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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과 청와대의 고리, 대포폰



대포폰 건넨 청와대 직원은 ‘불법사찰 배후’ 의심받는 이영호 전 비서관의 부하…

청와대 관련 단서 잇따라도 검찰은 모르쇠
등록 2010-11-12 11:54 수정 2020-05-03 04:26

이쯤 되면 ‘막장 드라마’다.
소재는 ‘대포폰’이다. 대포폰은 노숙인 등 제3자의 명의를 도용해 개설한 휴대전화로, 주로 범죄에 이용된다. 이 대포폰을,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를 인멸하는데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포폰을 지급한 것은 행정부 수반인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직원이었다. 또 검찰은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런 사실을 조사했지만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과 상의한 뒤 이를 ‘내사사건’으로 분류해 사실상 손을 놓는 한편, 문제가 불거질 경우 ‘내사 중’이라는 알리바이를 내세우려 했다는 것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주장이다. 이로써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에 묻혀 사그라지던 불법사찰 사건의 ‘몸통’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논란의 중심엔 청와대가 있다.
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의혹이 지난 6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파장이 이렇게 번지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쥐코 동영상’(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 가운데 하나)을 갈무리했다는 이유로 민간인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불법사찰을 당했고, 지원관실의 압력으로 회사까지 다른 이에게 넘겨줘야 했던 것이다. 더구나 지원관실은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TK)출신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돼, 이들이 ‘왕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당시 국무차장(현 지식경제부 차관)의 사조직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817호 줌인 ‘박영준 사조직의 민간인 사찰 의혹’ 참조).

잊혀질 뻔한 불법사찰의 ‘몸통’ 논란

불법사찰 증거인멸과 대포폰 사용 관련 의혹

불법사찰 증거인멸과 대포폰 사용 관련 의혹

김종익씨는 하루 20여 명밖에 드나들지 않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둔 ‘쥐코 동영상’을 지원관실이 문제 삼고 있다는 사실을 2008년 9월17일 국민은행 후배에게 전해들었다. 원충연 지원관실 행정사무관이 자신을 찾아와 △김씨와 동향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현 강원도지사)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했는지 △이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 제작에 김씨가 경비를 댔는지 등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곧 블로그를 폐쇄하는 한편 회사 대표직을 내놓고 일본으로 떠났지만, 지원관실은 어느새 그의 연락처까지 파악했고 그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전자우편까지 들여다봤다. 얼마 뒤엔 회사를 불법 ‘압수수색’해 회계자료를 가져갔고, 직원들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김씨의 회사가 인력을 공급하는 국민은행을 통해 김씨의 회사 지분을 내놓으라는 압박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자신의 지분을 헐값에 넘겨줬다.

청와대 행정관 조사가 왜 그리 힘들었나

지원관실은 불법사찰을 통해 얻은 자료를 서울 동작경찰서로 넘겨 수사 지시를 내렸다. 회삿돈을 횡령해 정부 비판 활동에 사용하고, 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누명’을 씌운 것이다. 경찰은 석 달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혐의를 발견하지 못해 내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갑자기 담당 수사관이 교체됐고 재수사가 벌어졌다. 경찰은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3월 김씨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6개월 뒤 검찰은 “혐의는 인정되나 초범이라 정상을 참작한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해 김씨는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냈고, 수사기록 일체를 받아봤다. 자신이 불법사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김씨는 그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11월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에 올린 내사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11월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에 올린 내사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이런 초법적 행위를 저지른 지원관실은 2008년 7월 조직이 꾸려진 직후부터 정권 실세인 박영준 차관과 관련이 있다는 뒷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선 현재 불법사찰 혐의(강요죄 등)로 구속된 이인규 전 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진경락 전 총괄지원과장 등이 모두 포항·경북 출신으로 박 차장과 가깝다.

박 차관의 핵심 측근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지원관실이 밀접한 관계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이번에 증거인멸에 사용된 대포폰을 지원관실 장아무개 주무관(불구속 기소)에게 건넨 이는, 이 전 비서관과 함께 일한 최아무개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지원관실 파견 직원을 직접 면접해 선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지원관실이 발족한 뒤 한승수 당시 총리에게 신고식을 하는 자리엔 아예 지원관실 직원들과 함께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원관실이 별도로 작성한 동향보고서·정보보고서를 비선으로 보고받았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검찰은 지원관실과 청와대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여러 단서도 발견했다. ‘BH(청와대) 지시사항’이라는 수첩 메모를 찾아냈고, ‘BH 하명’이라고 적힌 사건대장, 청와대에 보내는 내사보고서 등도 확보했다.

지난 7월5일 총리실로부터 불법사찰과 관련한 수사의뢰를 받고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부장검사)을 꾸린 검찰에 ‘몸통’을 둘러싼 물음표에 답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지원관실 압수수색은 수사팀을 구성한 사흘 뒤인 7월8일에야 이뤄졌다. 수사가 시작되면 지원관실이 ‘털릴’ 것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흘은 사건 관련자들이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없애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아무개 주무관 등은 7월5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지원관실 하드디스크에 담긴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다시 전문업체에 맡겨 자료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파기했다. 검찰이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11월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압수수색이 늦은 관계로 증거인멸된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수사는 부실하다는 비판을 사고도 남았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불법사찰 혐의와 관련해 단 한 차례, 그것도 겨우 6시간만 조사하고 돌려보냈다. ‘윗선’ 개입 여부를 물었다지만, 드러난 건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대포폰과 관련해선 아예 조사도 벌이지 않았다. 이 전 비서관은 현재 해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출국금지 조처를 내리지 않았다. 대포폰을 지원관실에 건넨 최아무개 행정관에겐 소환 조사 대신 ‘출장 조사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최 행정관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이석현 의원은 11월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최 행정관 조사를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반대했으나 수사팀이 강력히 주장해 조사하게 됐다는데 사실인가. 최 행정관의 컴퓨터 로그인 기록을 처음에는 검찰이 조사하려고 청와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그 뒤 청와대로부터 ‘스스로 확인해보니 이렇다 할 내용이 없더라’는 통보만 받고 컴퓨터 조사를 포기했다는데 맞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최 행정관을 보호하려는 누군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지원관실과 청와대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여러 단서도 발견했다. ‘BH(청와대) 지시사항’이라는 글이 적힌 원충연 지원관실 사무관의 수첩 메모를 찾아냈고, ‘BH 하명’이라고 적힌 사건대장, 청와대에 보내는 내사보고서 등도 확보했다. 지난 10월14일 재판에선 이인규 전 지원관이 “2~3주에 한 번씩 청와대에 정기 업무보고를 하러 갔다. 청와대 하명 사건도 있었고, 그 경우 보고서를 밀봉해 청와대에 보고한다”고 진술했다. 김종익씨 사찰 건도 이강덕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팀장(현 경기경찰청장)에게 구두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손학규 “본질은 청와대의 사찰 주도·은폐”
이 의원은 11월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이 장아무개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전달한 사실을 폭로했다. 대포폰 사건을 은폐한 의혹을 받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10월7일 국정감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 의원은 11월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이 장아무개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전달한 사실을 폭로했다. 대포폰 사건을 은폐한 의혹을 받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10월7일 국정감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하지만 검찰은 이런 단서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지시 내용이 없다” “법적으로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윗선’ 수사를 포기하고, 이인규 전 지원관 등 지원관실 직원 7명만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대포폰 지급·사용이 국회에서 밝혀진 뒤에도 여전히 재수사는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이 수사 중이고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청와대가 끼어들어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김희정 대변인)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검찰은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청와대는 공을 검찰에 떠넘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태도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검찰 재수사와 특검 추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사 출신인 주성영 의원은 성명을 내어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재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에서도 검찰 재수사와 특검 추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사 출신인 주성영 의원은 지난 11월4일 성명을 내어 “국민과 야당은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재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했다. ‘정치인 사찰 피해자 3인방’인 남경필·정두언·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특검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봐주기 수사’를 한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다.

야당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특검 도입과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1월5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문제의 본질은 청와대가 직접 민간인 사찰을 주도하고 은폐하려 한 사실”이라며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민주당은 11월 중순께 야당 원내대표 회동을 제의해 특검과 국정조사 추진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한편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11월5일 김황식 총리에게 “대통령에게 민정수석 해임을 건의하고 법무부장관에게 서울중앙지검장 경질을 요청하라”고 압박했다. 물론 김 총리는 “해임 건의나 경질 요구를 할 만한 확실한 근거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정치권의 이런 요구가 검찰의 재수사 의지에 불을 댕길 수 있을까. 특검이 실시된다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보다 더 궁금한 건 이것이다. 의혹의 ‘몸통’은 지금 검찰을 칭찬하고 있을까, 비웃고 있을까, 아니면 불안에 떨고 있을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 인터뷰
“차명폰은 코미디 같은 변명이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불법사찰 사건의 재수사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홍 최고위원은 11월5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검사가 수사한 게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다시 하는 수사는 과거에도 있었다.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전제 아래 이뤄지는 수사이므로 특검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에 좋다”고 말했다. 그는 11월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사찰 사건의 수사 양태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BH(청와대) 지시사항’이라는 메모가 이미 나왔고, 대포폰이 지급됐다는 사실이 나왔음에도 검찰이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홍 최고위원은 “김대중 정부 때도 감찰 재수사를 해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전직 검찰총장을 기소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거론한 것은 2002년 ‘이용호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다. ‘이용호 게이트’ 재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를 꾸려 조사·수사를 벌였고, 피의자에게 수사 정보를 누설한 혐의(직권 남용) 등으로 신승남 전 검찰총장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 땐 신광옥 전 민정수석이 진승현씨에게 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으로 구속됐다.
하지만 홍 최고위원은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과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에는 “실효성이 없다”며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그의 말은 이렇다. “과거 수차례 특검을 했지만 성공한 적이 있나? 특검이야 밖에서 들어오지만, 그 밑의 수사관은 모두 검찰에서 파견된다.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다. 국정조사는 정치 공방에 그칠 뿐이다.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
한편, 그는 “대포폰이 아니라 차명폰”이라는 청와대와 검찰의 ‘해명’에 일침을 놓았다. “‘차명폰’은 코미디 같은 변명이다. 정상적인 일을 하면서 왜 차명폰을 쓰느냐”는 것이다. 이어 “‘공정한 사회’라면 사법 절차의 공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차명폰은 자기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 사용한 것으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검찰은 하루빨리 재수사를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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