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까지 혼자 다 챙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 정책 오락가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1부-분노의 역류]
“마차가 말을 끌고 있습니다. 말이 마차를 끌어야 앞으로 나가는데, 마차가 말을 끌고 있으니 말인들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다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50%를 웃돌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마차에 앉아 있는 사람은 말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만 마련하면 되는 것이죠.”
총영사 임명, 외교부 반발도 안 먹혀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의 말이다. ‘마차에 앉은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말’은 공무원과 한나라당을 가리킨다. 이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과 갈피를 못 잡는 공직사회, 따로 놀고 있는 당정관계 등이 이 비유에 모두 포함돼 있다. ‘마차가 말을 끈’ 결과는 여론조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제의 시발점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다. 정부정책 추진과 조직 개편, 인사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이 대통령 한 사람의 입김에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 대통령 특유의 ‘세심함’은 그의 독주를 더욱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5월2일 조용히 임명된 해외 공관장 인사가 단적인 사례다. 정부는 이날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에 김재수 인하대 겸임교수, 주 시애틀 총영사에 이하룡 전 한전산업개발 대표이사 등을 임명했다. 김 총영사는 지난해 대선 때 한나라당이 이른바 BBK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네거티브 대책단의 해외팀장을 맡았고, 임명 시점까지도 이 대통령의 BBK 관련 민사소송에서 공식 변호인을 맡고 있던 인물이다(709호 줌인 ‘김재수는 이명박의 변호사였다’). 이 총영사 역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특보를 지낸 ‘문제의 인물’이었다.
애초 외교통상부에서는 이들 두 사람과,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애틀랜타 총영사 내정 단계에서 사퇴한 이웅길씨 등에 대해 모두 재고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김재수·이하룡 총영사와 이웅길씨 등 문제가 된 세 명의 명단은 모두 청와대에서 내려왔다”며 “우리가 볼 때 부적절한 인사였지만 청와대의 지시가 내려오는 바람에 끝까지 버티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청와대의 지시는 곧 VIP(대통령 지칭)의 명령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외교통상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에 정부 조직이 휘둘리는 현상은 인사뿐만 아니라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에 관한 정부 입장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촛불시위로 번져도 정부는 ‘쇠고기 재협상 불가’를 고집했다. 5월6일까지만 해도 정부 입장은 “개정을 요구해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방침은 이튿날, 이 대통령이 전라북도 업무보고에서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발언하자 완전히 뒤집어졌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5월8일 부랴부랴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협상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언제라도 미국과 체결한 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겠다”고 발언한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무원 조직 전체가 ‘갈대’처럼 이리저리 휩쓸려다닌 셈이다. 대통령의 말이 지나친 ‘권위’를 갖게 되며 빚어낸 부작용은 심각하다. 공무원들이 소신을 펴기보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이는 다시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시행도 되기 전에 백지화된 연비 1등급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료 및 공영주차장 주차료 할인 제도였다. 4월25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이 제도는 며칠 뒤 국토해양부 반발로 무산됐다. 요약하자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에너지 절약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각 수석 및 비서관실에 ‘점심시간엔 실내 전등과 컴퓨터를 모두 끄고,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올 땐 가급적 전등을 켜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초에는 각 부처에 에너지 절약방안 마련을 당부하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관실의 전기요금까지 챙기는 이 대통령의 꼼꼼함이 정부의 설익은 정책 발표를 낳은 사례였다.
이 대통령의 ‘세심한 독주’로 인한 민심 이반이 계속되자 여당 내부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나라당의 ‘친이’계 핵심 의원은 익명을 전제로 “대통령이 지나치게 섬세하고 꼼꼼한 나머지 할 말, 안 할 말을 다 하면서 나서고 있다”며 “대통령 혼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스템’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 쪽 핵심 관계자 역시 “대통령은 원칙과 방향을 제시한 뒤 나머지는 공직사회에 맡겼어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다 보니 정작 중요한 마스터플랜이 보이지 않는다”며 “장차관 정도는 대통령 입맛대로 움직일지 몰라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낙관적이진 않아
이명박 대통령이 맞닥뜨린 위기는 정책 혼선에서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문제도 포함돼 있다. ‘여의도 정치’를 워낙 가볍게 생각하다 보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이 대통령을 힘있게 받쳐줘야 할 여당이 크게 둘로 쪼개진 형편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민심 이반 현상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불행하게도 묘수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책의 문제든 정치의 문제든 결국 본질은 ‘신뢰의 붕괴’에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혼선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정치의 부재로 친박 진영과 갈라섰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5월 초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28.5%까지 떨어졌다고 당에 보고했다. 여의도연구소의 보고 내용에는 앞으로의 전망도 크게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염두에 두면 국민이 크게 열광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의도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호재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북한 핵 문제가 해법을 찾아가면서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조금 완화되리라는 기대와 당내 통합을 이루는 것 정도다. 반면 공기업 민영화 등 현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정책은 상당한 갈등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지율을 크게 반등시킬 소재로 꼽지 않았다.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광우병 파동이 마무리될 때까지 좀더 빠질 수도 있다”며 “다만 전당대회 전후로 당내 통합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북관계 등이 해법을 찾아간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점진적인 상승을 기대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지지율이 추락하는 것은 순간이었지만, 떨어진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원래 해답은 평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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