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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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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 황당무계

결혼 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 소수자들의 대담… “주례든 공간이든 선택의 폭을 넓혀야”
등록 2008-09-11 11:03 수정 2020-05-03 04:25
최근 열린 결혼식 모습.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여전히 신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신랑에게 인수인계되고, 대개는 남성이게 마련인 주례자에게서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주례사를 들어야 한다.

최근 열린 결혼식 모습.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여전히 신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신랑에게 인수인계되고, 대개는 남성이게 마련인 주례자에게서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주례사를 들어야 한다.

누구나 해야 할 것 같은 결혼식,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주례사. 우리 사회의 다수자들에게 어른이 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게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성·인종·장애의 영역에서 우리사회의 소수자로 머물고 있는 이들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장애여성단체 ‘공감’에서 연극팀 ‘춤추는 허리’를 맡고 있는 박주희 팀장, 그리고 스리랑카 출신으로 결혼이주한 디누카 등 3명이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털어놨다. 여기에 결혼식 기획 경험이 있는 공연기획자 탁현민(P堂 대표)씨도 비판의 칼을 꺼내들었다. 김 대표를 뺀 3명은 기혼자다. 이들은 입을 모아 획일화된 예식과 주례사 속에 약자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좌담은 9월3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탁씨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왜 결혼 안해?” “오~ 결혼해?”

사회 결혼식 많이들 가봤을 텐데, 어떻던가? 소수자로서 불편함이 있었을 것 같다.

김조광수(이하 김) 커밍아웃하기 전에는 결혼식에 가기 불편했다. 내게 “왜 결혼 안 하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30~40대 싱글은 결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커밍아웃한 뒤에는 그런 걸 물어보지 않는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할 거냐”고 묻는다. “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결혼 제도를 옹호하거나 인정하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성애자 중심적인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애자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라도 할 생각이다.

박주희(이하 박) 장애 여성은 “결혼 안 하냐, 언제 하냐”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다들 장애가 있으니까 결혼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오히려 결혼한다고 하면 “오∼, 결혼하냐” 이런 분위기다. 난 1996년에 첫 결혼을 했다. 상대가 비장애인이었는데, 주변에 그 얘길 했더니 “와∼, 복 터졌다” 그런 분위기였다. 휴먼다큐를 보면 장애 여성이 비장애 남성과 사는 것을 신데렐라화한다. 비장애 남성은 영웅시된다. 텔레비전은 장애 남성이 자기 전문 분야에서 성공한 경우에 띄우고, 장애 여성이 비장애 남성과 결혼했을 때 ‘신데렐라 됐다’고 한다. 딸아이를 낳은 뒤 이혼하고 2006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나는 남의 결혼식은 다녀보지 않은 상태에서 첫 결혼을 했는데, 당시만 해도 장애인들이 쉽게 밖에 나올 수 없었다. 친언니 결혼식 때도 못 갔다. (장애 편의) 시설 문제도 있고, (장애인이) 같이 참여하는 것 자체를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박주희

박주희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다. (동성애자가 가족의 결혼식에 참가하는 것을) 가족들이 부끄러워한다.

디누카(이하 디) 스리랑카는 불교식으로 결혼을 많이 하는데 가톨릭식으로도 한다. 보통은 집 안에서 불교식으로 무대를 만들어 전통 방식으로 올린다. 한국의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는데 너무 화려하고 무척 짧게 끝나더라. 남편과 스리랑카에서 결혼식 할 때 한국 사람들이 왔는데 “되게 길다”고 하더라. 스리랑카에서는 결혼식에 축하하러 가는 사람들도 입을 옷 등을 한 달 전부터 준비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사무실에서 입던 옷을 입고 가기도 한다. 축하만 하고 밥 먹는다. (축의금을) 다른 사람 결혼식에 가서 냈으면 그 사람도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 한국에서는 축의금을 돈으로 내지 않나. 스리랑카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줘도 되고,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게 좀 이해가 안 되더라. 한국은 했는지 안 했는지 꼭 확인하더라.

사회 스리랑카에도 주례가 있나?

아니 없다. 다만 결혼식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 식은 1시간이 안 걸리는데, 그들이 와서 기도 같은 것을 하면서 진행한다. 순서를 그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 만약 (결혼식이) 잘못되면 평생 안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그들을 불러서 한다. 지역적으로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탁현민(이하 탁) 결혼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축제이자 의식이다. 우리나라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나라 결혼식은 돈을 적게 들이면 소박한 게 아니라 궁상맞아 보이고, 돈을 좀 들이면 멋있는 게 아니라 소비지향적으로 보인다. 딜레마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의식 쪽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주례도 사회도 왜 남자만인가

나는 전에 결혼식 할 때 폐백이 너무 힘들더라. 내가 일어서지 못하니까,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나를) 들어줘서 어렵게 했다. 하던 거라 해야 한다는 거다. 가톨릭식으로 할 때는 오랜 시간 휠체어에 앉아 듣고 있는데, 그 순서를 다 맞춰 한다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더라. 장애인이 결혼할 때는 그에 맞는 새로운 형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성소수자로서 결혼과 관련해 당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을 것 같다.


김조광수

김조광수

기존 결혼은 성별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나. 우리에게도 그런 걸 강요하는 게 있다. “누가 남자 역할이냐”고 묻는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동성애자 중에도 “얘는 남자 역할, 얘는 여자 역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만약 내가 결혼한다면 둘 다 턱시도를 입어야 하는지, 누구는 웨딩드레스 입어야 하는지, 누가 먼저 입장해야 하는지, 이런 게 스트레스가 될 것 같더라. (입장할 때) 부모를 내세우고, 없으면 이를테면 작은아버지를 내세우고 한다. 그것도 되게 가부장적이다. 부모가 축복해주는 건 좋은데, 부모가 없거나 동의하지 않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딱 티가 날 것 아닌가. 결혼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고 싶지는 않다.

꼭 아버지가 손 잡고 가서 남자에게 인계해주지 않나. 동시 입장이 낫지 않을까? 또 주례는 왜 꼭 남자 쪽 은사, 사회는 남자 쪽 친구인가.

예식장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이렇게 됐다. 예식 문화가 아니라 예식 기업이 먼저 생긴 것이다. 그 기업들이 사회적 동의나 합의도 없이 몇 개의 옵션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단시간에 다양한 옵션으로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며 찍어내듯이 결혼식을 하게 된 거다.

농촌에서도 예식장 가서 하잖나. 도시는 좁은데다 아파트에서 결혼식을 할 수도 없지만, 농촌은 큰 마당도 있고 한데 예식장에 간다. 업체 중심의 획일적 결혼 문화가 강요되고 있다. 안 따르면 시대에 떨어지고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누카

디누카

사회 주례사는 어떤가. 여전히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여성의 순결과 순종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불편할 때가 있다. 남녀를 구분하고 성역할을 강조한다.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 화목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게 제일 마음에 걸리더라.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더라도 결혼할 때 그런 느낌의 주례사를 강요받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게다가 주례사가 거의 비슷하고 획일적이다. 굉장히 행복해야 할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렇게 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야’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여자가 주례를 선 걸 본 적이 있는데, 좀 다르더라. ‘가정생활(과 직장생활)로 여자는 어려우니 남편이 굉장히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를 주로 했다. 하객으로 온 여자분들이 다 끄덕끄덕하더라.

주례사 없는 결혼식을 갔는데, 친구들이 나와서 다들 ‘잘 살아라’류의 말을 했다. 주례자는 당사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잘 고르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다. 정말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줄,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사람을 모시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은사님들이 주로 주례를 보는데,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제지간에 인간적으로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례 선정 때 가서 인사 드리고, ‘우리의 정보가 이 정도예요’ 이력서 수준의 프로필을 드리고 하다 보니 내용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 듣는 게 주례사라면, 내게 도움될 만한 스승을 찾아야 하는데…. 스승이 없다.

공간의 문제부터 해결돼야


탁현민

탁현민

이혼하고 나서 남의 결혼식에 많이 가게 됐는데 반감이 간 주례사가 있었다. 목사가 너무 노인인데다 보수적 관념이 들어찬 분이었다. ‘여자는 땅이고 남자는 하늘이다. 아무리 여성 상위시대라고 해도 여자가 땅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디 여자가 감히 남자에게…’라며 흥분하더라. 그때 나는 다시는 결혼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사회 우리 결혼 문화, 어떻게 해야 하나.

공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혼 문화는 일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2년쯤 전인가 호주 대사관 친구가 결혼하는데, 상대가 아는 여자 후배였다. 한국식 결혼이 싫다며 다르게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웨딩 이벤트를 해봤다. 안국동에 윤보선 전 대통령 집이 있다. 마당이 넓다. 식은 기독교 형식으로, 분위기는 한국식으로 했다. 피로연과 댄스 파티도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그런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많으면 다양한 형식이 나올 것이다.

사회 주례사가 꼭 필요할까?

우리처럼 사회와 주례가 따로 있는 경우도 못 본 것 같다. 우리가 버라이어티한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 것도 같다.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게 문제지만, 덕담이 나쁘지는 않지 않나.

선택의 차원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전통 혼례 할 때는 주례 같은 게 없지 않았나. 축제식으로 한다면 하는 것이고, 주례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주례라는 게 위대한 분을 모셔 자리를 빛내고 싶어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메인스트림이 아닌 사람들일수록, 부족하니까 박탈감을 느끼니까. 좋은 사람을 고르라는 선언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고, 장소를 비롯해 좀더 다양한 선택이 필요하다.

사회·정리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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