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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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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경영의 부활, 삼성은 어디로 가나

퇴임 2년 만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
‘예스맨’ 가신에 둘러싸여 오너 경영의 한계 보여준 도요타와 다른 길 걸을까
등록 2010-03-31 15:45 수정 2020-05-03 04:26

‘다이세이 호칸’.
1867년 일본 에도막부가 일왕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을 말한다. 막부에 반대한 지방 세력들이 일왕을 옹립하며 막부를 압박했다. 결국 막부는 일왕에게 통치권 반환을 신청했다. 그 다음날 일왕은 이를 허가했다. 675년 동안 계속되던 일본의 봉건제도는 끝을 맺고 일왕을 중심으로 왕정이 복고된다. 일본은 다이세이 호칸을 계기로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지만, 군국주의 세력에 둘러싸인 일왕은 2차 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황제의 귀환’.
2010년 3월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드라마가 연출된다. 도요타자동차 사태를 보고 위기감을 느낀 삼성의 사장단들이 이건희 회장의 경륜과 경험이 절실하다며 이 회장의 복귀를 요청하는 건의문을 만들었다. 사장단은 지난 2월24일 회의를 마치고 회장 복귀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월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소비자가전전시회(CES)를 찾아 전시장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이건희 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삼성 회장이 1월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소비자가전전시회(CES)를 찾아 전시장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이건희 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삼성전자 제공

1973년 이병철 복귀 드라마 ‘데자뷔’

이건희 회장은 이같은 요청을 받고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라며 회장직 복귀를 수락했다.

이건희 회장이 돌아왔다.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관심은 두 가지다. 먼저 ‘삼성 왕국’의 권력 구도는 어떻게 되느냐다. 또 하나는 위기를 오너십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느냐다. 대다수 언론은 승계 구도에는 별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오너십으로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다른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이번 이 회장의 복귀는 ‘친위 쿠데타’ 성격이 짙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비치기도 한다. 삼성 ‘내부적’으로 권력 암투가 치열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은 이 회장의 복귀에 대해 ‘외부적’으로 위기론을 들고 나왔지만, 도요타 사례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삼성에 훈수를 던지기보다 관찰자적 시점으로 이번 ‘황제 귀환’의 의미와 전망을 조명해본다.

퇴진에서 복귀까지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퇴진에서 복귀까지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973년 여름 어느 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자신의 첫째아들인 이맹희 삼성 회장을 불렀다. 당시 이병철 전 회장은 1966년 9월 이른바 ‘한국비료 밀수 사건’(한비 사건)이 터지면서 삼성 회장 자리를 내놓고 칩거 생활 중이었다. 한비 사건이란, 삼성이 연산 33만t 규모의 비료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요소비료 공정에 쓰이는 OTSA(사카린 원료)를 밀수입해 시중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공장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전격 발표하고 삼성그룹 회장 자리도 내놓고 은퇴했다.

이맹희 회장을 부른 이병철 전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니 지금 직함을 몇 개나 가지고 있노? 니가 다 할 수 있나?” 이맹희 회장이 “다 잘할 수 없심더”라고 했더니, 이병철 전 회장이 “그라모 할 수 있는 것만 해라”고 말을 잘랐다.

며칠 뒤, 이병철 회장이 “내가 한번 보게, 직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종이에 써 와봐라”고 했다. 이맹희 회장은 삼성전자·중앙일보·삼성물산·제일제당·신세계·동방생명·안국화재·제일모직·성균관대·삼성문화재단 등에서 부사장·전무·상무·이사 등 17개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병철 전 회장은 직책을 가리키며 “이건 하기 힘들제?” “이건 너 할 수 없제?”라며 이미 예정을 한 듯 연필로 직책에 줄을 죽죽 그었다. 대부분 그렇게 줄을 긋고 이맹희 회장에겐 삼성물산·삼성전자·제일제당 부사장 직책 3개만을 남겨두었다. 그 뒤 이병철 전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한다. 하지만 회장직에서 물러난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적으로 변했다. 헤어짐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갈라서게 됐다.

이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이병철 전 회장은 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맹희 전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상의 권력이 갖는 속성은 얼음장처럼 차디차다는 것이다. 냉혹하다. 누구든 정상의 위치, 거대한 조직을 끌고 갈 책임을 지면 냉혹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절대 권력의 속성상 그 정상의 위치에는 단 한 사람밖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맹희 지음·청산 펴냄·1993)

이병철 회장의 둘째아들인 이창희 전 새한 사장도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병철 회장의 비위 사실을 청와대에 고발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그 사건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셋째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대권 승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장자상속 원칙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3남이 대그룹을 물려받은 것은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젊은 아들 이건희에게 “네 성격엔 기업이 맞지 않은 것 같으니 매스컴은 어떠냐”라고 제안했고, 이건희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첫 직장은 동양방송이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를 발표한 3월24일 서울 서초동 삼성빌딩에서 임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를 발표한 3월24일 서울 서초동 삼성빌딩에서 임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딸들 손만 잡은 이건희, “이재용에 경고”

삼성의 후계자 승계 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이건희 회장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자신에게 삼성을 물려줄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삼성의 경영권이 넘어갈지에 관한 마음고생이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첫째·둘째 아들과 사이가 벌어진 뒤, ‘이건희 승계론’은 탄력을 받는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 총수로 등극한 건, 1976년 9월 중순 이병철 회장이 암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 가족회의 자리에서다. 경기 용인에 있는 회장 사옥에서 이병철 회장은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월12일 ‘호암 이병철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념식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자못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서 그는 경영 복귀 시점에 관한 질문에 “회사가 약해지면 (경영 복귀를) 해야죠. 도와줘야죠”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미국에서 귀국하던 당시 “생각 중이에요”라던 답변에서 좀더 적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 이건희 회장은 전격 복귀한다. 은퇴한 이병철 전 회장이 다시 삼성 회장으로 복귀하는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언론들은 애써 외면하지만 이 회장의 복귀에 가장 타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이재용 부사장이다. 후계 구도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년 전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OO)를 맡고 있다가 이건희 회장과 함께 물러난 이재용 부사장은 이후 해외를 주로 돌며 ‘경영수업’을 해왔다. 지난해 말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이재용 체제’가 완성돼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공식 트위터(@samsungin)에서 복귀 소감을 피력하자, “회장님 안 계셔서 (삼성이) 문제면 이재용님이 무능하단 얘기냐”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는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삼성 내부의 권력관계 변화를 암시하는 장면이 몇차례 연출됐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자녀들의 경영 역량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아직 배워야 한다. 아직 어린애”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을 이끌기 위해서는 경영수업이 좀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경영 복귀 관련 이건희 회장 발언

경영 복귀 관련 이건희 회장 발언

CES에서 이건희 회장은 두 딸인 이부진 신라호텔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재용 부사장은 그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당시 그 장면은 A(삼성 사람들이 이건희 회장을 부르는 호칭)가 JY(이재용 부사장 호칭)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JY에게 일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권력은 최고 권력자와 떨어진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삼성에서 이건희 회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이학수 부회장의 막강 파워를 설명하는 은유였다. “이학수 부회장 방은 28층에 있다. 회장실 옆이다. 27층에는 재무·인사 담당팀이 있고. (홍보팀이 있는) 26층은 지원부서로, 그냥 심부름하는 곳이다. 27층과 격이 다르다.”

삼성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건희 회장은 최근 그룹 재무상 주요 사항을 이재용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이부진 전무가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이 회장이 이부진 전무를 신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부진 전무는 “왜 자신에게 일을 맡기지 않느냐”고 이건희 회장에게 어필해왔다고 한다. 이 전무가 업무도 야무지게 잘하며, 특히 이병철 선대회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게 삼성 사람들 얘기다.

이학수 등 가신 그룹의 친위 쿠데타?

김진방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장(인하대 교수)은 “이건희 회장의 복귀가 이재용 부사장으로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흔쾌히 권력을 물려준 일은 없다. 승계를 미루기 위한 복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복귀는 이 회장을 둘러싼 가신 그룹의 ‘친위 쿠데타’라는 시각도 있다.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을 중심으로 한 과거 권력의 공식적인 복귀이자, 이재용 부사장 중심의 미래 권력의 후퇴로 보는 시각이다. 이 회장의 ‘아바타’ 격인 이학수 고문을 비롯한 옛 가신 세력과 이재용 부사장 세력 간의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사안을 보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 회장의 복귀로 이재용 부사장의 총수 등극은 상당 기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이학수 고문 등 주변 가신도 자신의 권력을 넘기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회장과 가신들이 2세들의 경영권 다툼을 조정하면서 자기 권력을 유지해가는 불안한 과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경영권 승계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이건희 회장이 외아들이라는 이유로 쉽게 이재용 부사장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 회장이 삼성의 차기 경영권을 두고 자녀들끼리 경쟁하는 구도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셋째아들인 이 회장이 두 형을 제치고 삼성을 물려받은 것처럼 자녀들도 경영 능력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로 ‘그룹 회장-가신 세력’과 ‘아들 세력’ 간의 갈등을 빚어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왕(정주영) 회장은 가신 그룹에 둘러싸여 있었다. 정몽구 회장은 아들이었지만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독대하기조차 힘들었다. 정몽구 회장은 가신 그룹에 이를 갈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를 물려받자마자 가신 그룹을 쳐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대차 인사는 “정몽구 회장이 왕 회장의 가신 그룹 중 한 사람인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같은 피붙이라도 아버지와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사람을 막 대하기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도요타가 겪고 있는 위기가 경영 복귀를 앞당겼다고 말했다. 글로벌 톱 기업의 위기를 보면서 이 회장과 그룹 간부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복귀 명분으로 강력한 오너십을 통한 위기 극복을 들었다. 하지만 그 설명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도요타 사태는 오너 경영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자녀 지분 현황

이건희 회장 자녀 지분 현황

2009년 6월 도요다 아키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자,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다이세이 호칸’이라고 보도했다. 도요타에서 창업자 가문 출신이 사장에 오른 것은 아키오 부사장의 숙부인 도요다 다쓰로 전 사장이 1995년 사장에서 퇴임한 이후 처음이었다. 이렇게 오너 가문이 도요타를 다시 접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 책임 있는 오너 경영자가 나서 회사의 구심력을 높이고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선 오너 경영이 도요타의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월간지 4월호에 아키오 사장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글이 실렸다. 도요타는 리콜 사태 뒤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사장 대신 부사장이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도중에 끊고 자리를 떴다. “사장은 어디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뒤에야 아키오 사장이 기자회견에 나섰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아키오 사장은 내용 없는 사과성 발언만 거듭했다. 또 미국 하원 청문회에도 직접 출석하지 않고, 미국 법인장을 대신 출석시키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선 의지 없다”

그 결과 도요타는 미국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역풍을 맞아야 했다. 인명 사고까지 불러일으킨 도요타가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결국 도요타의 가신 그룹들이 오너 경영인을 보호하려는 충성심 때문에 오히려 그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키오 사장은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극단적이어서 직원들이 그 앞에서 감히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장에게 찍하는 걸 두려워해 누구도 솔직한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신 그룹으로 대표되는 ‘예스맨’들이 도요타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일본의 시사평론가 사타카 마코토는 도요타 리콜 사태와 관련해 “무사정권 시대 ‘번’(지방 영지)에서 가신들이 영주의 주위를 둘러싸고 비판적 의견을 가로막은 것처럼, 도요타 안의 ‘예스맨’들이 현실을 잘못 읽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번은 영주를 지키기 위해 문제가 있어도 우선 감추고 공개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요타 번’에서 영주 주위를 예스맨들이 둘러싸서 비판적 의견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영주가 현실을 잘못 본다. 언론도 광고에 둘러싸여 도요타에 무비판적”이라고 꼬집었다.

김상조 소장은 “기업에 리더십은 필요하지만 어떤 리더십인가 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삼성의 경직된 지배구조는 아이폰·아이패드 같은 혁신적 제품을 만드는 데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 회장의 복귀를 통해 삼성그룹은 스스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우리 사회가 이런 지배구조상의 문제를 감시하고 비판할 때 삼성그룹이 긴장하면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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