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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마저 표적으로… 이스라엘 감옥에서 사경 헤매는 가자의 슈바이처

공습에도 병원·환자 지키다 체포된 사피야… 이유도 모르는 채 20개월째 고문당해
등록 2026-07-17 10:39 수정 2026-07-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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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1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병원 앞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10살 어린이의 주검을 유가족들이 운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6년 7월1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병원 앞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10살 어린이의 주검을 유가족들이 운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독일 연방의회 의원 48명이 2026년 7월14일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마티아스 미어슈 사회민주당 원내대표, 프란치스카 브란트너 녹색당 공동의장, 루이지 판티사노 좌파당(디링케) 공동대표 등 유력 정치인도 다수 서한에 연서명했다. 서한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구금 중인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의사 14명의 즉각적인 석방 촉구다. 이 가운데 의원단이 단연 주목한 건 2024년 12월27일 이스라엘군이 체포한 후삼 아부 사피야다. 의원단은 서한에서 이렇게 촉구했다.

“사피야의 혐의 내용을 공개하라. 구체적인 혐의가 없다면 그를 즉각 석방하라. 사피야의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혐의가 무엇이든 인도적 대우와 적절한 의료지원, 적법절차는 보장돼야 한다. (…) 사피야를 비롯해 구금된 가자지구 의사 14명은 심각한 인권침해의 잠재적 목격자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위한 증거보전 차원에서라도 이들을 보호하는 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독일 의원들, 이스라엘 대통령 앞 공개서한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후삼 이드리스 아부 사피야는 1973년 11월21일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친 사피야는 카자흐스탄 아흐메트야사위대학 의대에 진학했다. 유학 중 만난 카자흐족 여성과 결혼한 그는 1996년 졸업과 함께 귀국했다. 소아과(신생아) 전문의 과정을 거친 그는 2002년 가자 북부 베이트라히야에 문을 연 카말아드완 병원에 부임했다. 이 병원은 이스라엘군의 파상공세로 사실상 폐쇄된 자발리야의 인도네시아 병원과 함께 가자지구 북부의 양대 의료거점이었다. 사피야는 소아과 과장을 거쳐 2024년 2월 이 병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소아과 의사인 후삼 아부 사피야 카말아드완 병원장이 2026년 6월10일 구금기간 연장 항소심에서 수갑을 찬 채 영상 증언을 하고 있다. REUTERS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소아과 의사인 후삼 아부 사피야 카말아드완 병원장이 2026년 6월10일 구금기간 연장 항소심에서 수갑을 찬 채 영상 증언을 하고 있다. REUTERS


사피야가 병원장이 되기 넉 달여 전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됐다. 2023년 12월 이스라엘군이 카말아드완 병원을 ‘하마스의 지역 거점’으로 규정하고 봉쇄·공격을 시작했다. 베이트라히야 전역이 무차별 공습의 표적이 됐다. 사피야 일가족은 아예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전력과 의약품 부족 등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사피야는 병상을 120석에서 200석으로 늘리는 등 환자 보호에 팔 걷고 나섰다. 이스라엘군은 2024년 5월과 10월에도 병원을 표적 삼아 봉쇄·공격을 가했다.

그해 10월25일 이스라엘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병원 들머리에서 사피야의 아들 이브라힘(당시 20살)이 목숨을 잃었다. 그날 이스라엘은 사피야를 비롯한 의료진 40여 명을 체포했다. 조사를 마치고 풀려난 사피야는 병원 앞마당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뒤에도 병원을 지켰다. 이 무렵부터 그는 병원의 열악한 상황을 담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공습은 쉼 없이 이어졌다.

11월23일 이스라엘군이 다시 병원을 표적 공격했다. 수술을 마치고 사무실로 향하던 사피야의 다리에 파편 6개가 박혔다. 그는 수술을 마친 뒤 중환자실의 상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알자지라는 당시 사피야가 했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부상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일터에서 부상당한 건 오히려 영광이다. 내 피가 동료나 환자의 피보다 소중할 수 없다. 회복하는 대로 환자에게 돌아가겠다.”

 

이스라엘군 멋대로 감별하는 ‘불법전투요원’

 

12월 들어 이스라엘군의 공세는 더욱 불을 뿜었다. 그의 장남 엘리야스(28)가 부친 설득에 나섰다. 아들이 말했다. “이브라힘은 죽었어요. 저도 총상을 입었고요. 이젠 먹을 것조차 없어요. 그만 떠나시죠.” 아버지가 답했다. “화상 등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이 187명이 병원에 있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겠니. 내 아이들이 저 아이들보다 더 중요할 순 없단다.”

병원 주변을 봉쇄한 이스라엘군은 의료진과 환자 전면 소개령을 내렸다. 툭하면 사피야를 불러내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결국 그해 12월27일 의료진과 환자를 모두 대피시킨 뒤 사피야는 흰 가운 차림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를 지나 이스라엘군 탱크를 향해 걸어갔다. 곧바로 체포된 그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사피야가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 있는 스데테이만 군사 구금시설에 붙잡혀 있다는 소식은 40일 뒤에야 가족에게 전달됐다. 이후 그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 인근 오페르교도소를 거쳐 다시 네게브 사막에 자리한 나프하교도소로 옮겨졌다. 이스라엘 쪽은 사피야의 체포·구금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를 정식으로 기소하지도 않았다. 법이 그렇다.

2002년 제2차 인티파다(봉기) 때 이스라엘 의회가 입법한 ‘불법전투요원구금법’(이하 구금법)은 “이스라엘을 겨냥한 적대적인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수행했거나 그런 조직의 일원이면서, 국제법상 전쟁포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를 기한 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금법 제3조는 “특정 인물이 불법전투요원이라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이스라엘군 장교가 판단하면 구금할 수 있다. 이 결정은 ‘해당 인물을 석방하면 이스라엘 안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조건 아래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사후 승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2026년 7월12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따른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REUTERS

2026년 7월12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따른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REUTERS


가자지구 침공 이후 이스라엘 의회는 2023년 12월, 2024년 4월과 7월 등 세 차례 구금법에 한시적 개정 조항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영장 없는 구금 기간은 기존 96시간(4일)에서 40일로 크게 늘었다. 구금 뒤 최초 법원 출석 시한도 기존 14일에서 75일로 연장됐다. 변호인 접견 제한 기간도 구금 뒤 10일에서 75일로 늘렸다. 또 법원의 결정에 따라 최대 180일까지 변호인 접견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가 인권단체 등의 비판이 나오자 90일로 줄였다. ‘불법전투요원’의 구금 기간은 6개월마다 연장이 가능하다.

사피야의 구금 기간이 다시 연장된 2026년 5월 말 인권단체 ‘리걸액션 월드와이드’가 이스라엘 대법원에 연장 결정 취소를 요구하며 항소했다. 이스라엘 교정당국은 사피야를 독방으로 옮겼다. 6월10일 사피야의 모습이 구금 뒤 처음으로 공개됐다. 대법원의 항소 사건 심리를 위해 영상 증언에 나선 그는 구금 전보다 크게 야위었고 눈에 띄게 노쇠해진 상태였다. 그의 변론을 맡은 나세르 오데 변호사는 “영상 증언 직후 교도관들이 망치와 곤봉으로 사피야를 무참히 구타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6월16일 사피야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스라엘 인권의사회는 성명을 내어 “대법원의 결정은 가자지구 수감자에 대한 사법심사가 한낱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영상 증언 직후 망치·곤봉으로 무차별 구타

 

6월24일 사피야는 이스라엘 중부 도시 람라에 위치한 악명 높은 니찬교도소의 라케펫 지하 수감동 독방으로 이감됐다. 이감 뒤 매일 구타당했다. 여러 차례 의식을 잃었지만, 교도소 의료진이 그에게 준 건 진통제와 물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구타가 이어졌다. 7월2일 오데 변호사가 사피야 접견을 신청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교도관들이 수갑과 쇠사슬로 묶인 사피야를 끌고 왔다. 오데 변호사는 접견 내용을 정리한 진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사피야의 머리와 얼굴, 양쪽 귀와 목에 새로 생긴 멍 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약해진 상태였고, 숨 쉬고 말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접견 도중 여러 차례 의식이 혼미해졌다. 사피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느꼈다.” 그날 사피야는 오데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접견일 수도 있다. 그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여기로 데려왔다.”

오데 변호사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인권의사회는 7월5일 이스라엘 대법원에 사피야를 포함해 이스라엘이 구금 중인 의사 14명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대법원 쪽은 이스라엘 정부에 공식 답변을 명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7월8일 “사피야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감 뒤 여러 차례 검진했고, 지속적으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왜 검진했는지, 검진 결과는 어땠는지, 그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가 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이스라엘 정부는 “(사피야를 포함해) 구금 중인 의사 14명은 관련 법률이 규정한 ‘불법전투요원’이라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고, 이들을 석방하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6년 7월13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급수시설에서 주민들이 물을 긷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6년 7월13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급수시설에서 주민들이 물을 긷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의 죄라면 우연히 가자에서 태어난 죄”

 

“최근 10살 아들이 사피야의 사진을 봤다.” 이스라엘 중부 베에르야코브에 자리한 샤미르의학센터 소아과 전문의인 미칼 펠돈은 2026년 6월14일 일간 하레츠에 기고한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사피야가 대법원 항소심에서 영상 증언을 한 직후다. 이어 펠돈은 아들과 나눈 대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엄마, 저 사람 누구야? 왜 저렇게 됐어?”

“엄마처럼 소아과 의사야. 가자지구에 있는 병원 원장 선생님이고,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린 분이셔.”

“그런데 왜 교도소에 있어? 뭔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아무 이유 없어. 그냥 가자지구 의사일 뿐이야. 저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그렇구나. 어쨌든 엄마한테는 저런 일이 생기지 않겠지.”

“가자지구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는 걸 인류가 용인하는 순간, 여기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우연히 저분은 가자지구에서, 엄마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을 뿐이야.”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1013일째를 맞은 2026년 7월15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7만3246명이 숨지고 17만372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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