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4월20일 중국에서 이란으로 귀항 중이던 컨테이너선 투스카호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아라비아해 해상봉쇄에 나선 미군은 이날 투스카호에 함포 사격을 가한 뒤 나포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4월22일(미국 동부시각)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존 펠런 해군장관을 해임했다. 미국은 밤샘 종전 협상이 결렬된 뒤인 4월13일부터 1만여 명의 병력과 10여 척의 함정을 동원해 이란 주변 해상을 봉쇄하고 있다. 액시오스 등 미국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펠런 장관의 해임 사유는 헤그세스 장관과 ‘불화’한 탓이다. 앞서 헤그세스 장관은 4월2일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을 해임한 바 있다. 한 달을 넘긴 전쟁의 마무리를 위해 지상군 병력 투입 여부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조지 총장 해임 사유 역시 ‘불화’였다. 미국은 2월28일부터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러니 이 전쟁을 대체 어쩔 텐가?
“이란 정부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겸 원수와 셰바즈 샤리프 총리의 요청에 따라, 이란 지도부와 대표자들이 통일된 제안을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이란에 대한 공격을 연기하기로 했다. 미군은 이란에 대한 해상봉쇄를 지속하는 한편 모든 면에서 대응 태세를 유지하겠다. 어떤 식으로든 협상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이란 쪽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21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와 발전 시설을 초토화할 것”이란 최후통첩을 처음 내놓은 건 전쟁이 꼭 3주째를 맞은 3월21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밝힌 최후통첩 시한이 도래할 때마다 이미 세 차례나 이를 연장한 바 있다. 네 번째인 이번엔 아예 시점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연장 시한이 ‘사나흘’이란 미국 매체의 보도가 나왔지만, 이란이 협상에 나설 때까지 사실상 ‘무기한’ 연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이란의 ‘내분’은 뭘까?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4월17일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레바논 휴전 상황을 반영해 남은 휴전 기간 호르무즈해협을 상업용 선박에 완전히 개방한다. 모든 선박은 이란 항만해사청이 앞서 공지한 ‘조정된 경로’를 따라 항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중단은 이란이 제시한 휴전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이란의 요구가 충족됐으니, 호르무즈해협 개방이란 미국의 요구도 수용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란 군부가 강력 반발했다. 혁명수비대 쪽은 “해협을 통과하려면 이란 해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4월18일 해협 재봉쇄를 선언했다. 이란 지도부가 외교적 타결을 모색하는 협상파와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로 갈려 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2026년 4월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이란 내부 상황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전쟁 첫날 폭사한 부친(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이어 최고지도자로 옹립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가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협상 기회를 날려버린 건 미국이란 점이다. 2차 협상을 위한 중재가 한창이던 4월19일, 아라비아해를 봉쇄 중이던 미군 쪽은 중국에서 이란으로 귀항하던 컨테이너선 투스카호에 함포 사격을 가한 뒤 해병대를 동원해 나포했다. 이란으로선 휴전 합의를 깬 ‘무력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차 종전 협상이 기약 없이 미뤄진 이유다.
“이란은 재정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현금에 목마른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당장 개방하고 싶어 한다. 이란은 매일 5억달러(약 7400억원)씩 잃고 있다. 군대와 경찰이 급여를 못 받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응급구조를 요청해야 할 지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22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미군의 해상봉쇄로 돈줄이 막힌 이란이 곧 ‘굴복’할 것이란 얘기다. 같은 날 이란 쪽은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시도한 선박 두 척을 위협한 뒤 나포했다. 미국의 역봉쇄에도 해협의 통제권은 여전히 이란이 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게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문명 자체를 파괴할 것”이란 위협을 되풀이해왔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을 나포한 것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4월22일 “나포된 선박은 미국 국적선도, 이스라엘 국적선도 아니다. 따라서 이란 쪽이 휴전 합의를 어겼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의 해상봉쇄를 휴전 합의 위반이자 ‘해적질’이라고 비난하며 2차 종전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가 코앞”이라며 최후통첩 시한을 무기한 연장했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 게 누구인지 분명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전면 침공한 건 2월28일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중동 주둔 미군을 보호하고, 미국의 사활적 국익을 지키기 위한 작전”이라며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 동맹국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독단적인 무력 사용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베트남전이 불을 뿜던 1973년 ‘전쟁권한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라 대통령은 병력 배치 뒤 48시간 안에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또 의회가 전쟁을 선포하거나 병력 동원을 승인하지 않으면 60일 안에 배치한 병력을 전원 철수시켜야 한다.
전쟁은 2월28일 시작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 이를 공식 통보한 것은 ‘48시간’을 꽉 채운 3월2일이다. 따라서 ‘60일 시한’은 5월1일 종료된다. 시한을 넘기기 전 의회가 전쟁을 선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상하원 과반 찬성으로 가능하다. 앞서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국 의회는 4월22일을 포함해 이미 다섯 차례나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부결한 바 있다. 하지만 60일이 지나고도 전쟁이 끝날 조짐이 없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이 종전 시점도 모호한 상태에서 이란을 겨냥한 뒤늦은 ‘선전포고’에 뜻을 모으긴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하원이 찬성 213 대 반대 214로 전쟁 중단 결의안을 부결한 4월16일, 반대표를 던진 브라이언 매스트 공화당 의원(플로리다주)은 당시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60일 시한이 지난 뒤엔 표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한을 30일 연장할 순 있지만, 연장의 유일한 목적은 ‘미군의 안전한 철수’로 규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전쟁 8주차,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선박 수는 전황을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 투자정보 전문매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시장정보’는 “4월21일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단 한 척”이라고 전했다. 4월22일 이란 쪽이 선박 두 척을 위협·나포한 것은 해협 통과를 시도한 선박이 전날보다 늘었기 때문이란다. 미국은 침공 이후 이란 내 약 1만3천 개 목표물을 타격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아라비아해를 꽁꽁 묶고, 이란에서 출항한 선박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원하는 건 얻지 못했다.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은 미국이 아니라 여전히 이란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과 이란 간 2차 종전 협상 성사 가능성이 높았던 2026년 4월22일, 파키스탄 군경이 회담 예정 장소인 수도 이슬라마바드 중심가 ‘레드존’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종전 협상을 가로막은 것도,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것도 모두 미국 탓이다. 미국의 해상봉쇄가 지속되는 한 전면 휴전은 불가능하다.” 1차 종전 협상 때 이란 대표단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기간을 연장한 직후인 4월22일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세계경제를 인질로 삼은 불법적인 해상봉쇄가 해소되고, 시오니스트 전쟁광(이스라엘)이 모든 전선에서 교전 행위를 중단해야 전면적인 종전 협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혁명수비대 공군(항공우주군) 사령관과 경찰청장을 거쳐 수도 테헤란 시장을 지낸 갈리바프 의장은 굳이 따지자면 ‘강경파’로 분류할 수 있다.
심장외과 전문의 출신인 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온건파’를 대표한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이란은 대화와 합의를 환영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약속을 저버리고 해상봉쇄와 위협을 지속하는 건 진정한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다. 전세계가 미국의 끝없는 위선적 주장과 모순적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썼다. 이란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 간 입장 차는 없어 보인다.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혔다. 세계경제가 그 충격파로 휘청인다.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건 어이없는 역봉쇄다. 미국이 봉쇄한 아라비아해로 향하는 선박을 호르무즈에서 막고 선 건 이란이다. 누가 누구를 봉쇄한 건가? 미국이 해상봉쇄를 풀기 전까지 이란은 대화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란은 지난 47년간 미국의 제재를 견뎌왔다. 미국은 대체 뭘 봉쇄하고 있는 건가? 허망한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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