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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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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다, 하지만 곤란하다

복귀 조짐 꾸준히 보여와 놀랍지는 않지만,
과거의 잘못된 지배구조·경영 행태 반복하겠다니 우려할 만한 사건
등록 2010-03-31 14:24 수정 2020-05-03 04:26

3월24일 삼성전자 홍보실을 통해 발표된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회장 복귀는 그가 대통령의 단독 특별사면을 받은 이후 공개 활동을 재개했고 삼성 계열사 임원들이 연이어 복귀 발언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복귀한 3월24일 대학생나눔문화 소속 최영지(20·성신여대)씨가 서울 종로 삼성타워 앞 광장에서 이 회장 복귀 반대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이건희 회장이 복귀한 3월24일 대학생나눔문화 소속 최영지(20·성신여대)씨가 서울 종로 삼성타워 앞 광장에서 이 회장 복귀 반대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불법 행위 온상 ‘컨트롤타워’ 부활?

퇴진 뒤 복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짧다거나 약속한 사회공헌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이건희 회장의 복귀에 대해 논란과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복귀는 상장회사의 기본적 의사결정 체제를 무시한 채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과거의 잘못된 경영 행태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대 사건이다.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먼저 과거 불법 행위의 온상이던, 총수의 재산 관리와 그룹 전체의 전략 설정, 투자 배분을 담당하는 조직을 부활시키고 공식화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런 역할은 전략기획실이 2008년 해체된 이후 삼성사장단협의회라는 그룹조직에 들어가 있었지만,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필요성이 삼성그룹과 일부 언론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그동안 공식 직함과 상관없이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를 보좌하는 조직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만큼 행동의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이학수 전 부회장과 같은 친위 인사들이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정식 임원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계열사에 행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와 옛 전략기획실 조직의 부활 가능성은 옛 전력기획실 구성원들의 권한과 영향력을 다시 찾아주고 그들의 활동무대를 격상시켜주는 움직임으로 비친다.

또한 이번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이른바 오너 경영 체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총수 스스로 부여하는 작업이다. 삼성전자 홍보실은 이건희 회장이 복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도요타자동차 사태와 같은 위기를 대비·관리하는 데 이 회장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는 형식적으로라도 운영되던 전문경영인 체제와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의 종말을 고하고 삼성전자의 다른 주주들에게 이건희 회장의 제왕적 리더십을 강요하는 것이다. 비교해보자면 과거 왕이나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하고 피지배자들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 종종 이용한 ‘친위 쿠데타’와 유사하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이건희 회장의 공식 복귀는 그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한 재벌 계열사에 대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모두 뒤집고 무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선 회사의 가장 높은 보직이라고 하는 회장직을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별 논의도 없이 사실상 이건희 회장 스스로 결정하고 통보해 삼성전자의 이사회·주주총회라는 의사결정 구조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이다.

또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이외에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그를 보좌하는 별도의 조직이 생겨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는 심각한 지배구조 문제를 야기한다. 회장과 그 보좌 조직이 사업을 결정하지만 책임은 이사회가 지는 것이다. 각종 불법 행위와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됐고, 총수의 개인 재산 관리 및 그룹 전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지지 않던 전략기획실과 같은 조직이 삼성전자의 최상위 의사결정 구조에 들어온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위험을 크게 한다.

이번 이건희 회장의 복귀에서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은 오너 경영에 의지해야만 하는 삼성전자의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경영 위기 등을 계열사 임원들이 스스로 내세우면서 총수의 경영 복귀를 간절히 원한 것은 그만큼 독립 경영과 혁신적인 경영을 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오너가 호통쳐야 임직원 바꾼다’는 생각

시장과 언론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복귀에 대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사업 추진력을 이유로 긍정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고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기강을 다시금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에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미 삼성은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나 언론과 소통을 안 한 지 오래됐으며, 노조 설립, 산업재해, 기업 지배구조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배타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건희 회장의 복귀와 함께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는 도요타의 모습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오히려 소통이 되지 않고 고압적인 도요타의 태도에 더해, 결정은 독단적으로 내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옛 ‘회장-전략기획실’ 구조가 되풀이되면 최악의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견제받지 않는 상명하달 방식의 ‘황제 경영’의 부활은 삼성전자의 창조적 경영과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 글로벌 기업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 이건희 회장의 결단과 추진력은 삼성전자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호통치고 군기를 잡아 임직원들을 바꿀 수 있는 기업이 아니며, 창조적 지식 경영과 혁신적인 경영활동이 필요한 글로벌 기업이다. 본인들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마음대로 차명계좌를 만들고 회장의 불법 행위는 묵인하면서 다른 임직원들의 조그만 비위 사실은 이 잡듯 뒤지고 책임을 추궁하는 구시대 황제 경영 조직이 다시 삼성전자의 최상층부에서 자신들을 지배하는 것을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삼성전자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임직원들의 가슴 깊은 곳을 허탈하게 만들 뿐이고 삼성에 대한 일반 시민의 냉소만 불러일으키는 행위다.

미국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든은 은퇴를 두 번 번복했다. 첫 번째 복귀는 성공해서 소속팀을 3년 연속 우승시키며 왕조로 만들었지만, 두 번째 복귀는 팀을 망쳤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그의 경력과 명성에 걸맞지 않은 퇴진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의 결정이 언제나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은 과거에도 증명됐으며 새로운 시대에는 더욱 맞지 않을 수 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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