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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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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지를 두려워하는가

박근혜표 복지는 치켜세우고 민주당표 복지는 비난하는 보수의 ‘선별적’ 복지 비판…
무엇이 두려워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에 혈안일까
등록 2011-01-27 11:23 수정 2020-05-03 04:26

복지는 권리이자 의무다.
대한민국 헌법은 그렇게 말한다.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 34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1항),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2항)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국민은 그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으며, 국가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올해 복지예산에 대해 “매년 복지예산이 늘어나고 내년도 복지예산이 역대 최대다.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된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로 처리한 이후 보건복지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였다.

선거 담론으로 본격 대두된 복지

어쩌면 그는, 자신과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약속했던 내용이 실현된 것으로 알고 얘기했는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2012년까지 5살 이하 어린이의 보육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어린이들의 의료비는 물론, 중증질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전액 면제하겠다고도 했다. 대상이 제한적이긴 하나 이른바 ‘무상의료’에 가까운 공약이었다. 한나라당은 2008년 총선에서 65살 이상 노인의 기초노령연금을 월 9만여원에서 36만원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모든 게 이뤄졌다고 해도 복지국가라고 하면 과언이다.
복지예산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실제 매년 늘었고 역대 최대인 점도 맞다. 그런데 전체 예산이 해마다 늘었고 그 역시 올해가 역대 최대였다. 따라서 전체 예산이 얼마나 늘었고 그 가운데 복지예산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야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한 나라의 복지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일반적인 지표는 복지예산의 증감이나 다소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예산의 비중이다. 이 지표를 보면 2009년 7.5%에서 2010년 7.0%로 떨어졌다. 정부가 내놓은 ‘2010~201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예산 부분을 기초로 추산하면, 6.9%(2011년) → 6.9%(2012년) → 6.8%(2013년) → 6.6%(2014년)으로 계속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은 20% 수준이다. 평균을 끌어내리는 나라의 대통령이 복지국가를 운운하면 그것은 과언임이 틀림없다.
사실 역대 선거에서 복지가 주요 쟁점인 적은 거의 없었다. 경제 공약이 판세를 가를 때도 ‘성장’이 이슈였다.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고 시민의 삶을 향상시킬 복지 관련 공약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중산층이 얇아지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됐다. 결혼을 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는 고령화돼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단계에 이르렀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복지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이 깨지자 변화가 찾아왔다. 2007년 대선(매년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이루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과 2008년 총선(한나라당의 뉴타운 공약)을 지배했던 성장 담론은 불과 2~3년 만에 복지 담론에 그 자리를 내줬다.
2010년 6·2 지방선거의 판세를 가른 정책 공약은 무상급식이었다. 밥에서부터 시작된 복지 논쟁은 이제 교육과 의료, 주거와 노동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까지 번질 기세다. 지난해 말, 유력한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가세로 열기가 더해진 복지 논쟁은 일종의 대선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내 지역 사람이 되면, 혹은 경제가 성장하면 내게도 떡고물이 떨어지겠지 하는 전근대적 수준에서, ‘한 사회의 희소가치를 누가,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차지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힘, 즉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에 대한 본원적 정의(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표 복지론’도 보편적 복지에 가까워

» 민주당은 최근 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건강한 논쟁을 통해 정치를 ‘선진화’할 법도 한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복지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한겨레 탁기형

» 민주당은 최근 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건강한 논쟁을 통해 정치를 ‘선진화’할 법도 한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복지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한겨레 탁기형

따라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전체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 어떤 국가 정책이 시급한지를 따져보고 예산의 우선순위, 재정과 조세체계의 건전성, 적절한 조세제도와 부담률 등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우리 사회의 공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수순이다. 그래야 같음과 비슷함과 다름을 가려볼 수 있게 된다.

<font color="#C21A8D"> 과거 진보개혁 세력들을 ‘일망타진’할 때
즐겨 쓰던 ‘좌파’ ‘빨갱이’라는 자극적인 색깔론이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꿔 ‘신장개업’을 했다.
이른바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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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논쟁 양상은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진보개혁 세력들을 ‘일망타진’할 때 즐겨 쓰던 ‘좌파’ ‘빨갱이’라는 자극적인 색깔론이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꿔 ‘신장개업’을 했다. 이른바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다. 포퓰리즘은 흔히 대중영합주의로 번역하나, 케임브리지 사전은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과 활동’(political ideas and activities that are intended to represent ordinary people’s needs and wishes)으로 정의한다.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나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 포퓰리즘 담론 공세의 선봉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주요 인사들, 보수를 자처하는 친정부 성향 언론 조·중·동이 있다.

» 지난해 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 공청회’는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한겨레 김경호

» 지난해 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 공청회’는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한겨레 김경호

왜 복지 포풀리즘이라는 공세가 과거의 색깔론과 다름이 없는지는 최근 일련의 사례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0일 사회보장법 공청회를 열어 “생애주기별로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는 예방적이고 지속 가능한 한국형 복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박근혜표 복지론’으로 미래 권력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재원 등 각론은 아직 비어 있지만, 모든 국민이 생애주기별로 겪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육·교육·직업훈련·보건·주건·노후생활 등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 평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주로 한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선별적 복지가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낙오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최소한의 시혜적 복지인 반면, 보편적 복지는 경제적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혜택을 받을 권리를 광범위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두 가지가 무 자르듯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양극단이 있을 뿐 나머지는 그 사이 연속선상의 어느 지점에 있는 상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과거 잊은 복지 때리기

지난해 초부터 복지를 매개로 한 진보개혁 세력의 연대 움직임,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간의 무상급식 예산을 둘러싼 충돌에 이어 박 전 대표의 ‘한국형 복지론’까지 더해져 연초부터 복지 담론이 가열 조짐을 보이자, 이 대통령은 1월3일 신년 특별연설에서 포문을 열었다. “한정된 국가 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복지 포퓰리즘 발언 이후,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무상급식 이슈를 중심으로 이른바 ‘반복지 포퓰리즘’ 전선에 섰다”)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복지 포퓰리즘이 오히려 공산주의보다도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의 의식상태를 좀먹는다”)도 가세했다.

» 보수를 자처하는 친정부 성향 신문 조·중·동은 ‘박근혜표 복지’와 ‘민주당표 복지’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전자는 “성장에서 소외된 국민까지 포용하는 복지국가 완성을 선언한 것”이라고 치켜세우더니, 후자는 “망국적 표장사” 등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보수를 자처하는 친정부 성향 신문 조·중·동은 ‘박근혜표 복지’와 ‘민주당표 복지’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전자는 “성장에서 소외된 국민까지 포용하는 복지국가 완성을 선언한 것”이라고 치켜세우더니, 후자는 “망국적 표장사” 등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1월6일과 13일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10%로 낮추는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방안 △저출산 극복을 위한 무상보육 △대학생 ‘반값 등록금’ 정책 등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복지 전선은 전면화됐다. 지난해 10월 보편적 복지를 강령으로 채택한 뒤 정책으로 다듬어온 ‘민주당표 보편적 복지’의 밑그림이 공개되자 한나라당의 공세도 더욱 거칠어졌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득 하위 70%까지 보육비와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민주당의 혈세 퍼주기식 무상 시리즈는 표만 보자는 선거 슬로건”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당내 선거에서 반값 등록금과 반값 아파트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는 홍준표 최고위원도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을 세금폭탄 시리즈에 비유하면서 “국민을 현혹하는 무책임한 복지정책은 옳지 않다”고 가세했다. 이런 비판은 과거 자신들이 내놓았던 ‘보편적 복지스러운’ 정책에 들이대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박근혜표 복지론’과 ‘민주당식 복지론’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 태도도 집권세력의 표변 못지않았다.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을 대권 행보로 해석하면서 “성장에서 소외된 국민까지 포용하는 복지국가 완성을 선언한 것”(2010년 12월16일치)이라고 치켜세웠던 는, 민주당의 복지론에 대해서는 지난 1월8일치 두 면에 걸쳐 “야, 공짜 시리즈로 대선까지 겨냥” “망국적 표장사”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비난을 쏟아냈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청와대와 여당의 친서민정책특위가 쏟아내는 각종 정책, 유력 대선주자가 내놓는 정책들도 사실은 포퓰리즘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여당은 눈감아주고 야당의 복지 주장에 대해서만 ‘공짜’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비판하면 균형감각을 의심받는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박 전 대표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와 역시 각각의 사설에서 “민주당 ‘공짜’ 시리즈는 폭탄이다” “過 복지… 착한 납세자는 세금 苦… 나라는 빚더미”라며 선동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

“포퓰리즘은 국민을 깎아내리는 전략”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맞서는 보수세력의 무기로 등장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포퓰리즘 담론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세력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국민과의 대화나 제2건국운동을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생산적 복지와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적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팬클럽이 만들어졌고 재임 중에 인터넷 여론을 중시했던 노 전 대통령은 ‘디지털 포퓰리스트’로 낙인찍었고 탄핵 반대 촛불에도 어김없이 포퓰리즘 딱지를 붙였다.

강정인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2008년 논문에서 “포퓰리즘은 개혁정부는 물론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싸잡아서 ‘인기영합주의’의 산물로, 민주주의의 타락된 형태인 ‘중우정치’의 표본으로 몰아세우는 담론 전략”이라며 “20세기 중반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맥락과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적 맥락이 판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의 포퓰리즘에서 대중영합적 측면과 경제적 실정을 단단한 연결고리로 삼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공격했다”고 분석했다.

2012년 권력 재편기를 앞두고 다시 시작된 포퓰리즘 공세가 이번에도 효력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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