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갈무리해 올린 인력공급회사 ㅋ사의 전 대표 김아무개(56)씨가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을 받은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무총리실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이 충격적인 사건은 국무총리실의 ‘박영준 라인’이 주도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권 실세인 박영준 국무차장의 ‘사조직’이라는 의혹도 나온다.
구성부터 활동까지, 박영준 중심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씨를 사찰한 뒤 2008년 11월17일 서울 동작경찰서에 수사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제보자료 이첩’ 공문은 국무총리실장 명의로 돼 있으나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전결로 작성됐다. 원충연 행정사무관이 기안한 이 공문은 김충곤 팀장의 중간 결재를 거쳤다. 이 공문은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는 아래 사람(김씨)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니 적의(적절하게) 처리 후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과 김충곤 팀장, 원충연 사무관은 모두 박영준 국무차장의 인맥으로 꼽힌다. 노동부 감사관 출신인 이 지원관은 경북 영덕 출신이지만, 초·중·고교를 포항에서 나와 박 차장과 가깝다. 포항 출신인 진경락 서기관(현재 공직윤리지원관실 총괄지원과장)과 함께 총리실로 파견됐는데, 노동부 안에선 “정권이 바뀌니 TK(대구·경북) 출신이라 역시 잘나간다”는 말이 무성했다고 한다. 원 사무관은 이들과 같은 노동부 출신으로, 대구 남부지방노동사무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원래 총리실의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발탁된 김 팀장 또한 포항 출신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1국1과7팀으로 모두 40명이 근무한다. 한 해 10억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지만,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4급 이상 공무원 9명, 5급 이하 31명이 근무한다는 사실 말고는 인적 구성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대부분 박영준 국무차장이 ‘심어놓은’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해 10월22일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신건 민주당 의원(당시 무소속)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파견 나온 직원들을 뽑을 때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직접 면접을 해서 뽑은 것으로 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영호 비서관은 포항 출신으로, 박영준 차장이 주도한 이명박 대통령 대선 지원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박 차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그런 이 비서관이 2008년 7월 설치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인선을 맡았다는 것은 당시 ‘야인’으로 지내던 박 차장을 대리해 그의 뜻대로 조직을 꾸렸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김씨에 대한 불법 사찰을 통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인적 구성이 일부 드러나면서 이 조직 자체가 아예 ‘박영준 사조직’이라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사조직처럼 운영된 의혹은 더 있다. 국정원 출신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이아무개씨는 2008년 9월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씨 역시 박 차장 인맥이다. 이씨는 박 차장과 갈등 관계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뒷조사를 한 것이 정 의원 쪽에 알려져 청와대 근무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씨의 새 일자리가 하필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마련됐다는 건 든든한 ‘뒷배경’이 없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별도로 각종 동향보고서를 작성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정부 각 조직에 별도의 정보 라인을 가동해, 이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 차장의 지시로 동향보고서·정보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영호 비서관을 통할 때도 있고, 필요할 땐 박 차장이 이 대통령한테 직보할 때도 있었다”며 “이 때문에 권재진 민정수석과 박 차장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대통령이 직보를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권 수석이 지난해 9월 취임한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 체계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직제상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무총리실 소속이긴 하지만, 총리실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직속 책임자인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에게도 업무 관련 내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다. 김씨 사찰 문제만 해도, 권 실장은 내사가 진행된 지 1년9개월이 지난 6월21일 국회 정무위 회의 직전에야 알았다. 이날 회의에서 의원들로부터 김씨 사찰에 대한 추궁을 받자 권 실장은 회의 시간 내내 “보고는 받았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운찬 총리도 못 건드린다. 같은 총리실 조직이지만 거기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랑은 다른 조직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지휘·보고 계통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제동을 걸려고 했다는 말도 나온다. 여권에선 “올해 초 정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박영준 차장을 용퇴시키겠다고 건의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실질적인 관리자가 박 차장이며, 박 차장 개인을 위한 조직이라는 강한 의심이 없이는 이런 소문 자체가 돌기 어렵다.
백보 양보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권 실세와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김씨 사찰 과정에서 보인 행태는 ‘권력 그 이상’이다. 우선 민간인 사찰 자체가 명백한 불법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임무와 기능은 대통령령인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직제’ 제13조 2항에 규정돼 있다. 규정은 △공직자 사기 진작 및 지원 △공직자 고충처리 지원 △우수 공무원 발굴 △공직사회 기강 확립 △부조리 취약 분야 점검 및 제도 개선 △그 밖에 공직윤리 지원과 관련한 국무총리 지시사항 처리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임무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직윤리점검반 편성·운영을 규정한 국무총리 훈령인 ‘공직윤리업무규정’ 제9조 2항도 업무 수행 범위를 ‘공무원’과 관련된 일로 못박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활동과 관련한 그 어떤 규정에도, 이들이 민간인을 조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직권남용죄 해당하는 민간인 사찰
나아가 이들의 행위는 직권남용죄에 해당될 수 있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런 법규정을 무시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허위사실 유포 등 관련 진행상황 보고’ 문건을 보면, “△2008년 9월10일 첩보 입수 후 내사 시작 △9월16일 (김씨가 거래하는) ㄱ은행 노무팀장 면담 △9월19일 ㄱ은행 인사부행장 면담, 부행장은 김씨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 함”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그간 저지른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통신, 정보통신망이용법의 명예훼손 조항 등을 적용해 김씨를 직접 소환 조사하겠다는 계획까지 적혀 있다.
ㅋ사는 2005년 3월 ㄱ은행 행우회가 100% 출자해 만든 회사로, 어음 교환이나 금융상품 판매 등 ㄱ은행의 아웃소싱 업무에 인력을 공급한다. ㄱ은행이 ‘갑’이고 ㅋ사가 ’을’이기 때문에, ㄱ은행을 압박하면 ㅋ사는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를 악용해 ㄱ은행 고위 인사를 만나 김씨를 “조치”하도록 종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서둘러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일본으로 떠났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 주변을 더욱 압박했다. 김씨가 가진 회사 지분(전체 지분의 75%)을 모두 내놓게 하라고 회사 관계자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결국 김씨는 2008년 12월4일 자신의 지분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불법적인 회사 압수수색까지역시 총리실이 작성한 ’허위사실 유포건 처리결과 보고’ 공문은 더욱 충격적이다. “9월29일 ㅋ사로부터 회계 관련 자료와 디스켓 등 자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김씨가 회사 공금 유용하였을 가능성 추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또 ‘향후 조치’로 “11월 중 김씨를 명예훼손, 횡령(공금 유용)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의뢰. 혐의 사실을 엄밀히 추적 의법 조치”하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ㅋ사가 회계 자료를 넘겨준 게 자발적인 ‘자진 제출’이 아니라,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압수수색’을 당한 것으로 나온다. 수사기관도 압수수색을 벌이려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그런데 수사권도 없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ㅋ사의 회계 자료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게다가 회사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초법적인 활동으로 얻은 자료를 근거로 횡령 혐의까지 추가해 김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총리실에서 넘겨받은 ㅋ사 회계 자료 등을 바탕으로 서울 동작경찰서는 2008년 11월 중순 내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법인카드 사용 내역과 같은 회계 자료를 검토하고, 회사 관계자는 물론 김씨까지 두 차례 조사한 결과 동작경찰서 담당 경위가 내린 결론은 “(총리실이 제기한 명예훼손과 공금 횡령 혐의는) 혐의 없음이 명백하므로 내사 종결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경위는 내사결과보고서에서 “피내사자(김씨)는 국무총리실의 내사 및 ㄱ은행과 ㄴ사(김씨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뒤 ㅋ사가 바꾼 이름)의 특수한 관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직원 700여 명에게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해 ㄱ은행 측의 요구에 따라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지분까지도 이전하여 개인으로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고 썼다. 하지만 이 의견은 내부 결재 과정에서 무시되고, 수사과장 전결로 보완수사 지시를 받게 된다. 담당 수사관도 교체돼 재수사가 벌어진다. 이런 과정은 ’윗선’의 개입이 있었으리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실제로 김씨는 경찰 재조사 과정에서 동작경찰서 간부에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검찰에 넘겨야 하니 양해해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경찰은 2009년 3월6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입건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검찰은 9월24일 김씨를 소환 조사한 데 이어 10월19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는 12월23일 “기소유예 처분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냈다.
김씨의 법정 대리인인 최강욱 변호사는 “총리실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명백한 직권남용죄에 해당되며,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직권남용 사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김씨에게만 기소유예(범죄 혐의는 인정되나 여러 정황을 고려해 검사가 ‘용서’해주는 제도)를 한 검사의 행위도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과연 피해자는 한 명뿐일까?지난해 10월22일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신건 의원은 이렇게 질타했다. “민주국가에서 이런 행위를 방치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공무원 책상을 다 뒤지는데, 앞으로 국민들 책상 다 뒤지지 말라는 법이 어디가 있어요? 공무원들 뒤지는데, 힘없는 국민들 못 뒤지는 법이 어디 있어요?” 신 의원이 말한 ‘이런 행위’는 2008년 12월 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감찰반원 10여 명이 한밤중에 외교통상부 4개 부서의 책장과 책상 서랍을 뒤져 30분 만에 양주 101병을 찾아낸 일이다. 신 의원이 한 우려의 핵심은 이들이 공무원들의 책장과 책상 서랍을 무단으로 뒤진 데 있었다.
우려는 1년이 채 안 돼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직제상 최종 책임자인 권태신 실장은 내용 파악도 못하고 있고, 실무 책임자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도, 정확한 임무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피해자는 김씨 한 명뿐일까? 권력 남용과 사유화의 그늘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 김씨 혼자뿐일까?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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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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