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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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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수석 논설위원에게 ‘재갈’

외환 보유액보다 중요한 인적 자원…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해야
등록 2008-12-05 14:07 수정 2020-05-03 04:25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세상은 바뀌었는데 낡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경제주체는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 정부는 덜 가진 자에서 많이 가진 자로 부의 재분배, 토목건축 중심의 사업 추진, 환율의 인위적 인상이 수출을 늘린다는 환상, 재벌에 은행과 방송을 지배하게 하는 재벌체제의 완성 등 낡고 시대착오적인 대응으로, 한편으로는 미국발 범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시간을 낭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자의 신뢰를 잃었다.

환율은 연일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하는 지난 수개월, 인터넷 공간에서 주권자의 불안을 줄여주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논객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열독의 대상이 된 것이 필명 ‘미네르바’의 글이다. 30만 명 내외가 그의 글을 매일 읽고 환호하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어느 경제학 교수보다 온라인 제자가 많았고, 어느 공직자의 발언보다 호응도가 높았다. 많은 애독자들이 그를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할 정도였다.

인터넷은 완전경쟁 시장

인터넷 공간은 정보시장에서 완전경쟁 시장이다. 누구도 자기가 공급하는 정보를 남이 읽게 강제할 힘이 없다. 품질이 떨어지는 정보는 수요자로부터 외면당한다. 오직 정확한 정보, 통찰력 있는 분석을 포함한 글만이 정보 소비자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을 수 있다. 미네르바가 단순한 홍보용 정보나 왜곡된 낙관론만 피력했다면, 그의 글은 단 1천 명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미네르바가 “국가가 침묵을 명했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부기관이 그에게 어떤 압력을 행사했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역효과만 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절필이 이미 신뢰감을 많이 잃은 정부의 유·무형 압력의 결과로 인식되면서 그에 대한 기존 독자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고, 필자와 같은 새로운 지지자까지 늘어난 것이다. 국방부의 시대착오적 금서 목록이 오히려 그 책들의 판매량을 급증시켰듯이, 미네르바는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승격되었다.

우리는 정보기술(IT) 강국인가? 휴대전화, 반도체 등 정보통신 관련 제품을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는 점에서는 분명 강국이다. 그러나 반쪽짜리 IT 강국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순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권자는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뜻을 공복에게 전달한다. 주권자(Principal)는 새로운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데, 심부름꾼(Agent)들은 낡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방송이나 YTN 사태가 그런 예들이다.

나라의 주인들은 미네르바나 다른 인터넷 논객들의 글을 통해 깨어난 민중으로, 집단지성으로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결함, 비효율성 등이 즉각 분석되고, 그런 고급 정보가 무료로 유통된다. 이런 흐름은 주인을 존중하는 정부라면 고마워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여론을 정부 주장 쪽으로 편향시키는 게 항상 가능하다는 낡은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알바’가 동원되고, 해당 인터넷 포털회사에 압력이 가해지고, 주권자가 직접 임명한 미네르바 같은 수석 논설위원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해도, 정부가 제멋대로 주권자들을 장기간 오도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진정한 IT 강국 위해 필요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의 진정한 IT 혁명의 의미다. 주권자는 IT 혁명을 통해 더 현명해졌고, 주인을 무시하는 자가 나라의 심부름꾼 노릇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간접민주주의의 결함이 인터넷을 통해 많이 축소될 수 있게 되었다.

미네르바 개인이 인터넷에 계속 글을 쓰냐 안 쓰냐는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중요한 게 아니다. 인터넷 정보시장은 소수가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독과점 공급구조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옥석은 정부가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수요자인 수많은 주권자들이 실시간으로 결정한다. 이미 이 정보시장에는 미네르바에 비견되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에게 조·중·동의 고액 원고료는 고사하고 나 의 상대적으로 적은 원고료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수요에 비해 정보공급량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출현 이후, 공급 부족은 많이 해소되었다. 적어도 수십 명이 미네르바를 부분적으로나마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하자면 국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외환 보유액보다 더 중요한 자원은 인적 자원이다. 인터넷을 정보시장의 매체로 적극 인식해 다수 주권자의 뜻을 전달받는 통로로 이용하는 한편, 훌륭한 인터넷 논객을 직접 금융회사나 언론사, 연구소, 나아가 정부가 활용하는 것도 선진사회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일이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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