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광우병 발생부터 최근 미국의 리콜사태까지 쇠고기 소비는 각국 정부 조치에 대한 신뢰와 관련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부- 광우병의 습격]
1984년 12월 영국 서섹스 지방 스텐트 목장에서 사육 중이던 ‘133번 소’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를 흔들고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면서, 걸핏하면 넘어졌다. 이듬해 2월 133번 소는 숨을 거뒀고, 비슷한 시기 목장의 다른 소들도 비슷한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병리학자들이 133번 소의 주검을 검시했다. ‘해면상뇌증’과 비슷하게 뇌 조직이 스펀지처럼 텅 빈 상태였다. 영국 정부가 ‘소해면상뇌증’(BSE·이하 광우병)의 첫 사례를 공식 발표한 것은 133번 소가 이상 증세를 보인 지 2년여 만인 1986년 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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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도축한 병든 소의 잔유물을 다시 소 먹이로 사용하는 게 전염의 주요 경로로 꼽혔다. 영국 정부는 1988년 모든 병든 소를 살처분하는 한편 도축한 소의 잔유물을 소 먹이로 사용하는 걸 금지시켰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도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더 필요했다.
‘일본산은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1996년 영국 정부가 ‘인간 광우병’을 공식 인정하자, 기다렸다는 듯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정부가 앞다퉈 비슷한 발표를 내놨다. ‘미친 소’ 파동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처음엔 몰랐고, 나중엔 감췄다. 쇠고기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게 됐다.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쇠고기 소비량이 극도로 위축된 것은 당연했다. ‘신뢰’의 위기가 부른 결과다.
2001년 9월 일본 지바현에서 광우병 사례가 발견됐다.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광우병 파동이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 현상으로 번진 계기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광우병 사례가 발견된 지 2주가 지난 뒤에야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육우업계에선 ‘일본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 달여 만에 두 번째 광우병 사례가 나왔고, 같은 해 11월 세 번째 감염 소가 발견됐다.
광우병 파동 이전만 해도 일본의 쇠고기 시장은 전도가 양양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쇠고기 소비량은 3배 이상 늘었고,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수입 쇠고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일본 쇠고기 시장의 3분의 2가량이 수입물량으로 채워졌다. ‘안전’에 대한 믿음은 깨졌고,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쇠고기 소비량은 광우병 파동과 함께 70%가량 급락했다. 당시까지 단 1건의 광우병 사례도 발견되지 않았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산 쇠고기 소비량도 덩달아 50%가량 떨어졌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강력한 ‘처방’이 필요했다. 일본 정부는 연간 120만 마리에 이르는 자국산 도축 쇠고기 전량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기로 했다. 2002년 중반에 이르면서 일본의 쇠고기 소비량이 광우병 파동 이전에 비해 10~15%가량 줄어든 수준까지 회복된 이유다. 먹을거리 시장에서 안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미국에서 광우병 사례가 처음 발견된 건 지난 2003년 12월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인 2004년 1월13일 이 성인남녀 237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가 ‘정부가 광우병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적절히 취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신뢰’는 소비로 이어졌다. 전미목축쇠고기협회(NCBA)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3년 27.9kg에 이른 미국인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광우병 파동과 함께 시작된 2004년 28.6kg으로 되레 늘었다. 2005년과 2006년엔 각각 28.4kg과 28.5kg으로 엇비슷했고, 지난해에도 28.4kg을 유지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는 근거가 있는 걸까?
지난 2006년 12월 미 의회조사국(CRS)이 내놓은 광우병 관련 보고서를 보면, 2002년과 2003년 미 검역당국은 연간 3500만 마리에 이르는 도축소 가운데 각각 2만여 마리에 대해서만 광우병 검사를 했다. 광우병 사례가 발견된 이후 검역을 강화하면서 2004년 6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이상 징후’를 보인 소 78만8천여 마리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미 육우업계가 기존 입장을 바꾼 이유
전미프리온질환병리감시센터(NPDPSC)는 지난 4월3일 내놓은 자료에서 “지난해 미국에서 도축된 약 3500만 마리의 소 가운데, 프리온 질환(광우병) 검사를 거친 소는 전년(47만 마리) 대비 90%나 떨어진 4만 마리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특히 “미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프리온 질환 검사를 벌이고 있는 캐나다에서 지속적으로 광우병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사를 강화하면, 광우병 발병 건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광우병 사례는 모두 16건이다. 이 가운데 13건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 ‘다우너 소’에서 발견됐다. 미 농무부가 다우너 소 식용 도축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이유다. 하지만 수의검역 과정에 치명적 허점이 존재한다. 일단 검역을 통과한 뒤에는 이상 증세를 보이더라도 식용 도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우너 소 식용 도축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2월 미 검역당국이 사상 최대 규모인 6만4천여t에 이르는 쇠고기에 대해 리콜을 단행한 것도 미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가 캘리포니아주 ‘홀마크/웨스트랜드’ 도축장에서 다우너 소를 육우용으로 도축하는 장면을 공개한 데 따른 조처였다. 당시 리콜 대상 쇠고기 가운데 1만6천여t은 이미 학교 급식용 등으로 소비된 뒤였다. ‘신뢰’가 무색해진 게다.
그동안 다우너 소 도축 전면 금지에 반대해온 미 육우업계가 최근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미육류연구소·전미육류협회·전미우유생산자연맹 등은 지난 4월22일 다우너 소 도축 전면 금지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미 농무부에 냈다. 〈AP통신〉은 이날 제러미 러셀 전미육류협회 대변인의 말을 따 “소비자들에게 (육가공 업계가) 경제적 이득보다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시점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의 이런 기류 변화에 대해 일부에선 “쇠고기 수입국의 압력이 커진 탓”이라고 풀이한다. 실제로 패트릭 보일 미육류연구소 대표는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미국 소비자들은 물론 개방이 어려운 외국 쇠고기 시장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다우너 소 도축 전면 금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과학적인 사실보다 중요한 것
미 워싱턴주립대 농경제학과 토머스 월 교수와 질 매클러스키 교수는 지난 2004년 1월 펴낸 ‘광우병이 쇠고기 무역에 끼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광우병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행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건 과학적인 사실보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소비자는 자기 정부를 믿고 있다. ‘신뢰’의 근거는 취약하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 ‘믿음’의 근거 역시 취약하기만 하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국민은 그러니 ‘실용적’이다. 정부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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