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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넘게 미뤄지는 ‘대통령 펀드’ 입방아

증시 바닥 찾기 힘들고 가입한 운용사 특혜시비 우려
등록 2008-10-28 11:26 수정 2020-05-03 04:25

10월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는 이동관 대변인이 쏟아지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정례 브리핑이었지만, 쌀 직불금 논란 때문에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 쏟아졌다. 브리핑이 끝나갈 무렵, 한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은 언제 펀드 가입합니까.” 이동관 대변인은 약간 곤혹스런 표정으로 “지금까지처럼 펜딩(미정) 상태로 해달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펀드는 청와대 정례 브리핑의 단골 질문이 됐다. 지난 10월13일 브리핑에서도 “대통령이 언제 펀드에 가입하냐”는 질문에 이 대변인은 “적절한 타이밍에 할게요”라고 답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1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직접투자는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라도 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오른쪽 가운데)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의 펀드는 기자들의 단골 질문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오른쪽 가운데)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의 펀드는 기자들의 단골 질문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증시 대대적 부양책 나오면 가입 나설듯

그러나 이 대통령의 펀드 투자 시기는 한 달이 넘게 ‘미정’이다. 청와대가 고심하는 배경은 이렇다. 대통령의 펀드 투자는 증시가 바닥을 쳤다는 신호가 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가입한 펀드마저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나거나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역효과가 날 우려가 높다. 펀드 운용회사를 선정하는 일도 만만찮다. 펀드 운용회사는 대통령의 펀드를 유치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광고할 가능성이 높다. 특정 펀드를 지원한다는 ‘뒷담화’를 낳을 우려가 있다. 펀드 운용회사는 또한 대통령이 가입한 펀드 상품은 최대한 수익률을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대통령의 펀드만 상승하고, 다른 펀드는 하락할 경우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통령의 펀드에만 쏠림 현상이 날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수가 많은 고차원 함수에 대입해 펀드 문제를 풀려고 하니 쉽지가 않은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에서 아직은 살 시점이 아니라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며 “증시부양 대책 등이 발표되는 시점에 맞춰 대통령이 펀드를 사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증시부양 대책이 마련되면, 이 대통령도 곧바로 펀드 구매에 나서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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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사회 환원 공약도 1년 다 돼가

대통령의 펀드 구매가 당분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월24일 코스피 지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1천 선 아래로 떨어졌다. 코스피 지수가 1천 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5년 6월30일(장중 기준) 997.59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올해 최고치(1911.67)에서 반토막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공약도 거의 1년이 다 돼가도록 지켜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약속도 자꾸 미뤄지면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믿겠냐”고 말했다. 주식투자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실물에 의한 영향 못지않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펀드를 기다리는 것은 그 심리적 영향 때문이다.

한편, 지난 2004년 말 최악의 주가를 기록하던 시점에서 ‘우리 기업 주식 갖기’ 캠페인 차원에서 적립식 펀드에 투자했던 옛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후 주가 상승으로 3년 만기가 됐을 때는 40~100%의 고수익을 올린 바 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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