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로스쿨에서 법조인의 기본 교양이든 실무든 뭘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두고서도 100년 넘게 논쟁이 진행됐다. 그런데 우리는 뭘 가르칠지 정리도 안 된 상황인데, 그냥 로스쿨만 졸업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주겠다고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한 변호사가 ‘로스쿨 회의론’을 펴는 이유라며 내놓은 말이다. 그렇다. 이제는 로스쿨에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가르치느냐가 로스쿨 운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남는다. 그런데 이 문제는 변호사시험을 둘러싼 기존 법조계와 대학교수들 사이의 갈등에 가려 상대적으로 잘 부각되지 않았다.
김창록 경북대 법대 교수는 “한국의 로스쿨은 학생 대 교원 비율, 법학 전문도서관, 학생지도센터 등 전세계 최고의 설치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며 “교원 기준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 183개 로스쿨 가운데 한국의 인가 기준을 충족하는 로스쿨은 12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0 대 1이라는 학생 대 교수 비율을 채운 학교에만 로스쿨 설립을 인가해줬는데, 미국에서 이 기준을 충족하는 로스쿨 비율은 6.6%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우리나라 로스쿨들의 역량이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부분과 관련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다름 아닌 ‘가르치는 사람’의 문제다. 변호사 출신의 한 지방 국립대 법대 교수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최고 실력을 가진 분만 법대 교수를 해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교수가 된 뒤 지켜본 결과 기존 법대 교수들 가운데 로스쿨에서 제대로 강의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더란 얘기다.
로스쿨의 교육 내용과 관련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차원에서 전공별 교재를 개발하고 있고, 전공별로 워크숍이나 심포지엄도 몇 차례 열린 바 있다. 하지만 기존 학부생을 상대로 오랫동안 가르쳐온 교수들의 변화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한 로스쿨 교수는 “제대로 된 법학을 가르치려면 외국의 법 이론들로부터 연역해나가는 방식의 수업이 아니라, 외국법의 이념이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다양한 판례 조사를 통해 연구해나가는 방식의 수업이 이뤄져야 할 텐데, 솔직히 현재 법대 교수들이 이런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는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속도가 문제일 뿐 변화 자체는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한 국립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 합격생 예비학교 수업에 들어가본 교수들이 학부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학생들의 수준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며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미 학생들 자체가 바뀌었기에 교수들도 결국엔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변협과 대조되는 대한변협로스쿨 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사회적 노력이 없는 점도 큰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대한변협 산하에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를 만들고, 이들로 하여금 주기적으로 개별 로스쿨들의 교육·조직·운영·시설 등을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 결과는 교육과학기술부에 통보돼 경우에 따라서는 인가 취소나 정원 조정 등의 조처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로스쿨 관리·감독이라는 큰 권한을 부여받은 대한변협이 로스쿨의 내실화를 위해 뭔가를 해온 일은 없다. 오히려 로스쿨 졸업생 실무수습제를 제안하는 등 사실상 로스쿨 흔들기에 관심을 둬 로스쿨들의 반발을 불러왔을 뿐이다. 한 로스쿨 교수는 “일본에서는 로스쿨이 도입되자 일본변호사연합회 스스로가 산하에 법무연구재단을 만들고 미국의 변호사시험에 대한 연구 작업 등을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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