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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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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혀진 카마수트라여

등록 2002-12-12 00:00 수정 2020-05-02 04:23

Sex of Asia l 인도

성애주의를 누른 금욕주의 시대의 성 억압… “깊이 찌르고 보자”는 남성중심적인 문화만 번창

인도에서 섹스는 신성한 소와 같은 것인가 아니면 금기인가

세상에서 성적으로 가장 억압당한 사회를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인도다. 각종 성 실태조사 보고서들은 인도 섹스를 양과 질에서 모두 국제 평균 이하로 밀쳐놓았다. 인도 시민들은 섹스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섹스를 화제에 올리는 걸 꺼린다. 또 스스로 성적 매력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야 도덕적으로 잘나 보인다고 믿는 탓이다.

힌두 영화의 고리타분한 가짜 입맞춤

한마디로 인도에서는 섹스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다. 힌두 영화를 잘 알겠지만, 그 고리타분한 가짜 입맞춤 정도를 성 표현에 대한 사회적 한계로 보면 된다. 섹스는 단지 은밀하고 어두운 곳에서만 화제에 올릴 수 있다. 예외가 있다면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 가운데 조루거나 지독한 자위행위로 죄의식을 느껴온 이들에게 ‘즐거움’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영웅약국’ 같은 곳뿐이다. 비아그라 뺨치는 전통 약초라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해가는 이런 약국들이 성적 억압과 강요당한 금욕주의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폐쇄적이고 미신적인 사회 풍조가 성폭행이나 신부화장(火葬) 같은 야만적 여성 학대행위를 키웠다. 정부 공식자료에 따르면- 사회 분위기 탓으로 대부분 성피해 여성들이 고발하거나 보고하지 않는 현실이고 따라서 통계를 믿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 인도에서는 54분마다 성폭행이 일어난다. 10대들은 이성과 서로 만나거나 함께 즐길 수도 없다. 오직 ‘순결함’을 좇아 마치 종교적 독신주의 같은 비정상적인 순수를 배웠을 뿐이다. 소년들에게는 자위행위를 하면 값진 정액이 빠져나가 정신적 힘과 사나이다움을 잃는다고 가르쳤고, 소녀들에게는 성욕 억제를 통해 정숙함에 이른다고 거짓 교육을 반복했다. 가정에서도 여성의 성 권리는 철저하게 차단당해왔다. 여성들이 섹스를 그나마 자유롭게 대하는 시기는 젖먹이 ‘생산공장’으로 기능할 때가 돼서다.

수백년 전부터 눈부신 성적 조형물과 관능적인 시를 생산했고 또 쾌활한 섹스와 남녀 신체를 연구해 인류사에 가장 빼어난 성애 교범이라는 를 남긴 사회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는 단지 체위만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는 ‘삶의 예술’이다. 어떻게 상대방을 찾고, 결혼생활에서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삼아 729개 체위와 4가지 포옹, 17가지 키스, 16가지 깨물고 꼬집기, 6가지 진귀한 행위, 16가지 때리고 비명 지르기 같은 것들을 기록했다. 이 책은 압도적인 성애 기술뿐만 아니라 실질적 삶의 기준을 제공했다.

이렇게 풍요와 합리성을 바탕 삼아 성을 이해해온 인도가 어떻게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성 억압지로 또 금기가 판치는 사회로 변해버렸을까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로 성행위에 대해 방대한 연구를 해온 수디르 카카르에 따르면 그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고 한다.

“금욕주의와 성애주의는 늘 인도 문화와 사람들 영혼 속에 공존해왔는데, 그 둘이 각각 다른 시대상을 업고 다퉈온 셈이다. 가령 4~10세기에는 성애주의가 지배했다면, 최근 200년 동안에는 금욕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남성들은 왜 ‘삽입’에만 몰두하는가

최근 200년이란 건 말할 것도 없이,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를 주도하며 엄숙주의를 살포한 브라만과 빅토리아왕조의 도덕주의를 물고 온 영국 식민통치가 함께 상호작용을 하면서 강력한 금욕주의를 퍼트린 시기다. 이렇게 낯선 두 지배세력이 동맹해 인도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던 성적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성적으로 가장 억압적인 태도로 금기를 살포하는 이들은 ‘힌두 탈레반’이라 부를 만한 극단적 민족주의와 편협한 브라만주의로 무장한 집권당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이다. 이자들은 탈레반처럼 여성을 천으로 뒤집어씌우고 공공장소에서 축출하겠다고 떠들어왔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압제적인 인도 성문화는 ‘음경침투’라는 별난 강박관념으로 드러났다.

“깊이 찌르고 보자”는 말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 사회적 성 증상은 전희와 같은 애정행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성을 지독한 공격무기로 만들어버렸다. “남성들이 몰두하는 일은 오직 삽입 자체였다.” 지난해 (A King of Dreams)라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들어 화제를 몰고 온 아마르 칸와르가 인도 각 지역에서 100명이 넘는 이들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였다.

아마르에 따르면, 이런 강박관념을 지닌 남성들은 여성들을 향해 심각한 공격적 태도를 보였고, 오직 삽입과 사정에 목표를 둔 이들의 성행위는 ‘즐기는 성’이나 ‘함께 나누는 성’ 같은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인도 여성 가운데 오르가슴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이가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만연한 ‘찌르기 성교’를 증명하는 좋은 본보기다.

이런 경직된 성적 규범들 속에서 섹스는 범죄행위가 아니고 일상적인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건 반가운 대목이다. 정치·문화적 민주화는 더 관용적인 기운을 북돋웠고, 교육받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때문이다.

“여성운동이 주효했다.” 심리학자 마두 사린 같은 이들이 말해왔다. “여성들이 순종문화 대신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성들이 대답할 차례다.”

여성의 몸은 민족을 위해 사용하자

최근 조사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인도 여성들 가운데 40%가 혼전성교를, 도시여성 가운데 5분의 1이 혼외정사를 경험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섹스에 대한 관용도 크게 신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면 바지파이 총리가 결혼하지 않은 채 한 여성과 몇년째 살고 있다는 사실도 큰 허물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물론 바지파이 총리가 몸담고 있는 바라티야 자나타당 내 극우세력들이 음성적으로 나무라긴 하지만.

또 동성애도 전면으로 나선 느낌이 든다. 최근 여성 동성애자끼리 결혼한 게 공개될 정도니, 예전에 비하자면 놀라운 발전이다. 이런 성 해방을 향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초보수적인 집단은 여성의 몸은 민족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내고 있다. 이 전근대적인 집단들은 아직도 여성을 독립된 개체로서가 아닌 마치 ‘대리점’에 소속된 아내, 어머니, 딸로서만 인정한다. 이런 반동적인 이념들은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현 집권당이 분사하는 네오파시즘 운동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

인도는 결코 파시즘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성 해방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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