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거침없는 비판… “이번 판결의 취지는 유산 주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것”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판의 화려한 ‘쇼’였다.”
7월17일 제헌절 오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 사무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가 최근 개업한 이곳은 책장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선고공판을 앞둔 14일 미리 김 변호사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16일 이 회장의 선고공판을 지켜본 뒤 김 변호사는 더 이상 말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할 말이 없다. 이 ‘훌륭한 판결’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나. 웃음뿐이다. 더 이상 언론과는 인터뷰 하지 않는다”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아버지 재판에 아들을 증인으로?
소회야 왜 없겠는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30여 분 눌러앉아 있는 동안, 김 변호사는 자신의 생각을 툭툭 던져냈다. 대화 내내 그는 위악적인 말투로 재판부와 특검을 비판했다. 때론 격정적인 때론 허탈한 표정이었다.
이번 재판을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그는 “화려한 쇼”라고 답했다.
“한판의 쇼였다. 화려한 쇼였다. 아버지가 피고인인 재판에 아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경우가 어디 있나. 아무 권한도 없는 대학교수들을 불러 ‘양형 증인’(사실관계를 증언하는 일반 증인과 달리, 유죄를 전제로 얼마만큼의 형을 선고해야 옳은지 의견을 말하는 증인)으로 내세웠다. ‘법은 이거다’라고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폼은 났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요지를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산을 주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등 편법 경영경 승계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대부분 무죄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며 에둘러 비판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선 이와 비슷한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오랫동안 주민자치 전통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권 문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기업인의 횡령죄에 대해선 몇백 년 징역에 처하는 등 엄한 법률적인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부가 이사회의 하자에 대해서도 문제가 안 되고, 비서실이 (법인주주들의 전환사채 인수권 실권을) 지시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결국 지배권을 줄 목적의 배임죄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대단히 관대하고 대단히 합리적이다. 우리 사회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판결”이라고 비꼬았다.
앞으로 편법 승계 어떻게 막나
봐주기식 재판에 대한 비판은 법의 형평성 문제로 이어졌다. “(사주가 구속된) 현대나 SK나 대상이나 모두 억울해하지 않을까. 그들 최고경영인(CEO)은 삼성보다 낮은 금액으로도 구속됐다. 그중에선 삼성의 사돈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비판은 이어졌다. “법이라는 게 강자를 대변하고, 강자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수조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을 위한 법과, 그 아래 자산을 가진 사람을 위한 법을 따로 만들어야 할 판이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했다. 이번 재판 결과 재벌들이 편법을 동원해 경영권을 승계한다고 해도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도 구속됐다. 정치·행정 권력들은 일시적이다. 항구적인 권력체제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 권력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한판 연극이 끝나면 사람들이 허탈해할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되돌아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년 만에 만들었다며 ‘변호사’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넸다. 사무실에는 수수한 차림의 의뢰인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