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도 제재도 안 통한다… 이란은 ‘트럼프의 베트남’?

2026년 8월19일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목을 죄는 모습이 담긴 대형 걸개그림 앞을 한 여성이 지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은 2026년 6월14일 14개항의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MOU)’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사흘 뒤인 6월17일 각각 전자서명하면서 양해각서가 발효됐다. 양해각서 3항은 “미국과 이란은 최대 60일 안에 최종 합의를 위한 후속 협상에 임할 것이다. 협상 시한은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8월16일은 양해각서 체결 60일째였다. 미국과 이란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협상 시한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양해각서는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전쟁은 어느새 반년째로 다가서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해군기지를 출항한 건 2025년 11월21일이다. 앞서 링컨 항모 전단은 162일간의 작전 수행 뒤 2024년 12월 귀항한 바 있다. 항모 전단이 귀항 1년도 안 돼 다시 작전에 투입되는 건 이례적이다. 미국 해군의 ‘함대 최적화 대응 계획’(OFRP)은 항모 전단의 ‘유지·보수-훈련-작전 수행’ 주기를 36개월로 정해놨다.
링컨 항모 전단은 출항 20일 만인 2025년 12월11일 미국령 괌에 도착했다. 승조원 휴식과 보급품 보충을 위해 예정된 정박이었다. 이튿날 출항한 항모 전단의 최종 목적지는 페르시아만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애초 2026년 5월 귀항 예정이던 링컨 항모 전단은 2026년 8월20일 현재 샌디에이고 모항을 출항한 지 272일째, 마지막 기항지인 괌을 출항한 지 251일째 ‘작전 중’이다. 귀항 예정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남편은 불명예제대를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저 심신이 지쳤던 것뿐인데, 13년 해군 경력이 날아갈 판이다. 공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이다.” 미국 군사 전문매체 ‘네이비 타임스’는 8월12일 애너벨 로마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링컨 항모의 승조원인 로마의 남편은 최근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가 구조돼, 회복을 위해 복무가 중단된 상태다. 기약 없이 이어지는 파병으로 링컨 항모에서 복무 중인 승조원과 해병대원 등 5천여 명이 집단 번아웃(소진) 증세를 보이고 있단다. 미군 기관지 ‘성조지’는 8월12일치에서 링컨 항모에서 복무 중인 배우자를 둔 여성의 말을 따 “남편이 ‘차라리 내일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026년 8월17일 오만의 무산담에서 바라다본 호르무즈해협 모습. REUTERS
“링컨 항모 전단 소속 장병들의 사기 저하와 정신건강 위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복무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장병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13명을 포함한 민주당 상원의원 15명은 8월15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앞서 헤그세스 장관은 8월13일 극우매체 ‘뉴스맥스’와 한 인터뷰에서 링컨 항모 전단 장병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 대한 보도를 두고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상원의원들은 서한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적절한 준비 과정도 없이 이란 침공을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 장관의 거듭된 오판으로 링컨 항모 전단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됐다. (…) 이란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파병된 미군 장병도 언제 귀국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기한 없는 파병이 장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무턱대고 부인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과 이란은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미군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세계 원유·천연가스 해상 물동량의 20%를 점하는 호르무즈해협은 여전히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의 설명을 종합하면, 8월17일에도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시도하던 라이베리아 선적 벌크화물선 ‘미노안 디그니티’호가 정체불명의 비행체 공격을 받아 기관실이 파손되고 선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간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이 공격당하면 즉각 이란에 보복공격을 가했던 미국은 이번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란은 협상 타결의 기회를 날렸다. 지금부터 이란을 겨냥해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경제제재를 가하겠다. 이란은 전례 없는 수준의 경제적 전쟁과 고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19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금융기관과 기업, 공항 또는 정부기관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이란을 지원하는 국가는 막대한 경제적 파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제재 회피를 위한) 원유 밀수나 바꿔치기, 현금거래, 자금세탁, 선박 등록 조작, 유령회사 운영 등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을 겨냥한 경제전쟁이 시작됐다. 이란을 고립시키고, 이란의 위협을 끝장내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모든 동맹국이 동참해달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1979년 1월 이슬람혁명 직후부터 각종 대이란 경제제재를 부과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국제사회도 온갖 구실로 툭하면 이란을 경제적으로 압박했다. 그럼에도 이란은 어떻게든 버텨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도 이란 쪽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다. 이란 관영매체들은 8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를 두고 일제히 “실패한 ‘최고의 압박’ 전술의 재탕일 뿐이다. 제재로 이란 경제가 무너지고 군사력이 취약해질 것이란 주장은 망상적 심리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19일 백악관에서 첨단기업 경영인들을 접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양해각서 만료로 휴전은 끝났다. 제재는 장기전의 입구다. 섣부른 전쟁이 만든 진창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이란 전쟁은 ‘트럼프의 베트남’이 되고 마는가? 8월19일 오후 미국 공군 제이슨 왓슨 소령이 다시 체포돼 ‘재판 전 구금’에 처해졌다. 그는 7월1일 정복 차림으로 워싱턴의 연방의회 의사당 계단에 올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유죄 판결-해임’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했다가 체포된 뒤 일시 석방된 바 있다. 미국 군형법 제88조는 “미군 장교는 대통령, 부통령, 의회와 민간 군사 지도자, 주지사 또는 주의회를 모욕하는 발언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왓슨 소령은 재체포 전인 8월17일 시엔엔(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이란 침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 우려와 조언에도 이란 침공을 ‘선택’했다. 위헌적이다. (…)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는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부패는 만연하고 미국민이 죽어나가고 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뿐 아니라 미국민 모두가 용인해선 안 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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