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서울 서대문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 모인 장애아를 둔 엄마 박문희, 김현희, 김현숙씨(왼쪽부터). 이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였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3명의 집단 대면 인터뷰와 3명의 전화 인터뷰로 장애아를 둔 엄마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론을 모르지 않았다. ‘금지보다는 자발적 통제를.’ ‘금지보다는 바람직한 충족을.’ ‘금지보다는 그들의 판단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인 집을 찾아올 줄 모르는 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소변을 가리기 힘든 아이, 엄마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 몇 마디로 하루를 살아가는 아이. 그 ‘아이’가 언제부턴가 성기를 만지면서 놀기 시작하고, 잘생긴 남자를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며 스킨십을 하고, 몽정을 하고, 달거리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이의 성장에 기뻐해야 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성욕은 의식주의 욕구와 분명히 달랐다. 가족들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형제가 손을 놓았다. 아빠도 힘겨워했다. 아빠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푸념에 담았다. 올곧하게 버티는 건 어느 집이든 엄마뿐이었다. 그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엄마의 힘겨움을 아이가 알아차릴까 전전긍긍하고, 엄마를 이해해달라고 아이에게‘만’ 털어놓기도 한다. 인터뷰 가운데 “이론보다 현실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잦았지만, 요구하는 도움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사회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체념이 짙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 했다. 그 고민들이 모여서 질문과 답을 이뤘다.
“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 교사나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성적 표현(스킨십 등)을 합니다.”
김현숙(46)씨는 지적장애 1급인 열다섯 살 딸을 키우고 있다. “뽀뽀를 끊었어요.”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이전에 생활습관을 고쳐보려는 노력에서였다. 부모가 어려서부터 칭찬이나 애정의 표시로 뽀뽀를 하고 안아주다 보니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대상과 관계없이 감사나 고마움, 친밀함의 표시로 과도하게 스킨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새로 온 체육선생님의 성기를 갑작스럽게 만지는 일이 생겼다. 오빠의 친구한테도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을 알게 되면서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당장 그 행동을 자제시키고 의미를 알려주려고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행동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반복적으로 대화한다. 지금으로서는 그 길밖에 없다는 게 답답하다.
그나마 김씨의 딸은 여자아이여서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 같은 지적장애 1급인 남자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비슷한 경험을 한 뒤 학교를 옮겼다. 남자아이가 성기를 여교사에게 문지른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사람을 교사로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가 성추행범으로 몰리느냐, 자기 욕망을 조절하면서 상대방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게 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요. 억울하지만 현실이에요.”
그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상처는 깊었다. 엄마는 “장애인의 성보다 장애 자체에 대한 이해가 더 먼저”라고 말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자위를 시작했습니다. 횟수도, 뒷처리도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박문희(54)씨는 지적장애 1급인 남자아이(19)를 두고 있다. 엄마의 청바지에 집착을 한다. 느낌이나 감촉을 좋아해서 엄마의 청바지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자위를 하는 것을 가족은 이해할 수 있는데, 친척집에 갔을 때 외사촌의 청바지를 만지는 것을 보면서는 남이었을 때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씨는 아들과 쉼없이 대화를 한다. 아들과 자위에 대해 얘기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반복적으로 들려준다. 아들은 자신의 습관을 단박에 고치지는 않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피해를 주지는 않고 있다. 박씨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오순선(45)씨의 아들은 열여덟 살이다. 자위를 하지만 자발적인 통제가 어렵다. 아들은 자폐 장애를 지녔다. 자위를 하는 걸 보고 처음엔 놀라 금지하기도 했다. 오씨는 현재 복지기관에서 장애아를 둔 가족을 상담하는 역할을 할 정도로 이론적으로는 많이 아는 편이다. 현실은 쉽지 않다. “자폐를 가진 아이들은 대개 야단을 쳐도 숨어서라도 꼭 하거든요. 그 시간에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제지를 해도 부끄러움을 잘 몰라서 의식을 치르듯 하죠. 다만 지금은 욕구를 줄이려고 운동을 하게 하면서 횟수를 줄이기는 했어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는 자폐의 특성상 아들이 혹시나 성교육도 자기만의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으로서는 운동을 하게 하면서 순간순간 제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자연스럽게 해소시키는 게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씨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비장애인 아이들은 그냥 하는 것을 우리 아이들만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유난히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은연중에 우리 아이들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고요. 그게 더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렵네요.”
“성기를 드러내는 등 자꾸 노출을 하려고 합니다. 타이르지만 그때뿐입니다.”
배선이(55)씨는 손자를 키운다. 자폐아인 손자는 열다섯 살에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성기를 드러내놓고 거실에 누워있거나, 성기를 잡고 장난을 치는 등의 행동을 한다. “성적 표현을 확실하게는 못하지만 가족이 보는 앞에서 자위를 하려고 할 때가 있죠. 그럴 때면 노래를 불러준다든지 간질이죠.” 손자에게 행동의 제약을 가하면 땅을 치거나 고함을 치면서 과격하게 변하기도 한다. 특별히 대책은 없다. “일단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데, 막막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모두 가진 한 남자아이의 엄마는 노출하는 행동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가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다. “변태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오해를 살까봐 그게 걱정이죠. 우리 아이는 선생님을 잘 만나서 선생님이 타이르고는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는 않네요.”
“장애가 있는 딸이 생리를 시작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이나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엄마들은 성교육 무용론을 말하기도 했다. 특히 딸을 가진 부모는 더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겠지만, 성교육이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엄마들은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천차만별인 점도 꼬집었다. “어떤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관념에 차이가 많이 난다. 비장애아만 성교육을 하는 학교도 있다.” 일제히 목소리를 모은 것은 성교육 뒤의 일이다. 성교육만 하고 실제로 성생활을 누렸을 때 뒤따르는 임신·육아 등의 문제에는 전혀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김운자(45)씨는 “나는 다른 부모들과 좀 다르다”는 말로 운을 뗀다. 지적·지체 장애 등 중복 장애가 있는 열다섯 살 딸은 현재 생후 10개월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 김씨는 딸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결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 손님이 오면 그리로 기어 가거나 무릎을 베려 하는 모습을 보면 딸도 여성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성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부족한데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성폭력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장애를 가진 여자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죠. 아이의 자립을 생각하면 좀더 자유롭게 행동하게 하고 그 의미를 차분하게 얘기해줘야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안전을 더 생각하게 돼요.”
지적장애 1급인 딸을 키우는 한 엄마는 아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고민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성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성교육도 해봤어요. 아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성생활과 양육의 기쁨도 누려야겠지만, 우리 딸의 미래에 엄마인 나 혼자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이라면 성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엄마는 본인이 딸의 인생 전부를 책임질 수 없을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딸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더 잘 안다. 극단적인 생각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수술은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1년에 20회 정도 방과후 활동으로 성교육을 시킨 박문희씨는 장애아를 키우는 주변 엄마들 가운데 상황이 나은 편이다. 박씨는 아들이 원한다면 가정을 이뤄주고 싶은 바람도 있다. 아들은 중학교 동창이던 친구를 사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 아들이 얼마 전 “(돌보기 힘들 테니)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이가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회적환경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뤄질 거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는 것은 현실 여건상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적장애 2급인 딸을 둔 김현희(46)씨는 “우리 아이들이 만든 가정을 다시 우리가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는 생각을 하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도움말: 사단법인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 김명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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