 규정을 어기고 대주주에게 대출하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에 낸 보고서에서 “저축은행들은 개인 대주주 지배구조하에서 견제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노무현 정권 때 저축은행 규제를 완화해 부실의 씨앗을 뿌렸고, 현 정권 들어서는 성장 중심 경제정책을 펴며 저축은행 부실 처리의 타이밍을 놓쳤다. 저축은행의 부실이 곪고 터진 다음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서 국가적 비용만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영업을 정지한 저축은행의 부실을 정리하는 데만 6조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또 8개 저축은행 외에 상반기 중에 추가 구조조정은 없다는 태도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에 낸 보고서에서 “(정부가)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앞으로 저축은행의 부실 정리에 들어갈 비용이 폭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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