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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큰 장’ 서기만 기다린다

등록 2008-06-03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정부 “민영화 없다” 해명의 진실… 상수도·고속도로·대운하에서 코오롱 그룹 발빠른 행보</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font color="#C12D84">[표지이야기 3부-밀려오는 민영화] </font>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이어 온라인에 ‘수돗물 괴담’ ‘건강보험 괴담’ ‘고속도로 괴담’ 등 이른바 민영화 괴담이 날로 퍼지고 있다.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물·건강보험·고속도로도 민영화할 예정이고, 그래서 물값·의료비·고속도로 통행료가 폭등하게 될 것”이라는 풍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집회장에서도 물값·의료비 폭등을 걱정하는 팻말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해명 자료를 내고 “공기업 민영화 방안은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6월 중에 최종 추진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그러나 의료보험·(광역)상수도·고속도로 민영화는 전혀 검토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과연 물과 의료보험, 고속도로 민영화는 근거 없는 억측과 괴담에 불과한 것일까?

정보기술(IT) 붐 이후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는 데 골몰하던 국내 대기업들은 요즘 공기업 인수·합병(M&A)이란 ‘큰 장’이 설 때만을 기다리며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에 빠졌던 대형 알짜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 잔치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기업 인수·합병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공기업 소유 자산을 통째로 민간에 매각하는 ‘소유의 민영화’가 좁은 의미의 민영화라면, 공기업 지분은 계속 정부가 갖되 관리·운영을 민간 기업에 맡기거나 정부가 독점해온 공공서비스 시장에 민간 기업의 진입을 허용해 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은 넓은 의미의 민영화에 속한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지분을 당장 민간에 파는 방식은 피하되, 우회적 방식의 꼼수와 눈속임을 통해 사실상의 민영화 작업에 착수한 건 아닐까?

코오롱, 이상득 의원이 고문으로 있어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관계자는 “민영화 초기에 공기업을 관리하고 민영화를 집행하는 과도기적 기구로서 정부지주회사(가칭 KGHC)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소유의 민영화’가 어려운 공기업에 대해서는 이 지주회사를 통해 민간에 운영을 위탁하는 ‘경영의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소유자인 국가가 요금을 통제할 수 있겠지만, 민간에 운영 수익을 보장해주려면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투자 대비 수익을 내기 어려운 부문은 국가가 계속 수행하고, 이윤을 낼 수 있거나 민간이 담당할 수 있는 요금 형태의 수익사업 부문만 떼내 민간에 맡긴다는 구상이다.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주장하는 이른바 ‘섹터별 민영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나 대운하 사업과 관련해 업계와 시장에서 ‘코오롱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코오롱건설(2007년 대한건설협회가 평가한 시공능력 순위 16위)이 이명박 정부의 수혜 기업 1순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1977∼82년에 (주)코오롱 사장을, 1982∼88년에 코오롱상사(주) 사장을 지낸 바 있다. 이상득 의원은 현재 코오롱 고문으로 한 달 500여만원의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이 회장을 지낸 현대건설과의 인연도 흥미롭다. 원현수 전 코오롱건설 대표이사(2007년)는 27년간 현대건설에 재직한 바 있다. 또 코오롱건설은 1998년 당시 경인운하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현대건설이 대주주(지분 53%)로 참여한 컨소시엄(경인운하주식회사)에 2대 주주(지분 10%)로 참여해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7년 당시 코오롱건설의 시공능력 순위는 업계 34위로, 현대건설과 손잡고 경인운하 사업권을 따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코오롱건설은 현재 현대건설이 발주한 대전하수처리장 고도처리 관련 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요즘 코오롱건설에 이목이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물산업’ 민영화 때문이다. 코오롱은 약 2년 전부터 물산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고, 최근 7개 물산업 계열사들의 대표 브랜드인 ‘코오롱워터’를 선보였다. 코오롱건설은 2007년에 환경시설관리공사·엔비시스템·그린순창·그린경산·그린화순을 계열로 새로 편입했다. 모두 환경 및 수(水) 처리 관련 기업들이다. 환경관리공단 자회사로 출발했던 환경시설관리공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하수·폐수종말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전국 41개 사업소와 284개 하폐수 처리장)을 건설·운영하는 기업이다. 2007년 2월 코오롱건설이 524억원에 지분 100%를 인수해 지난해 매출액 1055억원, 순이익 80억원을 기록했다. 코오롱건설은 또 평택워터(주), 용인클린워터 등 물 관련 기업(상하수도공사 혹은 축산폐수 공공처리시설)에 10∼40%의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올 상반기 ‘물산업지원법’ 입법 예고

현재 상하수도 물산업의 사업자는 공기업과 지자체다. 상하수 운영관리는 국가가, 시설물 제조와 건설은 민간 기업들이 하고 있는 구조다. 전국 12개 광역상수도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맡아 물을 지자체 취수장에 공급하고, 전국 164개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지방 상하수도를 운영하면서 이 물을 정수해 가정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수자원공사는 도시 지역이든 산골이든 모든 지자체에 대해 광역상수 공급 가격을 전국 단일요금으로 책정해 받고 있다. 하수도 사업의 경우 상당수 지자체가 코오롱건설 등 민간 업체에 이미 민영화한 반면, 지방상수도 민영화율은 0%다. 수자원공사가 논산 등 15개 지자체의 지방상수도 업무를 위탁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수도법이 이미 개정돼 수자원공사는 물론 민간 건설업체도 상하수도 위탁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는 세금 면제를 받는 반면 민간 업체는 세제 유인이 없어서 참여를 꺼리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지난해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 계획’을 통해 상하수도 사업의 민영화 계획을 세운 데 이어 올 상반기에 ‘물산업지원법’을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물산업지원법은 ‘지자체가 상하수도 사업의 운영·관리를 위해 단독 혹은 연합으로 지자체 이외의 자(외국인·외국법인 포함)와 공동출자해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고, 상하수도 사업자에게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수도 소유권은 국가나 지자체가 갖고 관리·감독하되 운영은 민관합동 주식회사에 맡긴다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는 100%까지 지분 투자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도법 시행령에 이미 민간 건설업체가 수도사업을 위탁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수도법은 규제하는 법이기 때문에 물산업을 지원·육성하기 위해 참여 민간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주기 위한 물산업지원법을 따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물산업지원법(안)과 관련해 정부는 “지자체가 수도시설 소유권을 유지하되 민간 사업자의 경영 참여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민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상수도요금은 지자체가 계속 결정하게 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상수도 민영화는 검토한 바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해명은 광역상수도를 맡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민영화’는 검토한 바 없다는 말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관계자도 “현재 ‘광역’ 상수도는 민영화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지자체가 직접 맡고 있는 지방상수도 사업의 경우 민간 업체에도 수도사업자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물산업 세부 추진 계획에 따르면 “민간 사업자가 중장기적으로는 상하수도 사업을 통합 위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해 코오롱건설은 정수·하수 처리시설 설치뿐 아니라 물 처리 소재·시스템 그리고 운영까지 일괄 제공하는 ‘토털 워터 솔루션’ 사업을 발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코오롱건설이 상하수도관 시공을 맡고, 코오롱생명과학 등은 수처리 약품 생산과 물 정제 기술을 맡고, 환경시설관리공사 등이 상하수도 운영을 맡는 구상이다. ‘코오롱 워터’ 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는 경국현 코오롱 상무는 “민간 전문기업이 물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공공에서 운영하고 있는 상수도 시장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며 “금을 캘 정도는 아니라도 상수도 시장은 매력이 있다. 물산업은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아직 상수도 분야가 공공 영역이지만, 민간에도 시장이 곧 열릴 것으로 본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물산업 지원, 요금 인상 불가피

하수도 사업만 보면, 코오롱건설은 이미 대형 관급 공사를 잇따라 수주하거나 운영하면서 수처리 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경기 용인시 환경센터와 경북 안동시 하수처리 시설을 위탁 운영하고 있고, 서울 한강수계 하수관거(여러 하수구에서 하수를 모아 하수처리장으로 내려보내는 큰 하수도관) 정비공사와 부산의 수정산 터널 배수지 설치공사, 환경관리공단이 발주한 여수국가산단 폐수종말처리장 시설 공사 등을 수주한 바 있다. 수자원공사가 발주한 경인운하 관련 굴포천 방수로 공사를 코오롱이 맡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코오롱건설의 오기식 전 사장은 한국수자원공사 출신이다. 코오롱은 또 최근 곽결호 전 수자원공사 사장(전 환경부 장관) 영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수자원공사 노조 쪽은 “물산업 민영화 논란을 둘러싸고 최근 여러 군데를 통해 정황을 확인해봤는데, 수도부문 민영화를 전방위적으로 주도하는 곳이 코오롱건설인 것으로 파악됐다. 곽결호 사장한테 직접 확인해보니 코오롱에서 임원 영입 제의가 들어왔으나 본인이 거절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의 물산업 지원 방안에는 ‘민간 기업이 합리적인 요금 수입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수도사업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요금체계를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싸다는 우리나라 상하수도 요금의 현실화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지자체가 요금을 계속 규제한다 해도 민간 기업이 상수도 사업에 뛰어들 경우 공기업처럼 생산비 이하로는 판매하지 않을 것이고,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코오롱건설의 사업 내용을 보면 고속도로 민영화 괴담과도 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코오롱건설은 민자고속도로인 서울고속도로(주) 지분 8%, 제2영동고속도로(주) 지분 8%, 미시령동서관통도로 지분 27%, 제2경인연결고속도로 지분 16.7%를 갖고 있다. 코오롱건설은 2007년 말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고, 2005년에 사업시행자로 선정된 서서울민자고속도로(주)의 대표사를 맡고 있다. 민자고속도로의 경우 준공과 동시에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고 민간 사업시행자에게 30년간 관리·운영권이 부여된다. 통행료는 물가상승분 등을 고려해 정부와 협의해 결정한다.

민자 고속도로 지분 매각이 없을 뿐…

“고속도로 민영화는 검토한 적 없다”는 정부의 해명은 한국도로공사를 당장 민영화할 뜻이 없다는 얘기다. 코오롱건설 등이 운영 중인 민자고속도로 소유권을 민간에 넘기는 방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와 관련해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30년 된 민자고속도로는 아직 한 곳도 없다. 따라서 국가가 민자고속도로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건 말할 단계가 아니다. 민간에 소유권 자체를 넘기는 등의 정책 사항은 민간투자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소관인데 아직 어떤 지침도 없다”며 “다만, 법과 제도는 항상 발전하는 것인 만큼 보완책을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코오롱건설은 덕평랜드(자본금 90억원)라는 출자회사를 통해 지난해 4월부터 고속도로휴게소 사업도 벌이고 있다.

<font color="#C12D84">[한겨레21 표지이야기]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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