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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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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들의 돈과 땀으로 일군 소송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야스쿠니의 주술에서 일본을 깨우기 위해 시작한 한국인 합사 피해자들의 소송

▣ 김은식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우리 국민 가운데 야스쿠니신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막상 “야스쿠니신사가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매년 8월15일만 되면 한·중·일 언론들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일본 쪽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간다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면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대답이 궁색해진다. 애써 “침략전쟁을 도발한 A급 전범자들이 합사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줘도 “그게 지금의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들이 우리 영토를 탐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본 총리가 그곳을 참배한다고 해봤자 우리가 당장 먹고사는 데 무슨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피고는 정부인가 신사인가

1997년 이희자씨의 부친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나는 무덤덤했다. 그러나 이희자씨는 달랐다. 그는 가족들에게 생사 여부도 알려주지 않고 반세기 동안 기다리게 해놓고서, 야스쿠니신사에는 전사 사실을 알리고 그들의 신으로 만들기 위한 의식을 치른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무책임한 행태에 치를 떨었다. 이희자씨는 “그것은 죽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인격까지 무시한 것이므로 단죄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야스쿠니신사에 한국인이나 대만인이 합사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30년 전인 1978년이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대만인들에게 야스쿠니신사는 대만 출신 군인·군속 전몰자의 합사 통지서를 유족들에게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만인 유족들은 거센 항의를 했고, 한국인 유족들도 “합사 취하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2만1천여 명의 한국인, 2만8천여 명의 대만인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는 당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아버지의 합사를 철회해달라는 유족들의 피울음에 대한 야스쿠니신사 쪽의 답변이다. 그들은 “징용 당시에 일본인이었고, 전쟁터에서 죽으면 야스쿠니의 신으로 모셔진다는 것을 알고 갔기 때문에 야스쿠니신사에 모실지 말지는 유족의 의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또 “야스쿠니신사의 신이 된 이상 취하해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논리는 종교 교리로 견고하게 포장돼 있었다. 결국 남은 길은 법으로 문제를 푸는 것밖에 없었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하 소송을 준비하면서 일본의 재판지원회와 변호인단(일본인 변호사 3명과 재일한국인 변호사 2명)은 고민에 빠졌다. 피고를 일본 정부로 할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공동 피고로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사법부라는 국가기관을 통해 야스쿠니신사라는 종교시설을 상대로 합사취하 소송을 벌이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을 못박은 일본 헌법 20조와 상충할 수 있다는 고민을 떠안게 됐다. 둘째, 야스쿠니신사는 천황제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송을 재일 한국인 변호사들이 맡을 경우 우익들의 테러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지난해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자,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항의한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의 자택에 일본 우익이 방화를 저지르고 할복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일본 우익들은 이미 야스쿠니신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 유족들은 변호인단의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무리한 소송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 유족들은 2001년과 2003년 일본 정부만을 상대로 합사취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원고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친족이, 침략전쟁의 주모자 및 적극 참가자와 함께 침략민족 고유의 종교에 의해 침략국가의 주권자(원수) 혹은 상징에 충성을 다한 자로 모셔지고 있는 것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소송을 진행하려면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원고들의 증언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부터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의 수집, 각종 의견서와 감정서 작성, 현장 검증이 따르게 되고, 치열한 법리공방이 이어지게 된다. 또한 원고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는 원고들의 왕복 교통비, 숙박비를 들여 일본으로 초청해야 한다. 이 모든 비용을 감당한 사람들은 일본의 재판지원회와 양심적인 변호인단이었다.

그 모든 노력에도 2006년 5월 도쿄 지방재판소는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신사에 전사 사실을 통지한 것은 행정사무의 일환이며, 합사 취하는 야스쿠니신사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들은 즉각 항소했고 지난 2월26일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새로운 합사취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불행했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야스쿠니신사의 위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일본의 일반 시민들이 이제는 야스쿠니신사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평범한 일본 시민들은 야스쿠니신사를 그저 국가 추도시설이나 일본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토속신앙의 신사와 다르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은 신사참배가 일본 고유의 전통적 풍습이며, 전몰자를 추도하는 시설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 않느냐며 주변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우리는 전사자를 국가적, 공적으로 추도할 필요가 있다면 굳이 특정 종교시설에서 특정 종교의례를 통해 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일본 정부나 야스쿠니신사를 신봉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더군다나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서 많은 피해를 끼친 데 대해 마음으로 사과한다면서 굳이 주변국에 엄청난 희생을 끼친 전범자들을 순국선열로 기리고, 침략전쟁을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이었다고 칭송하고 있는 곳을 택한 것은 기만이 아닌가 반문하고자 한다. 우리가 야스쿠니신사를 문제 삼는 것은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점을 낱낱이 해부해 도려내야 할 부분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올곧게 바로잡기 위함이다. 일본 사회의 체질을 개선시켜 불행했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야스쿠니 합사 피해자 돕기 성금운동

모욕받는 혼백을 위해 나서자

우린 몰랐습니다. 2001년 6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장장 5년이나 이어진 그 합사취하 소송 재판 비용을 댄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태평양전쟁 피해자 유족 단체들이 어려운 지경에 빠질 때마다 “조금만 더 힘내자”며 힘차게 손을 건넸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우리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에 분노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에 분노하고, 축구 한-일전에 분노할 때 동북아 평화를 바라는 일본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인 재판 지원을 위해 회의를 하고, 변호사를 수배하고, 한국인 피해자들의 일본 초청 비용을 모으기 위해 적잖은 돈을 마련해왔습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2만1천여명의 우리 조상들의 혼백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난 소송에서 패소한 한국인 유족들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다시 한 번 소송에 나섰습니다. 야스쿠니신사에 억눌려 참을 수 없는 모욕을 겪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혼백을 위해, 그 비용을 우리 손으로 모을 수는 없을까요.

계좌이체 우리은행 1006-401-235747
예금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주관 민족문제연구소, ‘노 합사(NO 合祀)’,
문의 민족문제연구소(02-969-0226), 홈페이지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www.anti-yasukuni.org),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38-29 금은빌딩 3층(우편번호 13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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