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삼성에버랜드 경영진에 배임 책임 없다고 밝혀… 왜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판결들 나오나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 땅에 ‘사법정의’는 살아 있는가? 지난 7월16일 내려진 이건희(66)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는 이런 물음을 우리에게 다시 던졌다.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의 가벼운 형이 선고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던 이번 판결은 또 하나의, 어쩌면 최대의 ‘문제적 판결’로 기억될지 모른다. 왜 일반인의 상식적인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판결들이 나오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이번 판결을 포함해 몇 건의 문제적 판결들을 쫓아가보자.
2006년 민명훈 판사의 기자실 발언
론스타코리아 유회원(58) 사장에 대한 잇단 영장 기각으로 법원과 검찰이 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2006년 11월5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였던 민병훈(47·사법연수원 16기) 부장판사가 기자실을 찾았다. 영장 기각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자, 직접 해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검 수사기획관과 토론할 용의도 있다” “검찰이 팩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대응하고 있다” 등의 해명과 공세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당시 쟁점이 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이건 오프(Off the Record·비보도를 전제로 한 발언)인데,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삼성에버랜드가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사채를 헐값에 발행하면 누구한테 손해겠나? 회사가 아니라 주주에게 손해다.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박노빈씨가 회사에 대한 배임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 건은 그런 사건이 아니다… 검찰이 민법·상법 공부를 좀 해야 한다. 내가 담당 검사라면 그렇게 안 한다.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항상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환사채 헐값 발행은 회사가 아니라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검찰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삼성에버랜드 경영진을 기소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허태학·박노빈씨에 대해 1심에서 이미 회사에 대한 배임이 인정됐고 2심이 진행 중이던 사건을 놓고 “말도 안 되는 수사”라는 정반대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상자기사 참조)
그로부터 1년6개월가량 지난 뒤인 2008년 4월. 삼성특검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등과 관련해 이건희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하자, 서울중앙지법은 이 사건을 형사합의23부(재판장 민병훈, 배석판사 박종열·오현석)에 배당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이 무죄라고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던 민병훈 부장판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결국 민 부장판사는 7월16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주주의 손해를 에버랜드(회사)에 대한 배임죄로 의율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일반인에게는 좀 생소한 표현이지만, 이는 1년9개월 전 기자실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주장의 반복이었다. 또 이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허태학·박노빈씨 사건을 변호하며 내놨던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대법원장은 당시 삼성에버랜드 쪽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전환사채 저가 발행은 회사에 대한 배임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이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주장한 것과 같은 논리를 민 부장판사는 진즉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법원은 하필 민 부장판사에게 이 사건을 배당해 무죄라는 ‘예정된’ 결론이 나온 셈이다.
이에 대해 사건을 배당한 서울중앙지법 허만 형사수석부장판사는 공보판사를 통해 “원래는 경제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합의 24부 또는 25부에 배당해야 했지만, 당시 두 재판부에 사건이 너무 많아 23부에 배당했을 뿐이다. 민 부장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마용주 공보판사는 ‘민 부장판사가 이미 강한 무죄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과 관련해 “민 부장판사가 그런 발언을 했는지 여부를 알아볼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확인 자체를 거부했다. “재판과 관련 없는 사실인데다 (같은 판사 입장에서) 그런 것을 쉽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아니겠냐”는 이유였다.
김석원 판결 때와 천양지차
물론 판사도 사회의 한 구성원인 만큼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나 간통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 뒤 실제 재판에서 그와 관련된 사건을 맡아 처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개별 사건에 대해 확고한 선입견이나 확신을 공표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건을 맡아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재판 경력 10년이 넘는 한 판사는 “일반적으로 본인의 신념이나 철학 같은 것을 외부에 공포했다고 그와 관련된 사건 재판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일반론이 아니라 개별 사건에 대한 언급이어서 좀 다른 것 같다”며 “하지만 딱히 법관의 재판 회피 사유도 아니어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경계선에 있는 문제 같다”고 말했다. 민 부장판사가 위법을 저질렀다고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재판 주체로서 적절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판결은 재판 주체의 적절성 문제뿐 아니라 양형에서도 이례적이다. 송광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우리나라에 1100억원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집행유예 5년을 받은 적 있느냐”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침 이와 관련해 최근 이 전 회장 판결과 비교될 만한 판결이 있다. 지난 7월3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선고된 김석원(63) 전 쌍용그룹 회장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및 횡령 혐의에 관한 판결이다.
김 전 회장은 1999~2004년 쌍용양회 자금 1271억여원을 위장계열사 4곳에 지원하도록 하고(배임), 쌍용그룹 소속 기업들의 보험을 담당하던 국민엔터프라이즈로부터 2003~2007년 매달 생활비 등 명목으로 1천만~2천만원씩 7억3100만원을 받아 가로챈(횡령)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장진훈, 배석판사 조지환·이연경)는 7월3일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크게 저해하는 행위로서 우리 기업문화에 미치는 적지 않은 악영향을 감안할 때 그 비난 가능성이 크고 앞으로 선진 경제와 선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이라며 김 전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물론 자신이 오너로 있던 회사에 1천억원이 넘는 손해를 끼쳐가며 위장계열사를 도운 혐의는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차명계좌를 통해 수조원대의 비자금을 굴리며 최소 465억원가량의 세금을 포탈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에 비해서는 가혹한 판결인 것도 사실이다. 불과 열흘가량 앞뒤로 이렇게 대비되는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산 재벌’과 ‘죽은 재벌’에 대한 법원의 대우가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법원은 최근 정몽구(70)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56) 한화그룹 회장에게 잇따라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이라는 부드러운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김석원 전 회장과 비슷한 처지인 박건배(60) 전 해태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됐으며 올해 3월 선고된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유지됐다.
‘죽은 재벌’ 얘기를 넘어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석원 전 회장은 지난 2004년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는데 “당시 실형 선고를 피하기 위해 변양균(59) 당기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3억원을 건넸다”고 지난해 검찰에서 진술한 바 있다. (행정부 소속인 장관이 어떻게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기획예산처 장관은 대법원에서 거의 유일하게 ‘말이 먹히는 장관’이었다. 예산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변 전 장관은 평소 대법원과 우호적인 관계였으며, 고법 상고부 건물 신축 과정에서도 법원 쪽 요청이나 바람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고법 상고부 제도 도입은 무산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건물은 이미 최신식으로 지어져 현재 서울고법이 사용 중이다.) 검찰은 이 진술에 바탕해 변 전 장관에게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서울서부지법 김명섭 판사는 지난 3월 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유회원 재판의 이상한 결론
물론 당시 변 전 장관이 실제로 법원에 김석원 전 회장의 선처를 부탁했는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재판 결과는 김 전 회장이 변 전 장관에게 청탁한대로 집행유예로 나왔다. 용평리조트 인근 땅 수십만 평과 서울 시내에 산재한 회사 소유 부동산 수백억원어치를 차명을 통해 빼돌리는 등 죄질이 나빴지만, 2005년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강형주, 배석판사 김정민·이문세)는 “범행의 수법이나 내용, 피해액의 규모 등에 비추어 그 죄질이 중하다고 할 것”이라면서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것이다.
이번 실형 선고를 두고 김석원 전 회장이 ‘감히’ 몇 년 전 재판에서 선처를 받고도 검찰에서 ‘재판과 관련한 청탁’ 운운한 것 자체가 법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 전 회장과 함께 공범으로 기소된 명호근(66) 전 쌍용양회 사장과 홍사승(60) 쌍용양회 현 사장까지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점은 ‘뭔가 단단히 찍힌 게 있다’는 의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오너 밑에서 계열사 지원에 가담했을 뿐인 전문경영인이 오너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고 나란히 구치소로 끌려가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한 법조인은 “김 전 회장이야 그렇다고 쳐도, 그 밑에서 지시대로 움직인 사람들은 개인적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닌데, 법정구속되는 것 보고 ‘뭔가 (법원에) 찍힌 게 있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법원으로서는 재판부에 대한 청탁이나 괘씸죄라는 말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겠지만, 2005년 3월과 올해 7월3일 내려진 김 전 회장 등에 대한 법원의 판결 자체가 여러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판결은 이뿐만이 아니다. 민병훈 부장판사가 지난 2006~2007년에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사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도 한 사례이다.
유씨는 2003년 11월21일 기자간담회에서 외환은행과의 합병을 앞둔 외환카드의 감자설을 유포해 주가를 하락시켜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외환은행과 론스타에 224억원가량의 이익을 보게 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는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이경춘, 배석판사 설충민·노재호)는 지난 2월1일 “감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감자를 실행할 의사나 진지한 검토 없이 외환카드의 주가를 떨어뜨려 부당 이익을 챙겼다”며 이 부분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하고 유씨를 법정구속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제9형사부(재판장 고의영, 배석판사 이상윤·김용한)는 지난 6월24일 “(유죄 여부는) 공시 내용 자체가 허위인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지, 행위자에게 실제로 공시 내용을 실현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할 것은 아니며”(대법원 2003년 11월14일 선고 2003도686 판결)라는 말로,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유씨를 풀어줬다. 감자설 자체가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지, 실제 감자를 실현할 의사나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유무죄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란 말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근거로 제시한 대법원 판결(2003도686 판결)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판부의 이런 결론은 일반인의 법감정과 동떨어져 있을뿐더러 대법원 판례를 이상하게 해석해 유씨를 맘먹고 봐줬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법원이 판결한 사건은 화승강업이라는 회사의 대주주가 2000년 주식시장에서 정보통신 관련 회사 주가가 크게 오르자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음에도 회사의 사업 목적에 ‘정보통신 관련 등’의 내용을 추가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경우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허위의 표시를 하였는지 여부는 공시 내용 자체가 허위인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며 “주주총회에서 실제 결의를 거쳐 정관을 변경했으므로 허위 사실 유포가 아니다”라고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던 문용선(50)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례 해설에서 이 판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사 정관에 정보통신사업을 사업 목적으로 추가하기로 하는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었다’는 공시와 ‘회사가 정보통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공시는 서로 다른 내용의 공시이다. 전자에서 허위 공시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공시한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가 되어야지 회사가 실제 정보통신사업을 추진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고, 후자에서 허위의 공시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회사가 실제로 정보통신사업을 추진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이다.”
법관의 양심과 시대의 양심
주주총회 결의라는 단순 사실관계를 공시했다면 그 진위 여부만 판단하되, 특정 사업 검토나 계획 등을 공시했을 때에는 실제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검토설을 흘린 유씨의 경우는 당연히 후자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유씨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아예 대법원 판례를 거꾸로 해석해 “의사나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유무죄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박형준 공보판사는 “문제는 증거 판단의 부분이고 그 부분에 잘못이 있다면 대법원에서 바로잡아주지 않겠냐”며 “(언론에서는) 사건 전체의 큰 줄기를 봐줬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이제 이 사건은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유독 재벌 총수 등 유력인들에 대해 상식을 뒤엎는 판결이 잦고 그때마다 법 논리나 양형 판단이 뒤틀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 법은 구체적 사건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만큼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고, 그 공간은 법관의 양심이 채울 수밖에 없다. 최근 친일파 재산의 국고귀속을 위한 재판들에서 친일파 후손에 유리한 판결과 국가에 유리한 판결이 마구 뒤섞여 나오고 있는 현상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듯, 법의 해석은 종종 180도 다른 결론을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많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법관의 양심’과 ‘시대의 양심’이 얼마나 닮아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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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의 핵심 쟁점은 전환사채를 주식 시가보다 싸게 발행한 것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검찰은 일단 회사에 대한 배임이 당연하다고 판단하고 에버랜드의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박노빈씨를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변호인은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 손해를 본 것은 주주와 관련이 있을 뿐, 회사의 손익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런 주장은 일면 타당성을 지닌다. 전환사채가 헐값으로 발행되면 회사 자산가치는 거의 늘지 않는데도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크게 줄어들어 이들은 큰 손해를 입는다. 회사에는 비록 헐값이지만 전환사채 발행가만큼의 자본이 유입되기 때문에 절대적인 손실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태학·박노빈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2005년 10월 회사에 대한 배임 혐의를 인정해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는 일반인의 상식적인 판단에도 더 잘 부합된다. 만약 에버랜드 전환사채가 제 값에 발행됐다면, 실제보다 10배 이상의 자본이 회사에 유입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정상적인 발행에 견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적은 자본이 회사에 유입됐다는 것은, 회사 종업원이나 채권자들에게도 잠정적인 손해의 위험을 준 것이기도 하다. 이런 판결 기조는 2007년 5월에 이뤄진 2심에서도 유지됐다.
결국 1·2심 재판부는 모두 전환사채 헐값 발행이 ‘주주에 대한 배임도 되지만, 회사에 대한 배임이기도 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이건희 전 회장의 1심 재판을 맡은 민병훈 부장판사는 똑같은 사안을 두고 ‘주주에 대한 배임’과 ‘회사에 대한 배임’ 가운데 꼭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민 부장판사는 허태학·박노빈씨 사건에 대해 “회사 재산을 가지고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업무상 배임인데, 이 건은 그런 사건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편 바 있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에서도 그는 전환사채를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한 중앙일보사 등 법인주주들이 손해를 입은 것인 만큼 해당 법인의 경영자에 대해 자기 회사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할 수는 있으나, 전환사채를 발행한 삼성에버랜드 경영진이 회사에 대한 손해를 입힌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선택의 논리는 삼성 쪽의 주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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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민병훈 부장판사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우선 법원 내부에서는 신망이 높다. 사실 법원이 이 전 회장 재판을 민 부장판사에게 배당한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그 만큼 큰 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판사라는 것이다. 실제 민 부장판사는 유죄가 인정되면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을 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엄정한 판결을 내린다는 평이 많았다.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판사 시절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손아무개 전 부장판사 등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기피대상 1호’ 인물이었다. 2006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있으면서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사장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했는데, 검찰은 “법원이 수사를 방해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반발의 배경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엄격한 영장 발부 등을 강조하자 영장전담 판사가 ‘코드’를 맞춘 것 아니겠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었다. 2002~2003년 민 부장판사가 강원 속초지원장으로 근무할 당시 속초지청에 근무했던 한 검사는 “당시엔 검사들과 잘 어울려 놀았고 관사에까지 여러 차례 놀러가 함께 술을 마시곤 했는데, 어느새 사람이 바뀌어 있더라”고 말했다.
민 부장판사의 재판 스타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엘리트 법관답게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는 점이다. 영장전담 부장판사에서 형사합의23부 재판장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인 2007년 3월, 공소장에 검사의 이름과 도장만 찍혀 있을 뿐 서명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 부장판사는 “검사의 서명으로만 공소 제기가 해당 검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담보된다”며 “뒤늦게 검사가 서명했더라도 이는 무효”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전임 재판장이었던 문용선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검사 서명 누락은 보완이 가능하다”며 첫 기일에 해당 검사에게 누락된 서명을 하도록 한 뒤 재판을 8개월가량 진행한 상태였다. 그만큼 공소기각 판결의 파장은 컸다. 당시 피고인 인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던 법학자들조차도 “검사 서명은 공소장의 핵심적인 구성요건도 아니고 피고인 인권과 관련된 것도 아닌데 공소를 기각한 것은 문제”라고 반응했다. 결국 민 부장판사의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어졌으며, 대법원에서도 “1심 판결은 형사소송법을 오해한 것”이라며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고법 부장판사는 “민 부장판사가 자기 확신이 좀 강한 것이야 다들 알잖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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