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존재들의 분노…미국산 쇠고기뿐 아니라 우열반과 0교시 등 자신들의 삶에 위협 느껴
[1부-분노의 역류]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5월6일 저녁 9시께 서울 청계광장.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 반대 촛불문화제’ 단상 위로 중학생 넷이 뽀르르 올라갔다. 저녁 7시 촛불문화제 시작 때부터 계속 이어진 ‘자유발언’에서 드디어 마이크를 잡은 수원 ㅅ중학교 3학년 김윤덕(15)양은 “많이 열받아서 올라왔습니다. 국민들이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먹지 말라’고 하질 않나, 0교시에 야간자율학습에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라고 외쳤다. 김양은 “아~ 떨립니다”라고 한 박자 쉬고는 “‘미친 소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텔미춤’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곧이어 원더걸스의 노래 가 흘러나왔고, 방금 전까지 뜨겁게 말하던 네 명의 중학생은 음악에 따라 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함께 춤을 춘 홍수빈(14·수원 ㅇ중 2)양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춤을 춰보기는 처음이에요. 떨릴 줄 알았는데, 흥분되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주니까 신이 나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넷 가운데 유일한 남학생인, 얼굴에 하얀 가면을 쓴 친구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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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참가한 제각각의 이유들
최근 전국의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움직임 속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10대들의 움직임이었다. 5월2일과 3일, 6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잇따라 열린 ‘촛불문화제’ 참석자 상당수는 교복을 입은 소년·소녀들이었다.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대전 은행동 중앙로, 부산 서면 태화백화점 앞 등 지방의 촛불문화제 현장에서도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3일 대전에서 촛물문화제에 참가했던 시민 황은권씨는 “참석자의 70~80%가 중·고등학생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장’을 찾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어색한’ 점이 많았다. 동일한 구호도 외치지 않았고, 집회 도중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상당수는 친구들과 ‘문자질’을 하거나 잡담을 나누면서 “미친 소를 청와대로” 또는 “우리는 살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현장을 찾은 이유 또한 다들 제각각이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연예인 팬클럽까지 등장했다. 동방신기의 팬클럽 ‘카시오페아’ 회원들은 “동방신기를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며 자리를 찾았고, ‘인터넷 얼짱’(얼굴 예쁜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진 경우)들의 비리를 캔다는 ‘쭉빵클럽’ 회원들도 한데 나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얼굴에 피어싱을 한 박아무개(서울 ㄱ여고1)양은 “인터넷 다음 카페 ‘엽기 혹은 진실’에 주로 들어가는데, 거기엔 광우병과 관련해 따로 항목이 만들어져 있어요. 거기서 채팅하며 얘기하다가 아이들과 나오기로 했죠”라고 말했다.
이렇듯 아직 ‘어리고’, 다양한 지향과 취향을 가진 10대들이 ‘광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제가 15살이에요. 저 지금 쇠고기 먹고 죽으면 어떡해요? 결혼도 못해보고 죽기 싫어요.” 이날 청계광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던 정현아(14·인천 ㅅ여중 2)양은 “5월8일까지 나흘 동안 중간고사 기간이지만 (촛불시위 참여는) 내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유란(15·서울 ㅅ중 3)양은 “먹기 싫으면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하는데, 안 먹을 수가 없잖아요. 학교급식, 군대급식으로 들어간다잖아요. 먹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먹지 말라니요. 어른들이 다 벌여놓고 정작 피해는 우리가 봐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0대들의 이런 반응은 비단 ‘광장’을 찾은 ‘적극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난 5월6일 오후 하굣길에서 만난 남아름(14·서울 ㅅ여중 2)양은 “며칠 전에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 서명했다”며 “인터넷을 하면서 자연스레 광우병이 무엇인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만난 홍성빈(17·서울 ㅅ고 2)군도 “주변에 촛불시위에 나간 친구는 없지만, 미국에 쇠고기를 개방하고 미국에 약하게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을 다들 욕한다”며 “주변에 미국 쇠고기 수입을 좋게 보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삶의 영향에 즉각적인 반응
‘행동’의 수준차와 별개로 10대들 대부분이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10대들의 이런 움직임은 교육정책에 대한 반감과도 맞닿아 있다. 5월6일 저녁 청계광장을 찾은 강민주(15·서울 ㅅ중 3)양은 “0교시 한다, 우열반 한다 말이 많잖아요. 그런데 우열반은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1~40등반, 41~80등반, 81~120등반. 그렇게 나누는 거 아니에요? 지금도 선생님들이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 위주로 수업하고, 그 아이들 예뻐해요. 그런데 못하는 아이들끼리 모아놓으면 잘하겠어요? 제가 옛날에 우열반 해본 적이 있는데, 우등반 아이들이 시험문제도 더 많이 알고, 시험도 계속 더 잘 보고…. 우열반 갈리는 순간, 잘하는 애들, 못하는 애들도 영원히 갈리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현아양 또한 “우리 학교는 아침 8시부터 교육방송 틀어놓고 학교에 오라고 한다”며 “학교 갔다가 또다시 학원에 가야 하고, 그러고 집에 오면 새벽 1~2시다. 잠은 언제 자란 말이냐”라고 한숨을 쉬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거랑 세상은 너무 다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평소 쌓였던 불만을 와르르 쏟아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광우병 논란에서 촉발된 10대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정부와 보수 언론은 ‘전교조 배후론’을 펴거나 아이들이 괴담에 현혹된 것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20대와는 또 다른 10대들의 이런 움직임은 엄연한 사회적 현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과)는 “10대들은 잊혀진 존재였다. 매장돼 있던 10대가 무덤 밖으로 나오면서 정치성이 표출됐다는 점에서 문화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과)는 좀더 적극적인 해석을 내놨다. “10대들이 안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다. 10대들은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가장 직접적으로 ‘변화’를 겪은 세대다.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우열반 허용 등 발표된 정책들은 학교 현장에서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들이니, 당사자인 10대들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장 분명한 점은 10대들의 ‘외출’이 직접적인 자기 삶에 대한 위협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자기 식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위협 앞에서 분노했으며, 자신들의 일상을 제도적으로 위협하는 교육정책들에 들끓었다. 노명우 교수는 “어른들이 천천히 논의를 도모하고 중지를 모으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디지털 세대인 아이들은 단숨에 그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뱉어낸다”고 말했다.
‘배후’를 의심하는 건 블랙코미디
물론 아이들의 ‘반대’ 목소리에는 ‘싫다’는 있을 뿐 ‘어떻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바탕한 이성적 대응이 아니라는 ‘어르신’들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 10대들에게 객관과 이성, 대안을 주문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수 있다. 이택광 교수는 “어른들에게 남은 것은 아이들의 ‘싫다’를 반영해줄 제도적·이념적 대안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내용의 공허함을 상쇄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새로운 방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방식은 “아무 생각 없어요. 친구 따라 왔어요”(서울 ㅎ중 2년 윤아무개군)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꿀릴 것 없는 명랑함과 솔직함, 당당함이다. “이명박 대통령요? 물론 비호감이죠”라고 말하는 명랑함 등이다.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배후’를 의심하며 ‘괴담을 수사하겠다’는 것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정치의 눈으로, 보수나 진보의 눈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려는 순간 제대로 된 이해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을 통해 계몽이 됐다. 이슈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많고 생각들이 진화했다. (10대들이) 출몰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것을 진지하게 논의해야지 조·중·동처럼 ‘다시 학교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정치성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독’일 경우엔 파시즘, ‘약’일 경우엔 민주주의의 승화가 될 텐데, 잘 승화시키는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이택광 교수가 내놓은 ‘조심스런 접근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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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흔히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 일간지들이 지난 노무현 정권 당시 계속적으로 만들어내려는 관념이 ‘20대의 보수화’였다. 이른바 ‘386세대’로 불리는 30대와 40대에 비해 보수적 정치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식이었다.
지난 대선 결과는 이런 성향을 일부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SBS가 대선 당일인 2007년 12월19일에 1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출구조사를 보면, 19살을 포함한 20대에서 이명박 후보는 42.5%, 정동영 후보는 20.7%, 이회창 후보는 14.0%를 얻었다. 이명박 40.4%, 정동영 28.3%, 이회창 14.0%였던 30대의 표심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투표 성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에 드러난 20대의 마음은 달랐다. 20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24.6%에 그쳤다. 평균(36.4%)보다 크게 낮다. 20대 초반인 20~24살 구간에서는 18.3%였다. 반면, 30대의 지지율은 32.9%였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의견에서도 20대의 46.1%가 수입 자체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20~24살 구간에서의 반대율은 48.3%에 이르렀다. 20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질 좋고 싼 고기’로 인식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본인의 경제 상황과 삶의 질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에서도 20대에서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19.6%에 불과했다. 20대의 ‘나빠질 것’이란 답변율은 36.8%로 가장 비관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보는 세대임을 확인시켜줬다. 20대들에게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잘하고 있는 분야’를 물어본 결과에서도 ‘없다’는 답변이 29.5%로 가장 많았다.
2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도 22.0%로 세대별로 봤을 때 가장 낮았다. 직업별로 보면 대학생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20.3%에 그쳤다. 그러나 이 표들이 통합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으로 간 것은 아니다. 20대에서는 지지 정당이 없다는 답변이 37.5%였다. 무당파층이 가장 많은 세대가 20대이기도 하다. 대학생 무당파층도 34.8%에 이르렀다.
현재의 20대는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갈 곳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는 게 더 옳은 진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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