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2026년 6월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빛의 혁명으로 만들어진 정부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힘으로 내란을 진압하고 극복한, 세계적으로도 드문 모범적인 민주국가다. 이 자체가 엄청나게 중요한 국가적 이익이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에 즈음해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는 민주주의란 가치에 기반한 한국판 실용외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국방뿐 아니라 외교 분야에서도 문민 통제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인터뷰는 2026년 6월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6층 카페에서 두 시간 남짓 진행됐다.
―최근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
“이번에 베이징에 갔더니 중국 전문가들이 ‘베이징이 세계 외교의 중심이 됐다’고 얘기하더라. 실제 5월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방중했다. 내가 방중한 시점엔 파키스탄과 세르비아 총리 등이 중국을 찾았다. 다양한 외교 일정이 끊이질 않는다. 세계적으로 보면 전쟁의 시대다.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전쟁이 일어난다. 외교의 역할과 공간이 많이 줄었는데, 중국이 그 빈자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 쪽 평가는?
“전반적으로 상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미-중 관계를 두고 양국이 ‘건설적 전략 안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합의했다. 중국이 바라는 양국 관계 원칙이다. 중국 쪽은 ‘싸워서 얻은 것’이라고 말하더라. 안정 속 경쟁과 통제된 갈등이란 구도를 얻어냈다고 평가했다. ‘협력이 기조이고, 경쟁에는 경계가 있고, 갈등은 통제할 수 있고, 평화를 추구한다’는 게 중국이 내세운 기조다. 미-중 전략경쟁은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과정이지만, 여전히 국력이 미국에 뒤처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경쟁 과정을 잘 관리하는 게 목표다. 안정 속에 경쟁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중국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크더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했는데.
“이른바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와 같은 맥락이다. 미-중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되거나 위기가 고조되는 건 중국에도, 세계질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쟁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를 강조했다. 이번에 가보니 ‘신형 국제관계’로 말이 바뀌었더라.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국제규범은 무너졌다. ‘다극화’는 기존 질서가 무너졌음을 뜻한다. 중국은 미-중 관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정세에 맞게 외교 전략과 우선순위를 달리하고 있다.”
―결국 ‘예전 같지 않은 미국’ 탓인가?
“국제규범이 무너졌다는 건 크게 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5개 강대국이 지역 분쟁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며 지역 분쟁을 관리하던 시대가 갔다는 것을 뜻한다. 첫째, 유엔 등 국제질서를 이끌어왔던 기본 제도가 약화됐다. 둘째, 동맹질서의 약화다. 대표적인 게 나토다. 이른바 ‘대서양 동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한 축으로 작동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악화하면서 동맹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셋째, 미국이 달라졌다. 재정 위기 속에서 국제적 기여를 대폭 줄였고,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역할과 공간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변화를 가속화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이후의 미국은 그 이전의 미국과 다르다. 그간 미국을 움직였던 시스템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겸직)조차 없다. 부처 간 조율 장치가 없으니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직관’이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로 등장했는데,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길고, 복잡하고, 예민한 부분을 조율하는 실무 차원의 대화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게 빠진 탓이다. 러-우 전쟁이 미궁에 빠지고,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와 이란 전쟁이 최종적 실무합의에도 표류하고 있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5월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중심가 톈탄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평해달라.
“이 대통령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표방했다. ‘실용’이란 건 국가 이익, 곧 국익을 중심에 두고 펼치는 외교다. 이익을 어떻게 규정할 건가? 단기적 이익이 있고, 장기적 이익이 있다. 국가이기 때문에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면 장기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정책 지속성도 중요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이익’은 ‘가치’와 어떤 관계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익을 추구할 때 가치를 무시해도 될까? 그렇지 않다.
‘빛의 혁명’으로 만들어진 정부다. 민주주의의 힘으로 친위 쿠데타와 내란을 진압하고 극복했다.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민주국가임을 입증했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 엄청나게 중요한 국가의 이익이 됐다. 민주적 가치는 우리의 자산이다. 이걸 국제사회에 널리 확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가능성을 내비쳤다.
실용은 이념과 다르다. 한국 외교엔 ‘이념’에 기반한 연속성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한-미동맹이다. 양자관계에 불과한 한-미동맹을 국익보다 중요시한다. 양자관계의 핵심은 이익의 조화다. 미국의 이익이 있고 한국의 이익이 있을 텐데, 양국의 이익엔 공통점도 차이점도 있다. 실용외교라면 차이가 나는 부분을 인정하고, 어떻게 조화를 이뤄낼 것인지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동맹의 시대’에서 ‘각자도생’의 시대로 가고 있다. 국익에 대한 확고한 관점을 갖고, 동맹관계에서도 이익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문제가 단적인 사례다. ‘이념 외교’의 관성은 ‘이스라엘을 비판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 게 어딨나?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전세계가 민주주의 모범국가인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다. 국익의 차원이 달라졌다.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일부 외교·안보 관료는 여전히 ‘이념적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방 분야에서만 문민 통제를 강조하는데, 외교 분야에서도 민주적 통제가 절실하다.”
―시진핑 주석의 방북설이 나오는데.
“9월 유엔 총회 때 시 주석이 방미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도 방미를 공식 초청했다.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중국 선전), 12월 주요 20개국 정상회담(미국 마이애미)을 포함하면 2026년에 미-중 정상회담 기회가 세 차례나 더 있다는 뜻이다. 북-미 관계와 관련해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다만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한국의 중재 역할과 북-중-미 삼각관계에서 중국의 중재 역할은 다르다. 남쪽은 북쪽을 설득한 뒤 그거로 미국을 설득해 북-미가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이 원하는 중국의 역할은 북쪽에 압력을 행사해 미국이 원하는 그림을 북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거다. 중국은 이를 원치 않는다. 시 주석이 조만간 방북한다면, ‘중재자’ 역할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북-중 양자관계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어떤가?
“군사적 측면에서 선제적 조치를 하고 북쪽 호응을 유도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대북방송을 중단해 접경지역 주민이 고통스러워했던 대남 소음이 사라졌고, 대북전단 살포를 차단해 북쪽의 오물풍선을 막았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대화 없는 ‘선 조치, 후 호응’ 방식인데, 군사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화 국면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운 북쪽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국경화’ 공사를 지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비무장지대는 ‘면’ 개념이었다. 북방-남방 한계선에 철책이 세워져 있고, 그 사이에 있는 비무장지대란 ‘면’을 어찌 관리하느냐가 중요했다. 북이 국경화 공사를 시작한 뒤엔 달라졌다.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 번도 문제가 안 된 군사분계선이 쟁점이 됐다. 군사분계선 일대에 자리한 1290개의 표식물이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 남은 건 200~300개 정도다. 세월이 지나면서 풍경도 달라졌다. ‘선’에 오차가 생겼다. 북이 생각하는 분계선과 유엔사와 남쪽이 생각하는 ‘선’이 달라졌다. 북은 자기들이 인식하는 ‘선’에 따라 국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남쪽은 이를 ‘분계선 침범’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군사분계선 획정을 위한 회담이 필요하다. 비무장지대 관리란 법적 책임을 지고 있는 유엔사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엉뚱한 짓만 하고 있어 문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2025년 9월3일 오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전승절 80돌 기념행사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을 이끌고 천안문 망루로 향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북의 ‘적대적 두 국가’에 맞서 이재명 정부는 ‘평화적 두 국가’를 내세웠다.
“쉽게 말해 북은 통일에 반대하는 두 국가,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은 통일을 지향하는 두 국가다. 북은 새로운 주장을 하는 거고, 남쪽은 헌법 규범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달라진 상황에 맞게 ‘두 국가’를 어찌 정립할 것이냐를 고민한 셈이다.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일종의 모호성을 남기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을 북이 원하는 대로 ‘조선’으로 부르자는 얘기가 나온다. 북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과 법적 국가 승인은 개념이 다르다. 헌법과 관련 법령에 따라 북을 국가로 승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가성은 인정할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포함해 과거에 협상 결과를 담은 합의서에도 양쪽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정식 국호를 사용한 사례가 있다. 정식 국호로 부른다고 해서 법적으로 국가성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과거 동·서독도 마찬가지였다. 관계 증진에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걸 들어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 임기 내 남북 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세는 변한다. 위기가 있으면 대화 국면도 있다. 기회는 온다. 달라진 질서, 달라진 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찌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협상 기회는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아야 온다. 지금 남북 양자 차원에선 선택의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큰 틀에서 북-미, 북-중 관계의 진척에 따라 남북도 풀릴 수 있다. 특히 북-미 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니 북-미가 만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회는 많지 않아 보인다. 어렵게 조성된 기회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외교·안보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작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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