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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낙인 “너희도 똑같다”

등록 2008-06-06 00:00 수정 2020-05-03 04:25

시민들 광장으로 나오는 동안 뒷짐지고 자리다툼… 젊은 의원들 “개인 차원에서 촛불집회 참여 계획”

▣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표지이야기 2부-요동치는 정치권]

“통합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선대요? 관심 없어요. 아니, 의원들이 맨 앞에 서서 전경들의 방패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준다면 찬성하겠어요.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이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우리의 대표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일부로 참여하라는 거예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장관 고시를 강행한 5월29일 밤 11시,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조아름(32·세무사)씨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조씨는 “민주당이 그간 어디에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국민이 외면하는 이유를 알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 외면하려던 당선자 워크숍

2시간 뒤인 30일 새벽 1시, 문화방송 에 참석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민 논객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때 민주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렇다고 장내에서 쇠고기 장관 고시를 막지도 못했잖아요. 민주당은 과연 뭘 한 겁니까!” 시민 논객의 추궁은 매서웠다. 원혜영 대표는 “저희들이 장외투쟁에 나설 경우 민주당이 시위를 배후 조종한다는 식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뻔했다”며 “이제부터 민주당도 장외에서 투쟁하기로 했다”고 답하는 것으로 난처한 자리를 모면했다.

4만 명(경찰 추산 2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5월29일 광화문 거리에는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이,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가 있었다. 노회찬 대표는 경찰의 무력 진압이 시작되자, 곧바로 도로에 앉아 경찰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그간 ‘비공식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5월16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바 있고, 천정배 의원실 보좌관들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없었다.

쇠고기 정국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무관심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민주당은 5월26일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을 마치고 당선자 81명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장관 고시 강행 기도 즉각 중단 △평화적 촛불문화제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 중단과 책임자 문책 △쇠고기 협상 책임자의 문책과 전면적인 국정쇄신안 마련 등이 이들의 요구였다. 하지만 이날 워크숍 정식 안건에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손학규 당대표의 인사말에 잠시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성명서 발표 계획도 없었다. 워크숍에 참석한 한 민주당 의원은 “현장에서 몇몇 소장파 의원들이 주장해 결국 성명서를 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복수의 참석자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이날 민주당 워크숍 토론 주제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포함된 것은 최재성 의원과 강기정 의원 등의 즉석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최재성 의원 등이 “소장파 의원들만이라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자”고 제안한 것을 참석 의원들이 “정식 토론 안건에 넣자”고 했고, 그 결과 81명 전원 성명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날 성명의 실체는 예정에도 없던 ‘졸속 성명’이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당선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던 광우병 대책법안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샀다. 그는 “민주당 차원의 독자적인 수입조건을 만들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별도의 기준안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전임 김효석 원내대표 시절 민주당은 30개월 미만 소의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는 것을 골자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만들어 당론으로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또한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22명이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소해면상뇌증(광우병) 발생시 즉각 수입금지 조처를 취하는 내용의 ‘소해면상뇌증 예방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와중에도 ‘자기 사람 챙기기’에 급급했다. 민주당은 5월28일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서울 성동갑 지역을 ‘지역위원장이 확정된 지역’에서 ‘새로 공모하는 지역’으로 바꿨다. 애초 민주당의 공모 기준에 따르면 이 지역은 총선 낙선자인 최재천 전 의원이 지역위원장을 맡아야 하지만, 조직강화특위의 결정을 거쳐 지역위원장을 새로 뽑는 지역으로 바뀐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에서 고재득 최고위원이 성동갑 지역위원장을 공모하자고 했고, 최고위원회의 지시를 받은 조직강화특위가 표결까지 해가면서 서울 성동갑을 공모 지역으로 바꿨다. 옛 민주당 소속으로 성동구청장을 3번 연임한 고 최고위원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성동을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임종석 의원에게 경선에서 패배해 공천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이 지역의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1년형을 구형받으면서 재보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자 고재득 최고위원이 박상천 대표의 지원을 받아 자리다툼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아고라’ 통해 대중과 호흡 맞추기

이런 상황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지지도가 조금도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박경철 전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은 “신랄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 국민은 민주당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것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며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정권을 두고 경합하는 사이로 볼 뿐,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전 위원은 “대중이 바보 같아 보이지만, 절대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점을 만들어 보이지 못하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대중들의 지지를 끌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강기정 의원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을 심판했던 국민이 다시 민주당에 대표성을 부여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민주당에 정국의 주도권을 쥐어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보니까 스스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중과의 호흡 맞추기에 나설 예정이다. 강기정 의원과 최재성 의원,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청문회에서 스타로 떠오른 조경태 의원 등이 사이버 논객으로 나선다. 최재성 의원은 “다음 아고라의 반응을 봐서, 6월5일 이후 젊은 의원들이 개인 차원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의원들이 대열의 맨 앞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앞장서는 역할을 한다면 시민들도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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