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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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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코리아’를 막는 법

외국 투자자에게 무수히 받았던 질문 “전쟁 안 일어나냐”…
정부는 천안함 사태 ‘출구’ 통해 정세 관리 능력 보여줘야
등록 2010-06-04 21:36 수정 2020-05-03 04:26
5월20일 정부의 천안함 사고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대북 강경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5월24일 중동부 전선을 지키는 백두산부대 일반전초(GOP)장병들이 대북 심리전 방송에 쓰일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 이상학 기자

5월20일 정부의 천안함 사고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대북 강경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5월24일 중동부 전선을 지키는 백두산부대 일반전초(GOP)장병들이 대북 심리전 방송에 쓰일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 이상학 기자

과유불급. 무모한 북풍이 결국 용의 비늘(역린)을 건드렸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 말이다. 1994년 6월의 추억이다. 당시에도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하루 종일 ‘전쟁 일어나냐’는 질문을 받았다. 비슷하지 않은가. ‘만들어진 공포’였다. 그때도 대통령이 전쟁 불사를 외치고,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서 전쟁 시나리오를 내보내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비난했다. 며칠 사이에 ‘불감’은 ‘공포’로 변했다. 사재기가 등장한 것도 그때다. 물론 결정적 차이도 있다. 당시에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그의 방북으로 국면은 전환되었다. 당시 전쟁 위기 국면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은? 카터가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오히려 대북 강경정책에 편승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는 1994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경제는 개방되었고, 그만큼 대외변수에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분단국가 한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경제 외적인 변수, 즉 안보 문제를 포함한 대외변수를 우리는 ‘지정학적 리스크’라고 부른다.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현실을 반영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표현도 쓴다. 금융시장이 개방돼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중요하다. 군사안보만큼 경제안보가 중요해졌고, 우리는 그것을 ‘포괄적 안보’라고 부른다.

이명박 정부가 강경한 대북 조처를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했다. 예상은 했지만, 수준 이하였다. 안보 무능과 경제 무능이 겹쳐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가져왔던 김영삼 정부를 보는 듯하다. 유럽발 경제위기의 그늘이 여전히 드리워진 불안정한 국면 아닌가. 이럴 때 안보 리스크가 높아지면,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맹목적 이념이 부른 참사다. 놀랐을 것이다. 정부는 안정을 강조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우리 경제가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랬다. 최소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말이다. 서해 사태가 일어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쏴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며칠 가지 않았다. 왜 그런지 아는가?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정세관리 능력을 신뢰했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다. 필자는 김대중 정부 초기 몇 번 청와대로부터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IMF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외국자본 유치가 중요했다. 외국계 대형 펀드 관계자들도 남북관계 전문가를 만나고 싶어했다. 필자가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첫 번째 질문은 ‘전쟁 안 일어나냐’였다. 김대중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설명해주면 그들은 안심했다.

지금은 정반대 아닌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천안함 사태 이후의 출구다. 한국 정부의 정세관리 능력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세가 안정될 것이라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한국 정부는 위기를 관리하는 대신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이 전쟁 불사를 외치고, 보수 신문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김영삼 정부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왜 예방하지 못했는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도발을 했는데, 한국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오히려 되묻고 싶다. 왜 예방하지 못했느냐고.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 외교다. 노무현 정부 때는 서해 사태가 없었다. 1999년, 2002년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을 겪으면서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했고, 결국 2007년 정상회담에서 서해 평화정착 방안에 합의했다. 다시 서해가 긴장의 바다, 냉전의 바다로 돌변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다. 3차 서해교전이 일어났고, 그 연장선에서 천안함 사고가 터졌다. 이명박 정부가 2007년 10·4 합의를 승계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고민이 있었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긴장이 조성되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별로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안보 불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것이 핵심이다.

물론 금융시장의 불안, 지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은 정부 하기에 달렸다. 한반도 정세의 출구를 찾고 긴장을 완화하면 ‘안보 리스크’는 해소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법도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 코리아’는 계속될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이야 내성이 있다. 이보다 어려운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외국인들은 다르다. 불안하면 파는 것이다. 불안정한 장세에서 연기금을 풀어 방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되면, 그것은 곧 연기금의 부실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재정 부담으로 작용한다. 안보 무능이 불러온 경제 재앙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가 발표한 대북 관련 조처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제주 해협에 북한 선박이 못 다니게 막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북한의 화물선 아닌가. 못 가게 막으면 돌아갈 것이다. 교역이나 위탁가공 중단은 북한에 주는 고통이 별로 없고, 우리 중소기업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국민, 보수적이지만 불안 원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정부는 주적 개념을 부활한다고 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다는 뜻이다. 1994년 전쟁 위기를 겪고, 1995년 처음으로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을 넣었던 상황과 똑같다. 주적 개념을 빼서 안보의식이 해이해졌다고? 그럼 우리가 1988년부터 국방백서를 발간했는데, 1995년 이전은 무언가.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북 심리전 방송이다. 북한은 이미 방송을 시작하면 확성기에 격파 사격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리도 대응사격을 하겠다고 말했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조처가 실행되면 국지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세 예측 때문이다. 환율 방어나 주식시장에서의 기관 매수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정부가 선거에서 북풍을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북한 문제’에 대한 의식을 잘못 판단했다. 국민 다수가 북한에 대해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너무 과했다.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이 올라가는데, 좋아할 국민은 없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임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 정세 관리에 실패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해법은 있다. 성찰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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