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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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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바다, 바람과 함께 나타나다

등록 2005-07-07 00:00 수정 2020-05-03 04:24

제주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간 자전거여행의 추억
산굼부리에서 출발해 4박5일 동안 피곤을 잊게해준 풍경, 풍경들

▣ 이예준/ 2005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해외팀장

서른이란 나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생방송 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시곗바늘 같은 일상 때문이었을까? 방송국에서 일하던 그즈음, 불쑥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던 내게 선배 언니가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을 제안했다. ‘일주’라는 말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라 만사 제쳐두고 날을 잡아버렸다.

돌담길을 따라 피어있는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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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벌써 반팔 차림의 젊은이들이 선보이던 4월 중순, 따뜻한 남쪽 나라를 꿈꾸며 제주공항에서 내린 우리를 반긴 것은 몰아치는 비바람을 견디며 애처롭게 서 있는 야자수 나무였다.

자전거를 빌리긴 했지만 앞길이 막막하던 차에, 우리는 운좋게도 현지 주민의 트럭을 얻어탈 수 있었다. 제주행이 처음인 나는, 고향 자랑을 늘어놓던 친절한 트럭 주인에게 ‘한라산이 어디냐’고 물었고 그는 당연한 듯 이렇게 대답했다. “제주도가 한라산이죠.” 그래, 그 말이 맞다. 제주도가 바로 산이자 섬이고, 섬이자 산이지….

곧 날이 개고 차에서 내린 우리는 원래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하려던 계획을 바꿔, 그가 비밀을 털어놓듯 가르쳐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산굼부리에서 1112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97번 도로를 못 미쳐 정석항공관으로 난 길은 그의 말대로 정말 ‘환상’이었다.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굼부리를 지나 내쳐 달리는 길에는, 검은 돌담길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노란 유채꽃,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그림 같은 집들, 곳곳에 솟은 크고 작은 오름 등 자전거의 속도로 보았기에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여정을 시작한 첫날, 눈은 즐거운 반면 밤에는 아픈 다리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러나 한 이틀이 지나니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밟으며 경치를 감상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루 10시간을 달려도, 오르막길과의 싸움에 지쳐도, 아름다운 주변 경치와 내리막길이 주는 짜릿함에 힘든 줄 몰랐고, 가끔은 드라마 얘기에 열을 올리고 사랑에 관한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는 여유까지 부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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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 동안 제주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성산 일출봉, 우도, 영화박물관, 섭지코지 그리고 용두암까지 유명 관광지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하지만 누군가 제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나는 늘 ‘길’과 ‘바다’라고 말한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느낀 제주의 길과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의 길동무가 되어준 그 넓고 푸른 제주의 바다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명소였다. 한마디로, 자전거 페달을 멈추고 돌아보는 그곳이 바로 ‘환상의 여행코스’였다.

4월 제주, 내 인생 최고의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향하던 우리는 애월읍 어딘가의 아늑한 레스토랑에서 푸짐한 오므라이스 한 그릇씩을 비우며 제주와 조촐한 송별식을 가졌다. 그 집 이름이 ‘풍경’이었던가….

그때의 여행 이후 나는 제주도에 가겠다는 이들에게 꼭 자전거 여행을 권한다. 그리고 간혹 지금까지 했던 여행들 중 최고가 뭐냐고 묻는 이에게는 ‘그해 4월, 제주에서…’으로 시작되는 긴 수다를 늘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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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체크!

제주도로 가는 배는 남해안에서만 출발하는 게 아니다. 수도권에서 1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인천에서도 출발한다.

오하마나호는 금요일 저녁 7시에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해 토요일 오전 8시 제주항에 입항한다. 1주일 동안의 자전거를 타고 토요일 저녁 7시 돌아오는 배를 타면 인천에 일요일 오전 8시에 닿는다. 인천항을 떠나면서 서해의 해넘이를, 추자도 부근에서 남해의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이 밖에 오하마나호는 같은 시간 월·수요일에 인천을 출발해, 화·목요일에 제주를 출발한다. 1등실은 2인 19만원, 침대 8~20개가 있는 2등실은 1인 7만원, 플로어 형태의 3등실은 5만2900원이다. 문의 청해진해운 032-889-7800.

비행기(인천~제주 성수기 편도 9만2900원)를 이용하면, 자전거 여행은 4박5일이 일반적이다. 항공권과 자전거를 묶은 패키지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 별도의 요금을 주고 자전거를 수하물로 부쳐야 하지만, 배를 탈 때는 무료로 직접 끌고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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