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10년을 함께 한 활동가 출신 김기식 사무처장 인터뷰 “생활운동 전환은 위험한 발상”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김기식 사무처장은 말 그대로 참여연대와 함께 ‘커왔다’. 대학 졸업 뒤 노동운동에 전념한 그는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시민운동에 발을 담갔다. 애초 ‘박변’(박원순 변호사) 같은 명망가는 아니었으나 특유의 기획력과 집중력을 인정받아 2002년 상근 활동가로서는 처음으로 사무처장에 올랐다. “생각해보면 노동운동을 못하지는 않았었다”는 그는 “내가 열심히 살고 원칙에 충실하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과 사회가 그만큼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에 참여연대에 투신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참여연대 10년을 ‘무시당하지 않는 비주류’가 되기 위한 투쟁으로 설명했다. “무시당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류가 되면 권력 감시를 할 수 없다. 참여연대 초창기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후반기엔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않기 위해 내적 관성이나 유혹을 경계해왔다.” 그는 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선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참여연대 또한 그 경계선의 이동을 주시하며 자신의 자리를 결정해왔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 진출로도 미진한 정치적 상황
-참여연대는 창립 이후 줄곧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2000년, 2004년 낙선운동을 정점으로 정치 지형이 정상화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참여연대의 영향력도 증폭됐으며, 회원 수도 꾸준히 늘었다. 이제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도 원내에 들어간 상황에서 또 다른 방향 설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사실 지구상에서 참여연대 같은 정책대변형 종합시민운동단체는 드물다. 우리나라의 정당적 기능과 구조가 파행적이었기 때문에 참여연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과 같은 참여연대의 역할이 얼마나 더 필요한가를 두고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있었다. 대표적으론 ‘10년설’(조희연), ‘20년설’(김기식), ‘30년설’(김호기) 등이 있는데 조희연 교수는 참여연대의 활동 기간이 10년쯤에 이르면 정치사회도 정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이었고, 김호기 교수는 상대적으로 비관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절충을 택한 셈인데, 아직 10년이 지나서도 참여연대가 필요한 걸 보니 내가 주장하는 20년설이 맞는 것 같다(웃음). 이번 총선에서 정치 지형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정당은 시민단체가 추구해온 정책을 소화하기엔 수준이 낮다. 진보정당이 진출했다고 하나 시민사회의 정치적 성향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맥락에서 참여연대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 정치권에 개혁적 인물이 많이 들어가고 있으니 참여연대의 정치적 기능은 이제 약화하고 생활운동 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단기적으론 위험한 주장이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힘은, 세계 NGO(비정부기구)들이 다 부러워하듯, 정치적 역동성 아닌가. 다만 중장기적으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향후 10년 계획을 다시 세우게 됐다. 참여연대의 각 사업부문을 전문화·분권화해 10년 뒤엔 연합적 성격으로 진화해간다는 것이다.
-최근 제기된, 친정부적이라는 논란(김태경 기자의 ‘노 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 9월호 참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하던데, 80년대 군부독재나 의 논법은 내용의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주장의 결과가 북한과 같으면 빨갱이라는 논리다. 견해의 차이에 대해 정치적 덧씌우기를 해서 특정 정치세력과 연관시킴으로써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비판 방식이다. 가령 참여연대의 주장 중에 어떤 것은 열린당과 같고, 어떤 것은 한나라당과 같고, 어떤 것은 민노당과 일치하는데, 이를 임의로 취사선택해서 ‘참여연대=민노당’ ‘참여연대=열린당’식의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파병반대 운동할 때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를 내걸어야 하느냐에 대한 것도 그렇다. 퇴진을 요구하면 반정부고, 퇴진 안 외치면 친정부인가. 만약 개별 사안마다 다 노 대통령 퇴진하라고 하면 그게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느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지 않은 시민단체가 있느냐. 노 정권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친노인가. 전선이란 복잡한 것이다. 노 정권을 참여연대만큼 정면으로 공격하고 비판한 단체가 있는가.
“역이용될까봐 침묵할 때도 있다”
-예전엔 경실련·참여연대가 두 날개였다면, 이제는 참여연대가 독주하는 형국이다. 경실련도 한때는 20개 넘는 위원회가 있었고 신망도 높았지만 정권과의 유착, 재정 문제 등이 겹치며 대오가 흐트러졌다. 경실련과 비교할 때 참여연대가 잘나가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의 강점은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포지셔닝(자리매김)에 성공해왔던 것이다. 또 우리는 전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귀납적 태도로써 구체적 사안에 접근해왔다. 재정이나 조직 문제가 건강하다는 것도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이유이다. 경실련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백화점식 운동이라는 비판을 한다. 그런데 백화점이란 상품을 종합 나열해놓는 것 아니냐. 우리는 문제를 한번 제기하면 끝까지 가지, ‘언론발’ 반짝 받고 그만두지 않는다.
-논평·성명발표·기자회견 등 언론 위주의 활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있던데?
=노동조합이나 학생회처럼 조직화된 대중을 갖지 않은 대변형 조직은 사실 언론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언론 입맛에만 맞는 사업을 하는 거지, 언론 활용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또 인터넷의 발달로 활용매체는 앞으로 더 다변화될 것이다.
-참여연대는 갖가지 사안에 대해 논평을 많이 하는데, 간첩·민주화인사 논란을 빚은 의문사위 결정 같은 민감한 사안엔 침묵한다.
=우리의 주요 사업이 아닌 영역에서 다 논평을 낼 수는 없다. 또 운동진영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되레 역이용당할 소지가 다분해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나름대로는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연대 내부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뭔가?
=계속되는 고민은, 우리가 전투에선 화려하게 이겼지만 과연 전쟁에서도 이기고 있는가다. 부패한 권력자를 감옥에 집어넣고 재벌 총수도 옥살이시키지만, 점차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사회경제적인 문제에서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대로 이 사회가 가고 있는가 생각하면 답답하다. 정치적 민주화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고, 앞으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화두일 터인데, 사회경제적 개혁은 시민사회 내부에 계급적·계층적 이해와 차이가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모두에게서 박수받는 운동이라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사회경제적 개혁을 이루려면 욕 안 먹는 시민운동의 신화도 깨져야 한다. 앞으론 사회경제적 개혁을 해나가면서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질 거 같다.
95%에게 득이 되는 개혁 추구
-조세개혁 등 사회경제적 개혁을 해나가다 보면 참여연대의 지지자 중에도 돌아설 사람이 있을 것이다. 참여연대는 중산층의 지지를 많이 받아왔는데 회원들이 이탈하지 않을까.
=조세·사회복지 문제 등은 이념적·계층적 전선이 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색깔을 분명히 해서 고립되고 싶진 않다. 일단은 95%에게 득이 되는 사회경제적 개혁과제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들이다.
-시장에서 파생된 신자유주의적인 문제들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공기업 민영화, 정리해고 반대,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말고 또 다른 이슈도 있을 텐데 너무 거시적으로만 다룬다. 더욱 구체적인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공기업 중에서도 민영화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모든 직업을 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회적 임금을 통해 어떻게 보존해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그는 올해 2년 임기를 마친 뒤 2년 더 재임하게 됐다) 뭘 할 것인가?
=사실 아·무·생·각·없·다~ 운동가들이 먹고살 게 없어 정치한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있는데, 운동가로서 ‘먹고살 수 있는’ 구조가 부족하다. 사실 마흔 지나서 어디에 취직하겠는가? 선배들이 정치권 안 가도 얼마든지 다른 거 할 수 있는 전망을 보여줘야 후배들 중에도 평생 운동하겠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런 대안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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