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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런 자기애 ‘나는 옳다’

등록 2008-05-16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민과 불화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리 분석… 표심 얻게 만든 결단력과 카리스마가 도리어 발목 잡아

▣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1부-분노의 역류]

이명박 대통령은 바쁘게 일한다. 새벽 조찬 회의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일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노력과는 반비례로 지지도는 급락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출범 2개월 만에 추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대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차로 경쟁자를 누르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다. 심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은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신뢰감을 줬던 MB의 이미지가 이제는 역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파 노무현’처럼 보이기 시작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이미지를 다음과 같은 8가지로 정리했다.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해낸다 △한번 결정한 사안은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인다 △분명하고 강한 결단력 △경제를 최우선에 두며 지속 발전을 강조한다 △달성하려는 목표가 분명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소신과 고집이 있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이려 한다 △무슨 일이든 직접 경험하고 현장 중심으로 해결한다. 황 교수는 “이는 의지가 강한 장군이나 카리스마있는 대기업 회장이 연상되는 이미지”라며 “이런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선이 끝날 때까지 많은 국민은 MB를 지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의 마음이 바뀐 이유는 뭘까. 황 교수는 “이런 이미지의 사람과는 소통이 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융통성도 없어 보인다. 인간적인 측면보다는 일로 접근해야 한다. 결국 이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의 평가는 갈수록 긍정적인 이미지에서 중성적으로, 결국에는 부정적인 느낌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속하게 흔들리는 이유를 먼저 ‘정체성의 혼란’에서 찾았다. 정체성의 혼란은 ‘기대의 배신’이다. 국민들이 “내가 기대했던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과 공유할 가치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다. 경제와 실용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수단일 뿐 가치는 아니다. 이는 ‘예측 불가능성의 증대’로 이어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국민들이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런 과정에서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우파 노무현’처럼 보기 시작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 ‘정체성의 혼란’ ‘가치의 부재’ ‘예측 불가능성의 증대’ 등은 보수언론과 보수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할 때 단골로 등장했던 논리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장 중심주의도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원인이라고 한다. 황 교수는 “실용을 외치는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현장을 자주 찾는 것”이라며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현장이 중요하지만,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현장지도가 아닌 앞으로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계속되는 ‘현장지도’는 대통령이 아닌 ‘현장소장’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도 “이명박 대통령은 디테일(세부적 사항)에 강하고, 디테일을 풀면 전체 문제가 풀릴 것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대불공단 전봇대 사건과 일산경찰서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이 대통령은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국민은 과연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인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근면성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식 근면성은 21세기의 국민이 바라는 카리스마는 분명히 아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는 저서 〈사람 VS 사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과도한 자기 확신의 연장선상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에게 문제의 원인은 항상 외부에 있다.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교정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는다. 마치 성공한 스타플레이어가 성공적인 코치가 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선수들이 잘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뛰겠다고 나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정혜신씨의 예측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경우 선수처럼 뛰어들고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강한 자기애도 국민과의 인식에 괴리가 생기게 하는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서전 에서 “나는 나를 내리누르는 어떠한 힘 앞에서도 굴복해본 적이 없다”고 썼다. 이런 자신감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 경험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는 옳다’는 자기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인사에서 문제가 생긴 데는 지나친 자기 확신도 한몫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하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선택한 사람은 평소 업무를 통해 검증을 끝냈고, 업무 효용성이 높은 사람이니까 흠집이 있더라도 쓰겠다’는 인식을 드러냈다”며 “이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강도 높은 검증작업으로 고위 공직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의 기대와 어긋나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들, 사명감 갖고 직언해야”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심리적·정신적 적응 기간이다. 적응 기간은 빨리 끝나야 한다. 지금과 같은 낮은 지지율이 계속되면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도 비극이다. 아무런 정책도 펼칠 수 없는 식물 정부가 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안주연씨는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자수성가형 인물들은 강한 자기애적 성향을 보인다”며 “강한 자기애는 바꾸기 쉽지 않은 특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이들은 직언을 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기 쉽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쓴소리를 하는 이들을 계속 곁에 둬야 하고, 측근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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