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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 파워, 수치로 입증된다

등록 2008-02-29 00:00 수정 2020-05-03 04:25

역대 정권 파워 엘리트 196명 분석…고려대·기독교·영남·미국 유학파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지난 2월18일, 대통령직 인수위 대회의실로 쓰이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별관 2층.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부터 순서대로 국무위원 15명을 단상으로 올라오게 한 뒤, 한 명씩 인사를 시켰다. 여성부 존폐 등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통합민주당과의 협상이 이날까지도 타결되지 않아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느꼈던 탓인지, 이 당선자의 표정이나 말씨가 영 딱딱했다. 그는 ‘연령대가 높고, 민간 출신 인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내각 인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각은 국민이 기대하는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선진, 일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륜이 있어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이런 경륜 있는 내각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 않나 해서 (이분들로) 결정했다.”

이 당선자가 국무위원들의 ‘경륜’을 강조했지만, 기실 강조한 건 ‘경제’였다. 그는 국무위원을 발표하는 이날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조차 “저는 ‘반드시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첫 내각 인사의 초점은 경제였다. 대통령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 비서진의 인사에서 그런 현상은 더욱 도드라졌다. 수석 비서진 9명 가운데 김중수 경제수석 말고도, 곽승준 국정기획수석과 박재완 정무수석, 이주호 교육문화수석은 모두 ‘경제통’(표 참조)이다. 김윤재 정치컨설턴트는 “경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과도한 집착이 인사에 드러나는 것 같다”며 “교육이건 문화이건 모두 경제로 풀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가 괜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이라도 해주듯,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코디네이터’가 될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내정자는 이날 “변화의 시대에 외교안보가 경제살리기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엔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사 스타일은 지도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경제적 성과와 기대감을 요체로 한 이명박의 리더십이 경제에 방점을 둔 인사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청와대 수석 비서진의 윤곽이 드러나자 보수 언론조차 ‘청와대학’이라고 비아냥거릴 만큼, 경제 전공자가 많은 교수 출신으로 짜인 것도 이명박 리더십의 특징에서 나온 현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학자를 지독히 선호한다. 실제 이 인수위원회의 위원장을 비롯한 인수위원 24명과 청와대 수석 비서진 9명,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15명 등 이명박 정권 ‘파워 엘리트’ 49명을 분석했더니, 교수 출신이 전체의 34.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학자가 전체의 3.9%에 불과했던 김대중 정부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전체 분석 대상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각각 인수위원, 초대 청와대 수석비서진, 초대 총리 및 국무위원 등 모두 196명이었다. 이명박 정권 엘리트의 박사 비율 또한 높다. 전체의 65.3%가 박사다. 석사까지 하면 무려 88%다.

교수 출신이 34.6%

왜 이렇게 학자의 비중이 높을까?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행동가형인 이명박 대통령은 필요할 때 상황에 맞는 아이디어와 의견만 제시하는 이론가형 참모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그의 불신이 큰 것도 한몫했다. 스스로 “정치인으로서 경력이 없고, 정당 움직임에 대해 잘 아는 바도 없다”(2007년 8월22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고 정치와 거리두기를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인보다 학자를 더 중용할 수밖에 없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명박 정부 인사는 테크노크라트 인사라 할 만하다”며 “어떤 문제에 대한 정치적 접근을 배제한 채, 효율성을 가이드라인으로 해서 기술적으로 접근하려는 특징이 보인다”고 말했다. 묘하게도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실용’이란 단어와도 딱 맞아떨어지는 분석이다. “이론적”이라거나 “정무적 판단이 떨어진다”는 판에 박힌 비판이 따라다니지만, 학자 출신이 많다는 것만으로 인사를 문제 삼기엔 궁색한 면도 있다. 인수위의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이 일찍이 “비서실은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하므로, 이론에 밝고 미래 예측 능력이 나은 교수를 선호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고대 14.2%, 영남 42.8%

정작 문제는 조금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학교 출신이 거론되고 교수의 자질론이 불거지는 건 분명 문제일 수 있다. 고려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나온 대학이다. 이 대학 출신들은 49명 중 7명(14.2%)에 이른다. 그나마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 막판에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교육부 장관에 내정되지 못해 줄어든 수치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3%대였던 비율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고려대 출신 인사의 등용을 무조건 비판할 수 없겠지만, 대선 훨씬 이전부터 ‘특수한 관계’를 지녀온 모교와 모교 출신 인사들을 쓰는 데 분명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김윤재 정치컨설턴트는 이런 ‘사적 네트워크’의 작용을 “특정 학교나 교회 출신이 많다는 건, 국민에게 대통령이 한쪽을 편들거나 특정 집단을 편드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한겨레신문사와 의 인물 데이터베이스에서 종교 확인이 가능한 28명(전체 49명에서) 중 기독교인은 64.2%(18명)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강남에 위치한 소망교회를 다니는 인사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 강만수 장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등 모두 4명이나 된다. 도저히 우연의 일치라곤 보기 어렵다. 숙명여대 교수인 박미석 수석은 이 학교의 총장인 이경숙씨와 닿고,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의 부인인 표명운 숙명여대 약학대 교수와도 닿는다.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박 수석이 가정관리학자로서 전공과 상당히 동떨어진 사회정책수석을 맡은 것도 논란거리다.

이명박 정부의 파워 엘리트들의 해외 유학 비율도 다른 정권에 비해 월등히 높다. 외국에 나가 학위를 따온 경우만을 따졌더니, 전체의 65.3%가 유학 경험자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이 된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았다. 김대중 정부 때 17.6%로 가장 낮았고 노무현 정부 때는 55.5%였다. 특히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온 인사가 유학자 출신 중 75%에 달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이런 현상이 미국식 기능주의적, 경제주의적 사고와 (대외 관계에서) 미국 중심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인수위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접긴 했지만 영어 몰입식 교육 정책 논란이나, 인수위원장의 ‘오렌지’ 발음을 둘러싼 헤프닝도 이명박 정부 엘리트들의 미국에 쏠린 학문적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의 분석 결과 ‘이명박 권력 지도’가 영남에 쏠려 있는 것도 확인됐다. 분석 대상이 된 49명 중 21명인 42.8%가 영남 출신으로 나타났다. 26.5%인 서울·경기 지역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호남은 8.1%로 역대 정부 중 최저치로 나타났다. 영남의 비율은 28.5%(14대) - 23.5%(15대) - 29.6%(16대)에서 이번에 크게 늘었다. 충청은 14.2%로 과거에서 큰 변동은 없었다. 인수위 쪽은 ‘지역 안배가 아닌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남 편중이란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인수위는 일부 국무위원 인선 막판에 출신 지역을 고려했다. 인수위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출신 지역을 원적지인 호남으로 분류하는 코미디를 벌이기도 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사장(정치학 박사)은 “널리 인재를 구해서 그 결과가 편중돼 있다면, 그게 말이 되겠냐?”며 “우리 사회의 인재가 어느 지역이나 교회에 더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 학교, 교회, 직군에 몰리지 않는 ‘좋은 인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지역주의가 여전히 갈등의 한 축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이라면 그런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나타난 결과인 ‘영남·교수·교회·강남’이란 단어들이 이명박 정부의 초기 엘리트들을 특징짓게 됐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인수위 관계자는 영남 편중에 대해 “대통령이 아무리 실용적이라고 하더라도 영남의 아우성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라며 “인재풀이 너무 적었고, 정권을 잡은 지 오래돼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고 말했다.

부자와 강남도 주요 특징

‘부자’와 ‘강남’이란 단어도 이명박 권력지도의 중요한 특징이다. 2월21일 공개된 장관 15명의 ‘인사청문회 요청 사유서’를 보면, 140억원대의 자산가인 유인촌 장관을 포함해 국무위원 후보들의 평균 재산이 39억원으로 집계됐다. 노무현 정부 첫 내각(13억원)의 세 배다. 이명박 정부가 대폭 완화하겠다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 대상자만도 12명에 이른다. 후보자들이 소유한 아파트 등 부동산의 절반 이상이 강남에 있다. ‘강남 부동산 부자 내각’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이 대통령의 바람처럼 국가 경제를 살리는 데 적임자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자신들이 ‘경제를 잘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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