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8일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앞줄 왼쪽)과 함께 환영 행사가 열리는 평양 중심가 김일성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6월8~9일 북한을 국빈 방문했다. 1박2일 일정 내내 북쪽은 극진한 예우를 다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이를 길고도 자세하게 보도했다. 7년 전과 마찬가지다. 달라진 건 정세다. 2019년 6월20~21일 시 주석 방북 때는 이른바 ‘하노이 노딜’(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당시 시 주석은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찌 해석해야 할까?
“(6월)5일 미 국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중-미 수뇌(정상)회담에서 쌍방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비핵화’라는 고어에 대한 집착이 매우 특이하게 강한 미국 관리들의 희망일 수는 있어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6월7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이 전날 발표한 담화 내용을 따 이렇게 전했다. 김 부장은 담화에서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불퇴의 한계선이며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 방북 하루 전의 일이다.
시 주석의 방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5월13~15일) 직후부터 예견된 바다. 5월19~20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한반도 문제’ 관련 중국의 중재자 역할에 기대감이 커진 이유다. 핵심은 대북제재와 핵 문제, 두 가지로 모아졌다. 대북제재와 관련해선, 2006년 10월9일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탱크·전투기·군함·미사일 등 ‘대형 무기’의 판매·공급·이전과 사치품 거래 금지를 뼈대로 한 결의 제1718호를 채택했다. 이후 안보리는 북의 핵실험(결의 제1874·2094·2370·2321·2375호)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결의 제2087·2371·2379호)를 문제 삼아 대북제재 수위를 높였다. 안보리가 9차례나 제재 결의를 채택한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다.

2026년 6월8일 북한 평양의 국빈급 연회장인 목란관에서 열린 환영 연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제1차 북-미 정상회담(2018년 6월12일) 직후부터 중국과 러시아 쪽은 대북제재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북을 옥죄고 자극할 게 아니라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제재 완화·유예·해제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북-미 협상이 결렬된 이후 북은 ‘핵보유국 지위’를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북은 2022년 3월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섰다.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4월20일)에서 결정한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선언을 3년11개월 만에 뒤집은 게다.
북의 시험발사에 따라 2022년 5월26일 안보리가 소집돼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결의가 무산된 첫 사례다. 이후 북은 툭하면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지만,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제재 논의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반도 주변 정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연간 단위로 부과하고 그 효과를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자.”
2024년 3월28일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안보리 차원의 첫 대북제재 결의(제1718호) 15항에서 “제재 이행 상황에 따라 기존 제재 조처를 강화, 수정, 중단,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이른바 ‘가역 조항’을 발동하자는 얘기다. 이날 회의의 안건은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분석·보고해온 전문가 패널의 활동 시한 연장 여부였다. 미국은 ‘가역 조항’ 발동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기권표로 맞섰다. 전문가 패널 활동은 종료됐다.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체제는 무력화됐다.

2026년 6월8일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일행이 의전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평양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는 대북제재를 대놓고 어기고 있다. 북쪽이 러시아와 밀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은 처지가 다르다. 미국이 무너뜨린 ‘유엔 헌장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의 담지자를 자처하는 중국으로선 대북제재 위반을 최대한 피해왔다. 실제 시 주석은 방북에 앞서 북한 노동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계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북-중이) 공동으로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8일 오후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시 주석과 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열렸다. 중국 외교부가 낸 자료를 보면, 시 주석은 회담에서 북-중 관계 발전에 대해 ‘네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첫째, 고위급 교류 확대를 통한 양국 간 정치적 신뢰 강화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중이 ‘사회주의 형제국’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둘째, 실질적 협력 확대다. 시 주석은 “중국은 북한과 발전전략 연계를 강화하고, 경제·무역·농업·건축·과학기술·의료 등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해 양국 국민에게 더 큰 혜택을 주고자 한다. 양국 국경지대 항구 전면 개방과 민간 항공편 및 국제 여객 열차의 운행 재개를 기회로 삼아,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했다.
셋째, 시 주석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동력 삼아 교육·문화·관광·체육·언론·청년·지역 등 분야별 교류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북-중 양국은 군사 분야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시 주석은 “공정과 정의를 이념 삼아 전략적 협력의 내실을 풍부하게 하자”고 했다. 그는 “아시아는 지역 국가들의 안식처다. 중국과 북한은 전략적 조정 협력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안전·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이 밝힌 네 가지를 묶으면, 북-중 관계의 앞날을 가늠해볼 수 있다.
“2025년 중-북 무역 총액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올 1분기 양국 교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14.3%나 상승했다.”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는 2026년 6월6일 관영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실제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격)의 최신 자료를 보면, 2026년 4월 북-중 교역액은 약 3억2600만달러(약 4980억원)를 기록했다. 2017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시 주석이 ‘전면 개방’했다고 언급한 ‘국경 항구’는 단둥~신의주, 훈춘~나선, 투먼~남양 등 북-중 국경지대의 10개 통상구역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분야별 교류 협력에 ‘지역’을 언급한 것도 눈길을 끈다. 정부 핵심 당국자 출신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렇게 짚었다.
“안보리 제재 틀은 벗어날 수 없다. 국제규범 준수가 중국 외교의 기본 방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급 차원에서 전략적 소통이 이뤄지면, 지방정부가 나설 수 있다. 중국의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은 낙후돼 있다. 북쪽은 ‘지방발전 20×10’(김 위원장이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정책으로, 향후 10년간 매년 전국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지방 공업공장을 건설해 주민 생활 수준을 높이는 게 목표)에 목매고 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제재를 어기진 않겠지만, ‘묵인’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클 수 있다. 제재의 회색지대, 특히 국경무역 단속을 느슨하게 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번 시 주석의 방북길엔 중국 경제개발 계획 입안을 책임진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함께 왕원타오 상무부장도 동행했다. 향후 중국이 대북제재 정책을 이완 또는 완화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2026년 6월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조중우의탑을 찾아 꽃바구니를 진정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핵 문제와 대북제재는 동전의 양면이다. 시 주석 방북에 앞서 김여정 부장이 “절대 불퇴의 한계선”으로 표현한 ‘핵보유국 지위’를 북한은 헌법에 못박았다. 집권 2기 들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을 여러 차례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북한은 자체적인 핵우산을 갖고 있다”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했다.
중국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2019년 6월 방북 당시 시 주석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23년 9월 북이 공세적인 핵무기 사용 교리를 제시한 ‘핵무력정책법’을 통과시킨 직후부터 중국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쪽이 공개한 정상회담 발언문 어디에도 ‘비핵화’는 물론 ‘조선반도’는 등장하지 않는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국은 ‘북핵’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는 가장 간접적인 방식으로 북의 ‘핵보유국 지위’ 문제를 풀었다”며 “중국이 우려하는 건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한 일본의 군사대국화다. 북이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대외적 위협 행위를 강화하지 않는 한 중국으로선 현 상황을 문제 삼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혈맹’으로 규정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중 관계를 ‘가장 중대한 제1의 전략적 사업’이라 표현했다. 대북제재 체제는 이미 구멍난 상태다. 북-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제재를 우회하는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구 교수는 “광역두만개발계획(GTI)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만강개발계획(TRADP)은 1991년 10월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발족했다. 두만강 하구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가들의 국제경제특구 개발 구상인데, 남북과 중국·러시아·일본·몽골 등이 참여했다. 2005년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공동기금을 설립해 광역두만개발계획으로 전환됐는데, 북한은 2009년 대북제재 탓에 추진이 더디다며 탈퇴했다. 시 주석의 방북을 나흘 앞둔 6월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몽골에서 열린 ‘울란바타르 동북아 안보대화’에서 “새로운 평화 질서를 향하는 길이 동북아의 공동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며 북한의 광역두만개발계획 재가입을 촉구했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붙잡을 수 있을까? 시점이 절묘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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