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일정 기간 한국에서 체류한 사실이 인정되는 아동에게 한국 국적을 줘야 한다는 논의는 진작부터 일었다. 지난 2006년 ‘이주아동 합법체류보장 촉구연대’가 국내에서 태어난 이주아동에게는 부모의 체류 신분과 상관없이 국적을 주고, 외국에서 태어난 이주아동이라 하더라도 국내에 들어와 3년 이상 머문 사실이 인정되면 영주권을 주는 것을 뼈대로 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의 입법을 시도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게 국적을 줘야 한다는 주장은, 이를 통해 그들이 한국에서 안정적 체류 기반을 마련하고 교육·의료와 같은 기본권을 국내 아동과 동등한 수준으로 받게끔 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국회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지난 3월2일 ‘이주아동 합법체류보장 촉구연대’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에 참가한 어린이가 손팻말을 든 채 눈을 만지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08년 초에도 41개 인권단체가 이주아동에게 국적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5개 분야별 인권과제 의견서’에서 “이주아동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 및 ‘무국적자’가 되며, 보육지원 부재, 불안한 학교생활, 체류 권리와 의료보험 혜택의 부재로 고통받는다”고 지적하면서 “이주아동에 대한 인권·교육권·사회권 보장을 위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제정하라”고 다시 촉구했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 문제가 불거지자 2008년 2월 말까지는 아동이 학교에 다니면 해당 부모가 강제출국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으나, 적용 기간이 끝난 이후로는 추가적인 조처가 전혀 없었다.
지난 2003년 1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국이 가입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18살 미만 아동이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자녀에게도 국적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영국에서 태어나 10살이 될 때까지 거주한 아동에게는 부모가 불법 체류자더라도 국적을 준다. 프랑스도 11살 이후 5년 동안 거주한 사실이 증명되면 프랑스 국적을 주고 있다. 오랜 제국주의의 역사 속에서 식민지 국민들의 이주를 겪으면서 얻은 지혜다. 전면적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은 영토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신분을 불문하고 국적을 준다.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 세금을 잘 내고 살면 영주권을 준다.
그러나 강력한 혈통주의에 기반한 ‘속인주의’ 원칙만을 고집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현행 국적법의 틀을 깨고 속지주의를 보충적으로 도입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법무부의 생각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차규근 법무부 국적난민팀장은 12월25일 과의 통화에서 “국적법 개정과 관련해 전혀 검토하고 있는 바가 없다”며 “(개정하려면) 헌법에 준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화교 2·3세 자녀들에게 국적을 줘야한다는 오랜 요구에도 여전히 귀를 닫고 있을 정도로 국적 문제에 관해서는 완고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법무부는 선진국의 경우 수백만명 이상의 이민자가 존재하는 이민국가이기 때문에 국적 부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국내에도 50만명 가량의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그사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가 강제단속 당하면 따라서 출국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적 부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의 대안이라고 본다. 동시에 당장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체류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안정적 신분 확보가 먼저다. 그럼으로써 현재 초등학교까지만 보장돼 있는 교육권을 중·고등학교까지 늘릴 수 있다. 건강보험에도 가입시켜야 한다. 신분이 미등록이라고 질병까지 이들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주권도 줘야 한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는 “어디서 태어났든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이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당장 아동에게 국적은 주지 못하더라도 의료와 보건, 교육권은 지금 단계에서도 바로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동의 신분이 보장되더라도 부모의 신분이 불안정하면 역시 문제가 되므로,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는 현행 고용허가제의 요건을 대폭 완화해 이주 노동자를 합법화하는 조처도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은하 서울 성동외국인센터 교육문화팀장도 “국적과는 별개 문제로, 아이에게 우선 체류권과 교육권을 보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강보험에 드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또 부모 중 어느 한 쪽이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에게만 각종 지원의 혜택을 주고 있는 현행 다문화가족지원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 법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하는 한편, 이들 가족이 교육과 상담 등의 사업을 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들은 여기서도 소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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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관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아이들을 어떡해야 하나.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아이 문제는 우리의 상식과 이익을 떠나, 어떤 경로로 어떻게 들어왔건, 합법이든 아니든, 차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문제다. 세계화와 다문화를 얘기한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아이들을 맞이할 능동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늘 문제가 닥쳤을 때 일을 처리하니까,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한다. 경험상 아버지가 불법으로 단속당하더라도 아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보호받아야 한다.
-국적 문제에 대한 단계적 접근 방식이 제기된다.
=나도 동의한다. 아이에게 우선 교육과 의료보험의 권리를 줘야 한다.
-지난 11월12일 단속 이후 공단 분위기는 어떤가.
=오늘 성탄절이어서 미사를 집전했다. 기쁜 날이다. 하지만 전혀 분위기가 안 나더라. 지난해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장기자랑도 하고 노래도 하고 파티, 놀이도 했다. 이번에는 한 건도 없었다.
-지난번 단속의 후유증이 적지 않은 것 같더라.
=다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말을 아낀다. 불안해하고 힘겨워하는 것이다. 나도 지금까지 떨리고 피가 마른다.
-미사하면서 어떤 기도를 했나.
=아기 예수가 가난한 하느님의 모습으로 말구유 먹이통에 오셨다는 설교를 했다. 떡만 나눠주는 게 사랑인 것은 아니다. 새해에는 야만적으로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곳에 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이해할 것처럼 얘기했다. 다 때려잡는다고 국익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몰아내기 시작하면 악을 더 쌓는 것이다. 2009년은 더 어렵다고 한다. 그들은 더 어렵다. 그들이 겪는 자녀·국적 문제도 (다른 나라에) 선례가 있다. 넉넉하게 베풀어주면 된다. 국민의 5분의 1이 나가 사는 송출 국가로서의 자세도 되돌아보면서 넉넉해지면 좋겠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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