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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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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어겼니? 공개사과하렴”

등록 2006-07-20 00:00 수정 2020-05-02 04:24

체벌 없는 교실을 꿈꾸는 교사들은 어떻게 학생들과 소통하나… 칭찬통장·벌점제도 효과 없어… 자율 대화로 반성하는 능력 키운다

▣ 김민경 인턴기자 yukishiro9@naver.com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대부분의 교사들이 체벌을 학생 통제의 편리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만, 교육 현장 한편에서는 ‘체벌 없는 교실’에 대한 고민도 무르익고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칭찬 통장’ ‘다트게임 벌칙’과 같은 대안적인 수단이 몇 차례 소개되긴 했지만, 체벌에 익숙한 교육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기엔 한계가 많다. 교육의 목표,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 교사-학생 사이의 소통방식 등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체벌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체벌 제로 교실’을 가꿔가는 교사들의 주장이다.

“모둠수업에는 시끌벅적함이 필수”

7월13일 오후 1시 서울 대림동 대동초등학교 6학년 8반 교실에선 마술 수업이 한창이었다. 기말고사도 끝나고 1학기 진도도 다 나간 6교시 사회 시간, 담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마술 재료인 고무줄을 나눠주고 있었다.

교사가 실물화상기로 고무줄 마술을 시연하자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따라 했다. 어려운 단계의 설명에 이르자 아이들의 집중력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굳이 목소리를 높여 집중을 요구하진 않았다.

수학적 원리를 응용한 마술도 선보였다. 5×5의 표에 1부터 25까지의 숫자를 쓰고 일정 규칙에 따라 숫자를 지워가면, 어떤 경우에도 마지막 5개 숫자의 합은 65가 되는 마술이다.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다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원리를 배운다. 군데군데 딴 짓을 하고 옆자리 친구와 장난을 치는 아이도 눈에 띈다. 하지만 수업 진행이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다. 뒷자리의 한 아이가 갑자기 큰소리로 떠들자, 근처 아이들이 “야, ○○○!” 하며 눈치를 준다. 떠든 아이는 머쓱해하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아이들은 손을 들고 허락받는 과정 없이 자유롭게 질문했다. 교실은 무질서해 보였다. 선생님은 잡담하는 아이들 때문에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가 소리를 질러가며 학급 전원의 일사불란한 주목을 이끌어내지 않아도, 수업은 물이 흘러가듯 무리 없이 진행됐다.

“체벌을 대신할 방법을 연구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학급 담임인 이기규(32) 교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벌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하는 거지, 체벌의 대안을 연구하는 건 아니에요.” 취재 도중에 만났던 여러 교사들이 체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호소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여러 번 주의를 줘도 수업 진행을 방해하는 아이들, 친구를 괴롭히거나 심한 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그게 꼭 체벌을 해야 하는 상황이냐”고 되물었다. “체벌의 필요성은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한테서 생겨난다기보다는 아이의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보는 교사의 시각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이들 처지에선 심하게 떠드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교실은 조용해야 한다, 전원이 집중해야 한다고 여기는 선생님이라면 떠드는 아이들에게 민감하고, 그걸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끼겠죠.” 모둠수업처럼 아이들이 몸을 부대끼며 서로 놀고 배워야 하는 수업 형식에서는 시끌벅적함이 필수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교사가 교과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수업에선 집중을 요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시끄럽더라도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행위를 장려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칭찬스티커제, 행동교정으로 이어지지 못해

학생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 교사는 ‘공개 사과’ 제도를 도입했다. 이 학급에선 싸움을 하거나 고자질을 했을 때, 모둠수업에서 너무 떠들어 수업을 방해한 경우엔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 공개 사과는 학급에서 진지하고 심각한 사건이다. 교사가 나서서 화해시키지 않는다. 당사자와 미리 선출된 ‘분쟁조정위원’ 두 사람이 공개 사과를 진행한다. “선생님이 체벌을 함으로써 아이들이 스스로 사과하는 능력을 잃은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타율적인 체벌 대신 자율적인 대화를 통해 반성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공개 사과에 붙일지는 누가 결정할까. 교실 뒷벽 게시판의 ‘우리 반 약속’에 명시돼 있다. 이 약속은 학기 초 학습회에서 결정된 합의사항이다. 물론 처음엔 교사가 초안을 제공한다. 약속은 학급회의를 통해 수정할 수도 있다. 지금 붙어 있는 건 지난 5월18일 새로 발효된 버전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도 수시로 보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벽에 붙여놓았단다.

학급회의는 매주 정기적으로 열린다. 필요에 따라 몇 명의 제청을 거쳐 임시회의를 열 수도 있다. 회의에서는 숙제 양이 너무 많으니 줄여달라는 안건에서부터 체육 수업에 관한 제안, 친구를 기분 나쁜 것에 빗대어 놀린 일이 있었는데 그러지 말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안건을 학생들이 직접 제안한다. 선생님이 정해준 생활 목표에 따라 실천 사항만 정하는 회의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 셈이다. 의결은 만장일치제다. 소수 의견도 끝까지 토론하게 해 자기 의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이 교사의 시도는 단순한 체벌 찬반 논쟁이 간과하고 있는 교육관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지 않게 하고 큰소리로 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생활지도’나 ‘인성교육’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는 ‘칭찬 통장’ ‘칭찬 게시판’ ‘다트게임 벌칙’ 등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요즘 초등학교에서 널리 시행 중인 ‘칭찬스티커제’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동기 유발의 구실은 하지만 행동 교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교조 참교육실천회원인 현원일 교사는 “행동을 교정하려면 선생님과 아이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자율성과 자발성을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며 “칭찬하기나 스스로 벌칙 정하기를 하더라도 그 효과를 ‘통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소통 과정, 스스로 벌칙을 정하고 친구들과 합의하는 과정, 칭찬거리를 찾고 잘못을 스스로 공개 사과하는 자발성에 교육의 방점을 찍어야만 이런 대안들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교사들의 재교육에도 관심 쏟아야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벌점제도 체벌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벌점은 일상적인 규제와 통제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벌점이 많이 쌓인 아이에게 체벌이 뒤따르곤 한다는 현실도 애초의 제도 도입 취지와 맞지 않다. 무엇보다 일선 교사들은 벌점제가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자율성을 함양하지도, 체벌처럼 일시적이지만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생활지도의 기조로 삼고 있는 ‘기본이 바로된 어린이’ 캠페인도 체벌을 지양한다는 긍정적인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질서 훈련을 생활지도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체벌 없는 교실을 위한 교사들의 노력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으려면 교사들의 재교육에도 사회적 관심을 쏟아야 한다.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교수들한테서 외국 교육학자들의 이론은 익혔지만 정작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 뜻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는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는 교사들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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